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은은 남편의 외도에 맞서 희대의 납치 자작극을 꾸린 ‘위험한 아내’ 심재경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제공ㅣ뿌리깊은나무들/매니지먼트 레드우즈 |
배우 김정은(47)에게 ‘심재경’은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 인생 캐릭터였다. 홍콩에서 대본을 보고 한걸음에 달려와 출연한 드라마, 역시나 “연기하면서 몸은 너무 힘들었을지만 속은 시원했던” 작품이었다.
최근 종영한 MBN 월화드라마 ‘나의 위험한 아내’는 이 시대 부부라면 한 번쯤 공감할 법한 ‘미스터리 부부 잔혹극’이었다. 심리 스릴러의 장르적 매력과 블랙 코미디의 신랄한 유머가 공존한, 신선하고도 통쾌한 드라마였다.
무엇보다 각기 다른 상황 속에서 위기를 겪고 있는 여러 형태의 부부들이 등장해 흥미와 공감을 끌어냈다. 김정은은 남편의 외도에 맞서 희대의 납치 자작극을 꾸린 ‘위험한 아내’ 심재경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처음으로 수동적이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가는 현명한 역할 재경이를 만나 푹 빠져 연기했다”는 김정은을 코로나19 여파로 서면으로 만났다.
Q. 3년 만의 컴백작이었는데, 드라마를 끝낸 소감은
솔직히 말하면 작품이 끝난 후에 찾아오는 허무감? 혼자만 느끼는 외로움? 배우로서 느끼는 우울감은 좀 있다. 물론 안 그런 척 하며 잘 지내고 있지만. 지난 3월 24일 홍콩에서 서울로 도착해 2주간 자가 격리 후 제작진을 만났다. 그 후부터 열심히 준비해 5월 중순부터 촬영을 시작했다. 여름을 지나 초겨울까지 7개월이란 시간을 ‘심재경’이란 인물로 살았다.
오랜만에 복귀작이라 처음엔 걱정도 많았고 긴장도 했다. 다행히 감독님, 작가님, 같이 했던 배우들, 편집실까지 내게 다양한 도움으로 빨리 캐릭터에 적응할 수 있게 도와줬다. 나중엔 ‘내가 언제 쉬었었나’ 할 정도로 신나서 연기했다. 여러가지 악조건(코로나19와 긴 장마)을 견뎌가며 마음 졸이며 앞만 보고 달렸던 것 같다. 잘 견뎌준 모든 스태프들, 배우들께 고마운 마음 뿐이다.
Q. 독특한 여주인공 캐릭터였다. 이번 작품, 캐릭터는 어떤 매력으로 다가왔나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부분은 ‘심재경’이 결국 모든 사건을 주도면밀한 방식으로 해결한다는 점이었다. 이런 여성 캐릭터를 정말 만나기 쉽지 않다. 또, 겉으로는 매우 평범하고 약해 보이는 현모양처의 캐릭터였기 때문에 그 반전과 희열이 큰 쾌감을 줬다. 처음엔 납치 자작극으로, 나중엔 50억을 놓고 서로 싸우는 과정에서 현실을 약간 비껴간 판타지로서의 반전과 복수들이 늘 약자로만 그려지는, 같은 아내의 입장에서 통쾌하게 느껴졌다.
현실에서 우리 아내들이 얼마나 가정에서 남편과 아이를 위해 희생하며 사는가. 하지만 그 희생을 그만큼 높이 평가받고 있는지는 글쎄 잘 모르겠다. 물론 현실에 ‘심재경’ 같은 인물이 존재할 순 없겠지만, 만약 그런 인물이 존재한다면 어떨까 싶다. ‘남편들! 평범한 주부를 얕보지 마라’ 이런 부분들이 맘에 들었다.
↑ 김정은은 상대 역 최원영에 대해 “최고의 배우, 다시 만나고 싶은 배우”라고 환호했다. 제공ㅣ뿌리깊은나무들/매니지먼트 레드우즈 |
가장 판타지적인 인물이었다. 재력에 남편 내조까지 완벽하게 해내면서도, 남편 외도에 대한 복수를 완벽하게 계획한다. 모든 사건을 혼자 다 꾸미고 다니면서 사람들을 50억으로 현혹 시켰다. 이런 아내가 현실에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현실적인 인물로 안착시키는 게 가장 신경이 쓰였다. 그래야 시청하는 여성분들이 감정이입을 할 수 있을 테니까. 처음 외도를 목격하게 되는 과정도 평범했던 주부가, 가만히 놔뒀으면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을, 흑화(?)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을 디테일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심재경’은 워낙 감정을 숨기고 계속 연기하고 거짓말하고 아닌 척 하는 그런 장면들이 많아 가끔 윤철(최원영 분)에게 자기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소리 지르고, 울고, 그렇게 감정적으로 대립하는 장면들이 매우 소중하게 느껴졌다. 또한 최고의 멋진 빌런이지만 여자로서 아내로서 사랑받고 싶어 하는 느낌도 표현하고 싶었다.
Q. 자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장면은
4부 엔딩에 독이 든 와인을 두고 윤철과 계단에서 싸우다가 굴러 이마에 피 흘리며 협박하는 장면을 꼽고 싶다. 또, 8부에 있었던 채림이(이효비 분) 납치 연극 신들이 통쾌함을 줬다. 후반에 최원영 씨와 같이 신나게 했던 코믹한 신들이 정말 재미있었다. 서로 요리를 하면서 독을 몰래 넣으며 서로를 견제했던 마지막 만찬 신도. 그리고 선미(최유화)를 죽인 후(죽인 척 한 후) 주차장에서 삽을 톱으로 자르던 신들이 기억에 남는다.
심재경이란 인물은 처음엔 코믹할(?) 구석이 없었고 그럴 여유도 욕심도 없었다. 그러나 아직 내 몸에 코미디의 피가 아직은 조금 흐르고 있는지, 최원영 씨가 윤철을 매우 코믹하게 연기하고 애드립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때마다 정말 부러워 죽는 줄 알았다. 중반 이후에 재경이도 살짝 코믹해도 되는 부분을 만날 때마다 그동안 코미디를 못한 부분을 보상이라도 받듯이 미친 듯이 웃기려고 노력했다.
Q. 남편 최원영 배우와의 호흡은
일단 ‘윤철’ 역에 최원영 씨 같은 상대 배우를 만난 것이 최고의 행운이었다. 정말 유연하게 연기를 잘하는 배우였다. 큰 눈으로 진정성을 주는 연기도 잘하고, 코미디도 그 누구보다 강하다. 아이디어도 참 좋아서 오래 휴식(?)했던 내게 정말 많은 도움과 조언을 해줬다. 서로 조언을 해주면 그걸 또 서로 흡수하고 더하고 더해서 더 좋은 시너지가 있었던 것 같다. 후반에 웃긴 장면을 찍을 때마다 서로 뭐라고 말로 장황하게 설명 안 해도, 척하면 척척 찰떡같이 알아들어서, 코미디 호흡도 두말 할 나위가 없었다.
Q. 현장 분위기와 다른 배우들과의 연기는
심혜진 선배님은 꼭 만나보고 싶었던 분이다. 마지막에 심혜진 선배님과 감정적으로 타이트 하게 연기한 신들이 정말 너무너무 좋았다. 갖고 계신 이미지처럼 쿨 하게 힘 빼고 툭툭 연기하시는데, 나중에 방송을 보니 그게 훨씬 힘과 큰 존재감이 느껴지는 걸 보고 ‘역시’라는 생각을 새삼 했다. 중간 중간 식사시간 때 시간이 없어 간단하게 햄버거를 먹으며, 인생 선배님으로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주신 것도 마음에 깊이 남는다. 다른 작품에서 꼭 다시 만나고 싶다.
정수영 씨는 현장에서 만나면 서로 너무 팬이라고 외쳐대기 바빴다. 사실 함께 하는 신들이 더 있었으면 좋았겠단 아쉬움이 크다. 스케줄 때문에 우리 두 사람의 불가피하게 없어진 신들이 너무 아쉽다. 정수영 씨는 한 장면을 나와도 존재감을 주는 그런 배우라고 생각한다.
Q. ‘진선미’ 역의 최유화와는 대립하는 역할이었는데
선미 역의 최유화는 나와 세게 대립하는 컷들을 찍을 때마다 중간중간에 뒤돌아서 주먹 쥐고 벽을 치거나 잠깐 밖에 가서 욕을 하며 소리를 지르다 왔다. 그러면서도 나와 너무 친해지고 싶은데 늘 죄송하다며... 물론 지금은 친하다. 그 모습이 너무너무 귀여웠다.(나보다 더 길고 크지만) 이렇게 현장에서 몸을 부딪혀가며 열심히 하는 후배들이 너무 예뻐보인다. ‘작품은 캐스팅이 다~다’ 라고 생각하는 편인데, 제작진이 정말 최고의 캐스팅을 했다고 생각한다. 나 빼고. 재경이는 누가 했어도 사랑받았을 훌륭한 캐릭터였다,
↑ 김정은은 “겉으로는 평범하고 약해 보이는 현모양처의 캐릭터였기 때문에 그 반전과 희열이 큰 쾌감을 줬다”고 말했다. 제공ㅣ뿌리깊은나무들/매니지먼트 레드우즈 |
늘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데, 다들 아마 캐릭터를 연기할 때? 어려운 신을 찍을 때? 잠을 못잘 때? 그런 부분이 아닐까 예측하실 것이다. 근데 솔직히 그런 부분은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진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느끼고 감당해야 할 가장 힘든 부분은 늘 연기 외의 것들이다. 촬영 현장도 작은 사회, 회사 직장이나 마찬가지다. 여러 사람이 모여서 하나의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에서 수많은 상황과 인간관계가 있다. 난 그걸 지켜내고 이끌어가는 입장 중의 사람으로서 아직까지도 그 관계들이 가장 힘들고 어렵다. 인내해야 하고 이해해야 하고 배려해야 하는 상황들이 끊임없이 존재하고, 난 그 드라마의 대표 얼굴로 그것을 견뎌내야 한다.
때로는 그런 게 꼴 보기 싫어서 ‘차라리 놀러나 다니지’ 생각도 한 적도 있는데, 물론 좋은 대본을 읽게 되면 또 내 안에 무언가가 꿈틀거리며 그런 생각들은 눈 녹듯이 사라지긴 한다.
또한 내게 힘을 주는 사람들, 나를 위로해주는 사람들,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될 때 힘들었던 시간들은 다 커버되고 결과물이 더 값지게 느껴지고, 감동을 느낀다.
Q. 드라마를 시청해준 분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월화 밤 11시는 내게 사실 한밤중이다. 신랑이 아침 일찍 출근을 하는 터라 결혼 후에 나도 아침형 인간으로 바뀌어서 11시쯤이면 이미 자고 있는 시간이었다. 나도 시청자 입장에서 재밌는 11시대 드라마가 있을 때는 아주 가끔 졸면서 시청했었다. 보통 10시 50분 시작인데, 우리 드라마는 심지어 11시 정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방사수를 해주신 분들에게 특별하게 감사드린다.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 잘 알고 있다. 시청률보다 몸으로 느끼는 피드백이 더 큰 드라마였다. 다음날이나 다다음날 재방 후에 받는 문자가 더 많았으니까. 드라마를 시청해주신 여러분들께는 말로 표현 못 할 만큼 감사한 마음 뿐이다. 봐주신 여러분들이 없었다면 힘든 시간을 견딜 이유도 존재하지 않는다.
Q. 앞으로 더 자주 볼 수 있는 건가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 없다. 좋은 작품이 있으면 할 수도 있고, 맘에 드는 게 없으면 남편 따라 홍콩에 갈 수도 있다. 연락 주실 분들은 좀 미리 연락 달라. 14일 전에. 난 격리가 필요하다.(인터뷰②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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