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참으로 명예스러운 자리입니다.
되고 싶다고 아무나 될 수 있는 자리도 아니고, 임기 5년 내내 국민을 위해 봉사하다 물러나는 자리다 보니 퇴임 후 국민의 존경을 받는 게 지극히 당연합니다.
그러나 우리 현대사를 되돌아보면, 퇴임 후 존경을 받았던 대통령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지난해 전문가 100인과 일반인 1,007명이 평가한 도표입니다.
업적과 외교와 도덕성, 행정업무 능력 등 10개 항목에서 금 은 동으로 평가가 이뤄졌는데, 박정희 전 대통령은 금 4, 은3, 전두환 전 대통령은 동 2, 김영삼 전 대통령은 금1 동1, 김대중 전 대통령은 금 3 은6, 노무현 전 대통령은 금 2, 동 2이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퇴임 전이라 대상에서 빠졌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서거했기 때문에 퇴임 후 평가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다른 대통령들은 퇴임 후 극명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그리 후한 것 같지가 않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가 많은 것 같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지만, 봉하마을로 내려가 시골 촌부로 지냈던 모습은 많은 사람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 것도 사실입니다.
어찌 보면 대통령은 퇴임 후 한 사람의 국민으로 돌아오지만, 그렇다고 완벽하게 일반시민이 되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일거수일투족이 늘 국민의 시선 속에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행동은 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어제오늘 인터넷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나 홀로 테니스'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 대통령이 퇴임 직후인 3월2일부터 서울 올림픽공원 테니스 코트를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에 나 홀로 사용했다는 겁니다.
이곳은 시민 테니스장으로 인터넷 선착순 예약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한 사람이 같은 시간대를 독점적으로 사용하기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은 경쟁이 치열한 황금 시간대인 토요일 오전 8시부터 오후 1시까지 코트 1개를 나 홀로 사용했다는 겁니다.
전산조작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임 시절부터 테니스를 즐겼습니다.
당시에도 '황제 테니스'라고 해서 나 홀로 테니스를 해 여론의 뭇매를 맞은 적이 있습니다.
또 이 대통령과 테니스를 했던 사람들이 이명박 정부에서 주요 자리를 차지해 논란이 됐던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퇴임 후 다시 '나 홀로' 테니스를 했다니요?
이명박 전 대통령 측도 억울한 측면은 있는 것 같습니다.
테니스장에 '예약이 가능하냐'고 확인하고 '가능하다'고 해서 사용료를 내고 쳤을 뿐이라는 겁니다.
전산조작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는 겁니다.
언론보도를 보면 이 전 대통령의 해명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테니스장 측은 이 전 대통령이 조작 예약을 부탁한 것은 아니고, 전직 대통령에 대해선 필요한 협조를 하는 게 좋겠다고 자체적으로 판단해서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테니스장 측이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알아서 전산조작을 했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 전 대통령 측은 억울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국민의 시선이 따가울까요?
설령 테니스장 측이 알아서 전산조작을 했더라도 사람이 붐비는 토요일 아침에 아무도 없이 나 홀로 테니스를 하다 보면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을법하지 않을까요?
물론 대통령 경호상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을 수도 있겠지만, 다시 평범한 일반 시민으로 돌아갔다고 한다면 일반 사람들과 뒤섞여 테니스를 하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고 느꼈을 겁니다.
그랬더라면 이명박 전 대통령은 국민의 사랑을 더 많이 받았을 겁니다.
아직도 이 전 대통령 스스로는 일반 시민으로 돌아가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전두환 전 대통령도 다시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민주통합당 최재성 의원은 최근 국세청 업무보고 자리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특별 세무조사를 요구했습니다.
전 전 대통령의 자녀가 2천억 원으로 추정되는 막대한 재산을 쌓아두고 있는데, 이 재산의 상당수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숨겨진 재산이 변칙 증여됐다는 겁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현재 양도세 3억 원, 지방세 3천800만 원을 4년 넘게 체납하고 있습니다.
추징금 1천673억 원도 아직 내지 않고 있습니다.
10월이면 이 시효도 끝납니다.
가진 재산이 없다는 건데, 자녀는 대형 출판사와 허브농장, 고층건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재성 의원의 말처럼 이들이 가진 재산이 수백억 원, 아니 정말 2천억 원이라면, 그리고 그것이 전 전 대통령의 불법 비자금이 변칙 증여된 것이라면 회수해야 하지 않을까요?
전두환 전 대통령이 돈을 내지 못하겠다고 버티는 사이 경호비용으로 연간 7억 원의 세금이 나가고 있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97년 반란죄로 무기징역형이 확정돼 법에 따라 연금, 무상치료 등 모든 예우대상에서 제외됐지만, 경찰 경호는 유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회가 그동안 경호 조항을 삭제하는 개정안과 부패재산 몰수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번번이 무산됐습니다.
법적으로는 2천억 원의 재산이 자녀 재산이지 내 재산이 아니라고 항변할 수도 있고, 경호는 법에 따라 받는 것이니 나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 정서는 다릅니다.
자식이 그렇게 돈이 많다면, 아버지가 체납한 세금과 국가에 빚진 돈을 대신 갚아야 하고, 경호는 스스로 포기해야 하는 게 상식적이지 않을까요?
아마도 전두환 전 대통령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두 전직 대통령의 처신은 우리를 서글프게 합니다.
엊그제 대처 전 영국 총리의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그녀에 대한 영국인들의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리지만
임기 중 호불호는 있었겠지만, 퇴임 후 그녀 삶은 지극히 평범한 시민의 삶이었고, 영국인들은 이런 그녀를 좋아했습니다.
우리도 퇴임 후가 더 멋진 대통령을 갖는 날은 언제쯤 올까요?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영상편집 : 신민희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