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돌 직전, 누군가 핸들을 돌리지 않으면 그다음은 불 보듯 뻔합니다.
살려면 핸들을 돌려야 하지만, 그랬다가는 치킨, 즉 겁쟁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게 됩니다.
겁쟁이라 불리기 싫어서 핸들을 꽉 쥐고 있어야 할까요?
아니면 살고자 핸들을 돌려야 할까요?
국제 정치학에서 말하는 '치킨 게임'입니다.
지금 남과 북이 어쩌면 이런 치킨 게임을 벌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 인터뷰 : 조선중앙TV (지난달 8일)
- "개성공업지구에서 일하던 우리 종업원들을 전부 철수한다. 공업지구사업을 잠정 중단하며 그 존폐를 검토할 것이다."
▶ 인터뷰 : 김형석 / 통일부 대변인(5월1일)
- "북한이 자신들의 부당한 조치로 인해 현재의 개성공단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는 점을 깨닫고, 개성공단을 정상화로 갈 수 있는 선택을 하는 길밖에 없다."
북한이 북한 근로자 전원 철수로 나오자, 우리 역시 근로자 전원 귀환으로 맞선 모양새입니다.
자존심밖에 남지 않은 북한으로서는 '겁쟁이' 소리를 듣는 것이 죽기보다 더 싫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먼저 핸들을 돌렸다가는 새로운 남북 관계를 정립하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체면이 크게 손상될 게 뻔합니다.
누군가 먼저 운전대를 돌려야 하는데, 지금은 서로 마주 보며 달려올 뿐입니다.
이 치킨 게임의 승자는 누가 될까요?
어쩌면 승자는 없고 남과 북 모두 폐자가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 결과는 개성공단 폐쇄와 남북관계 파탄이겠죠.
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실 남과 북의 속내는 이런 파국을 원하지 않는 게 분명합니다.
북한 내각 기관지인 민주조선은 지난달 30일 개인필명의 논평에서 '괴뢰들이 개성공업지구마저 완전히 깬다면 민족이 절대로 용서치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 역시 남북 간 실무회담과 대화 제의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개성공단 기업들에 추경 예산을 통해 긴급자금을 지원하면서도, 개성공단에 대한 단수와 단전 조치는 하지 않겠다는 것도 개성공단 폐쇄를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북한에 전달한 셈입니다.
남과 북이 대화와 협상을 통해 개성공단 문제를 풀 여지가 여전히 있다는 뜻입니다.
문제는 누가 먼저 손을 내밀고, 대화 멍석을 까느냐 하는 겁니다.
남일까요? 북일까요?
지금으로서는 남과 북 모두 나서기가 곤란하니 미국과 중국이 좀 도와주면 되지 않을까요?
싸울 때 제삼자가 나서서 양쪽을 설득하듯 말입니다.
중국 특사설과 한미 정상회담이 제삼자 역할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6자회담 수석 대표인 임성남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오늘 우다웨이 중국 6자회담 대표와 만났습니다.
앞서 우다웨이 대표는 미국을 다녀왔고, 조만간 북한도 갈 것이라는 소식이 들립니다.
북한에 가면, 우리와 미국의 의견을 북한에 전달하고 설득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여기서 중국 특사설과 관련한 중국 내 움직임 자세히 살펴봅니다. 문일현 중국 정법대 교수입니다.
1. 지금 중국 특사설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신빙성 있는 얘기입니까?
2. 현재의 북중관계로 볼 때 중국 특사가 북한에 가면 김정은을 대화 테이블로 나오도록 설득할 수 있으리라 보십니까?
- 원유와 식량 지원이 그 카드가 될까요?
3. 중국이 북한을 대하는 방식이 과거와 다르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끈끈한 동맹에서 이제는 실익을 따지는 쪽으로 중국의 대북 정책이 바뀌었습니까?
4. 북한으로서는 믿을 곳이 중국 뿐인데, 중국이 그런 셈법을 하고 있다면 불안감이 클 수 밖에 없겠군요.
5. 개성공단에서 사실상 우리 근로자들이 모두 철수했습니다. 북한이 시설을 몰수해 자체 운영한다고 하면, 혹시 여기에 관심을 가질 중국 자본이나 투자자가 있을까요?>
중국의 태도가 과거와 달라졌다 해도, 중국은 여전히 북한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나라입니다.
다음 달에는 한중 정상회담도 예정돼 있으니 중국의 역할에 더 관심이 갑니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미국도 북한에게 멍석을 깔아줄 수 있습니다.
북한이 원하는 진짜 대화 상대는 우리가 아니라 미국이라는 사실을 어쩌면 공공연한 비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북한은 6개월 째 억류중인 한국계 미국인인 배준호 씨를 오늘 재판에 회부해 15년 노동교화형을 선고했습니다.
15년 동안 붙잡아 두고 강제노역을 시키겠다는 겁니다.
미국으로서는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됐습니다.
누군가를 북한으로 보내 배 씨를 직접 데려와야 합니다.
바로 북한이 노리는 바입니다.
2009년 북한에 들어가 미국 여기자 둘을 데려왔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나 2011년 북한을 갔던 카터 전 대통령이 북한 특사로 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북한은 이들을 평양으로 불러들여 북미 협상 재개를 노리고 있는 듯합니다.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보여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배준호 씨의 신변 안전을 위해 어쩌면 한 발 더 후퇴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 인터뷰 : 존 케리 / 미국 국무장관 (한미외교장관회담)
- "북한이 스스로 받아들였던 국제적 의무와 표준을 지킬 준비가 되고, 비핵화로 나아갈 것을 분명히 한다면 대화가 시작될 것입니다."
미국이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우리도 조금은 대북 스탠스를 달리 가져가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7일 한미 정상회담이 그 분수령이 될 것 같습니다.
중국과 미국이 남북 대화의 멍석을 깔아줄 수 있을까요?
한반도의 운명이 남들 손에 끌려다니는 것이 썩 맘에 들지 않지만, 직면한 현실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습니다.
이제는 중국과 미국이 깔아 놓은 멍석 위에서 북한이 딴소리 없이 우리와 마주앉기를 바랄 뿐입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영상편집 : 신민희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