몇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손가락에 꼽힐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 그가 70년대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불명예 사임한 제37대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이하 닉슨)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을 소재로 한 영화 '엘비스와 대통령'은 진지하지 않은 듯 진지한 게 가장 매력적인 작품이다.
유명 가수로서의 화려한 삶보다 자기가 갈구하던 것을 향해 나아가는 엘비스의 도전정신이 진지하게 그려진다. 객기일 수도 있으나 본인은 사뭇 진지하다.
엘비스는 백악관을 방문해 자신을 존 버로우스라는 가명으로 소개하며 대통령을 만나고자 한다. 비행기 안에서 쓴 대통령 면담 신청서. 괴발개발 글씨지만 나라와 국민을 걱정하며 FBI 배지를 갖고 싶어 하길 담았다.
보좌관과 비서관은 건네진 면담 신청서가 지지율을 높일 기회라고 대통령을 설득하나, 닉슨은 허무맹랑한 아이디어라며 만남을 거부한다. 하지만 닉슨은 '비선 실세' 때문에 이 만남을 응해야 한다.
두 거물이 결국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상황은 미국의 당시 상황을 풍자한다. 전쟁과 젊은이들에게 만연한 마약 걱정을 하는 엘비스. 어떻게서든 '비선 실세'를 위해 사진을 찍고 유명인사의 사인을 받아야 하는 대통령. 진지할 수 없는 상황인데 진지하고 엄숙해 보이는 두 사람의 표정과 행동이 관객을 웃음 짓게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왜 이 영화를 보며 자꾸 현실의 한국 상황이 오버랩되는지 모르겠다. 웃기면서도 슬프다. 현실의 대한민국은 진짜로 '웃픈' 상황의 연속이다. 물론 '엘비스와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현실처럼 분노를 일으키거나 관객을 진절머리나게 하는 건 아니다.
제작진은 엘비스와 닉슨의 무표정한 모습이 담긴 이 사진을 우연히 관람하고, 영화화를 결정했다. 이후 제작진은 당시의 만남과 그 만남까지의 과정에 대한 실제 이야기를 영화에 녹여내기 위해 엘비스의 실제 친구이자 오랜 수행원이었던 제리 실링의 회고록 '나와 내 친구 엘비스'와 더불어 닉슨의 보좌관이었던 에질 버드 크로그가 당시 상황을 손으로 적은 메모가 담긴 'The Day Elvis Met Nixon' 등을 참고하며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두 사람이 찍었던 사진이기에 영화 속 이야기가 진짜 있었던 실화 같다. 아마도 닉슨과 엘비스 등 소수 정예만 알고 있으니, 엘비스가 진짜로 특별 요원 활동을 했을지도 모른다. 현재 우리나라 사태를 해결할 특별 명예 해결사도
마이클 섀넌이 엘비스 프레슬리를, 케빈 스페이시가 리처드 닉슨을 연기했다. 섀넌이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엘비스의 외모와 닮지 않았다는 게 이 영화의 아쉬운 점이라면 아쉬운 점이다. 85분. 12세 이상 관람가. 30일 개봉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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