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인사청문회 이후 여야는 심사경과보고서를 채택하지 못했습니다.
야당 청문위원들뿐 아니라 여당 청문위원 일부도 부정적 의견을 피력한 상태라 사실상 이 후보자에 대해서는 사실상 부적격 판정이 내려진 셈입니다.
많은 사람이 이런 부적격 판정과 김용준 총리 후보자의 자진 사퇴로 이 후보자의 자진 사퇴가 시간문제일 것으로 봤지만, 이 후보자의 행동은 예측을 벗어났습니다.
일부 언론과 만나 자신 사퇴는 하지 않겠다고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청문회에서 사실과 다른 의혹이 양산되면서 괴물 이동흡이 만들어졌다'며 명예회복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논란이 된 특정업무경비 3억 원은 사회에 환원할 용의가 있다는 말도 했습니다.
특히 자신이 통장을 공개함으로써 오히려 특정업무경비에 대한 제도적 개선이 이뤄질 수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동흡 후보자 개인적으로는 억울하다고 느낄 수 있는 부분도 분명히 있을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억울하다는 그의 항변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오히려 부글부글 끓고 있다고 해야맞을 것 같습니다.
정치권은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진사퇴에 무게를 뒀던 새누리당 지도부는 국회 표결처리로 분위기가 바뀐 듯합니다.
지난 4일 황우여 대표의 말입니다.
▶ 인터뷰 : 황우여 / 새누리당 대표(2월4일)
- "정상적인 기간 내에 후보자나 지명자가 결단하면 모르되, 지명의 철회나 후보 사퇴를 강요한다면 폭거요, 청문특위 본연의 업무를 못한 겁니다. 청문 위원장은 최고의 결론을 내려주길 바랍니다."
김기춘 원내수석부대표는 처음부터 표결처리가 새누리당의 일관된 주장이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인사청문회가 끝나고 여론이 극도로 안 좋았을 때 새누리당 누구도 표결처리를 하자고 목소리를 냈던 사람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여기저기서 표결처리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무슨 속사정이 있었던 걸까요?
이 후보자 문제로 시간을 끌면 끌수록 박근혜 당선인에게도 부담이 된다는 게 정치 평론가들의 분석입니다.
청와대가 세 명의 후보자를 박 당선인에게 제시했는데, 박 당선인의 3순위였던 이 후보자를 선택했다는 얘기도 도는 터라 그 부담은 더욱 클 수밖에 없습니다.
이 후보자가 자진해서 사퇴할 것 같지도 않고, 이명박 대통령도 지명철회를 할 생각이 없는 것 같으니 남은 방법은 표결 처리를 통해 박 당선인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밖에 없다고 새누리당 지도부가 판단할 걸까요?
그러면 박 당선인의 생각은 어떨까요?
박 당선인은 어제 새누리당 의원들과 가진 연석회의에서 의미 있는 한마디를 했습니다.
들어보겠습니다.
▶ 인터뷰 : 박근혜 당선인
- "청문회가 개인의 문제 과도하게 상처 내지 않고 실질적인 능력과 소신 밝힐 수 있는 기회 주셨으면 합니다. 또 법에 따라 정해진 절차를 통해 이뤄지는 민주국회 상생의 국회가 되도록 여야가 노력해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법에 따라 정해진 절차를 통해 이뤄지는 민주국회'라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원론적으로는 앞으로 있을 총리 인선과 조각 과정에서 국회 청문회가 신상 털기 식보다는 업무능력에 초점을 맞춰 진행돼야 한다는 소신을 밝힌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이동흡 후보자에 대해서도 적용 가능하지 않을까요?
박 당선인이 이동흡 후보자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 후보자 역시 법과 원칙에 따라 국회 표결처리 하는 게 맞다고 본 것은 아닐까요?
박 당선인의 뜻이 이러하니 새누리당 지도부도 표결 처리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은 아닐까요?
그런데 국회 표결처리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청문특위위원장은 민주통합당 강기정 의원인데, 청문보고서를 채택해 국회 본회의에 올릴 것 같지가 않습니다.
남은 방법은 새누리당 의원인 강창희 국회의장이 직권 상정으로 본회의에 올리는 것인데 국회의장실 관계자 말을 들어보면, 강 의장은 직권상정에 부정적이라고 합니다.
새해부터 직권 상정으로 볼썽사나운 국회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겁니다.
박기춘 민주통합당 원내대표의 말입니다.
▶ 인터뷰 : 박기춘 / 민주통합당 원내대표(2월5일)
- "새누리당이 느닷없이 이동흡 국회 표결 주장하고 있습니다. 표결하려면 의장 직권상정밖에 없습니다. 날치기 아닙니까? 인사문제를 직권상정 한 전례가 없습니다. 심판이 끝난 사안을 놓고 표결 운운 자체가 불쾌한 일입니다."
강 의장은 이동흡 후보자가 여론을 그렇게 모르느냐며 국회에 부담을 주는 것을 불쾌해한다는 말도 들립니다.
설사 본회의에 상정된다 해도 통과 가능성은 작아 보입니다.
김성태 의원은 '표결 강행 자체로 부정적 여론이 거셀 텐데 만약 본회의에서 부결된다면 새누리당은 정치적 타격이 극심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동흡 후보자, 이명박 대통령, 박근혜 당선인, 그리고 국회까지 꼬인 매듭을 풀 수 있는 주체들이 무슨 이유인지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덩달아 이동흡 후보자 문제에 대한 국민의 피로감도 계속 쌓여만 가고 있습니다.
이제 그만 이 문제를 털어냈으면 하는 바람이 커지고 있습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