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병헌을 향한 기대감은 더 높아졌다. 영화 ‘내부자들’로 다시 정상으로 올라선 그는 이번에도 역할을 다 했을까? 영화 ‘가려진 시간’으로 부진했던 강동원은 첫 경찰 역을 어떻게 해냈을까? 막내인 스크린 신성 김우빈은 두 사람 사이에서 어떻게 줄타기를 했을까.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조 단위 사기 사건을 둘러싸고 이를 쫓는 지능범죄수사대와 희대의 사기범, 그리고 그의 브레인까지, 이들의 속고 속이는 추격을 그린 범죄오락액션 영화 ‘마스터’(감독 조의석)에서 이들이 어떤 모습을 선보였는지 미리 살펴봤다.
사실 8년 만에 돌아온 악역의 이병헌은 관객을 살 떨리게 하진 않았다. 악랄하기보다는 사람들 등골 빼먹는 인물로 관객을 짜증 나게 하는 캐릭터다. 금융 사기범 조희팔을 떠올리게 하는 이니셜(JHP)을 재조합한 진현필 회장이다. 수만명의 돈을 탈탈 털기 위해 눈물 연기를 선보이고, 일이 잘못되었을 때 재빠르게 캐치해 상황을 극복하는 모습도 너무 얄밉다. 특유의 연기력이 발현된다. 빈틈없는 모습이 빨리 벌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 들게 할 정도다.
얄밉긴 한데 웃음을 주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내부자들’의 “모히토에서 몰디브 한잔”과 비슷한 애드리브 대사도 관객을 빵 터트리게 한다. 긴박한 상황인데 이 쉬어가는 대사들이 웃음을 전한다. “피터김”이라는 인물을 잘못 알아듣고 “뭐? 패티김?”으로 얘기하거나 김우빈에게 “너 양면 테이프야? 왜 여기저기 붙어?”라는 등 쏠쏠한 재미가 있는 대사들이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할리우드에서도 활동하는 이병헌은 필리핀 특유의 발음 연기도 선보이는데 과장됐다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 괜찮게 느껴지는 건 이병헌의 연기 덕이다. 쓸 때 쓰고 버릴 때 버리는 과감함도 돋보인다. 이 나쁜 사기꾼을 이병헌이 제대로 연기한 덕이다.
극 중 타고난 브레인 박장군으로 분했는데 삐딱하면서도 귀엽고, 얄미우면서도 정감 있는, 짠내 나는 캐릭터를 너무도 자연스럽게 소화했더라.
이병헌의 오른팔이자 컴퓨터 프로그램 전문가인 박장군은 호시탐탐 자신의 몫을 챙길 타이밍만 노리는 얍실한 캐릭터. ‘작은 사기꾼’ 이나 ‘사기꾼 꿈나무’ 정도로 칭하면 될 것 같다. 자칫 비호감으로 비칠 수 있는 이 인물은 김우빈을 만나 꽤 매력 있는 캐릭터로 그려진다.
무엇보다 세 인물 가운데 가장 현실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처한 상황과 입체적인 캐릭터, 김우빈의 맛깔스러운 연기가 조화를 잘 이뤘다. 덕분에 몰입이 잘 됐고 공감도 가더라. 한 마디로 막내의 반란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지만 카체이싱 장면과 터널에서 벌이는 상대와의 대결 장면이 스타일리시하고 몰입도를 높인다. 강동원의 기럭지와 얼굴만으로 관객들을 즐겁게 할 만하다. 물론 너무 멋지게(고군분투하긴 했으나) 작전을 펼치기에 현실성이 없는 듯하나 이런 현실을 꿈꾸는 관객도 있을 것 같긴 하다.
한: 맞다. 강동원은 일단 스크린에서 본 역대 경찰들 가운데 비주얼은 가장 뛰어났던 것 같다. (아! ‘아수라’ 정우성도 있었군, 공동 1위인 걸로. ㅋㅋ) 게다가 지금까지 봐온 경찰들 가운데 가장 정의롭고 참 고운 말을 쓴 인물인 듯하다.
하지만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이나 강렬한 눈빛, ‘앙숙’에서 ‘절친’으로 변모하는 김우빈과의 케미는 인상적이다. 이병헌과의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도 신선하다.
찐: 그 외 배우들은 어떤데? 마스터라고 할 사람 없나?
한: 이 영화도 신스틸러 향연이지. 개인적으론 그 중에서도 김우빈(박장군)의 절친이자 숨은 컴퓨터 마스터로 분하는 경남 역의 조현철이 눈에 띈다.
적은 분량이지만 특별한 설명 없이도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신선한 천재의 모습이다. 어눌한 말투에 약간 모자른 듯 매우 독특해 보이는 ‘5차원 아우라’가 다분하다. 하지만 자기 일에서만큼은 엄청난 능력을 뿜어내는 재미난 캐릭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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