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잠실 야구장에 깜짝 등장했습니다.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3차전 경기에 시구자로 나서 공을 던진 건대요.
박 대통령이 마운드에 올라서자 관중석에는 함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잠깐 보시죠
<박 대통령 시구 모습>
현직 대통령이 프로야구 시구에 나선 것은 전두환, 김영삼,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네 번째입니다.
이명박 대통령 때는 사전에 일정이 노출돼 무산됐고, 그다음에 김윤옥 여사와 야구장에서 키스 타임을 가진 게 화제가 됐던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대통령들이 프로야구 시구에 나선 이유는 뭘까요?
야구장은 사람들이 많아 경호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데도 역대 대통령들이 야구장을 찾는 이유는 그만큼 국민과 가까워지고 싶기 때문이겠죠.
국민 마음속에 다가가고 싶어서겠죠.
사실 박 대통령 취임 후 지난 8개월은 지난 대선의 연장선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NLL 회의록 논란과 국정원 선거개입 논란으로 정치권은 연일 사생결단하듯 정쟁을 벌였고, 민생문제는 저만치 달아나버렸습니다.
국정감사가 진행 중이지만,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
야당은 한발 더 나아가 박 대통령까지 끌어들이려 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의원의 말입니다.
▶ 인터뷰 : 문재인 / 민주당 의원(10월 23일)
- "지난 대선이 불공정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문제를 회피하고 덮고 이렇게 하려고 하는 바람에 문제가 더 커지고 있고….
▶ 인터뷰 : 문재인 / 민주당 의원(10월 26일)
- "저는 다 말씀드렸고, 이제는 대통령께서 답하실 차례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대선의 후보였던 문재인 의원이 경쟁자였던 박 대통령의 응답을 거듭 촉구했지만, 대통령은 이를 외면하고 야구장으로 향했습니다.
이쯤 되면 박 대통령의 시구는 단순한 시구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박 대통령은 이 지루한 국정원 논란에서 벗어나 민생 국면으로 정국을 전환하고자 했는지도 모릅니다.
대신 국정원 논란은 이제 검찰에 맡겨두려 하는 듯 보입니다.
프로야구 시구와 함께 새 검찰총장 후보자를 내정한 것도 그 맥락일까요?
김진태 검찰총장 후보 내정에 대한 청와대의 설명입니다.
▶ 인터뷰 : 이정현 / 청와대 홍보수석 (10월27일)
- "검찰조직을 조속히 정상화하고 현안이 되는 사건들을 공정하고 철저히 수사 마무리하며 국민의 신뢰 받는 검찰을 만들려고 새 검찰총장에 김진태 전 대검 차장검사를 내정했습니다."
여야의 반응은 엇갈립니다.
새누리당은 환영한다는 것이고, 민주당은 김 내정자가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 친분이 두텁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실무 수사팀장까지 공안 출신으로 바뀐 터라 야당의 우려는 더 커져버렸습니다.
수사 흐름이 바뀔까요?
어쨌든 박 대통령은 이제 국정원 논란에서 저만치 떨어져 있으려 하는 것 같습니다.
정홍원 총리가 오늘 경제와 민생 관련 대국민담화를 하는 것도 현 정국의 국면을 바꾸기 위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새누리당 역시 이런 국면 전환을 원하고 있습니다.
▶ 인터뷰 : 황우여 / 새누리당 대표
- "정치권은 이제부터 대선 정국 뛰어넘어 외교 국방 재정 복지 등 국가 현안과 민생의 본분에서 활발한 토론과 국민적 합의 도출. 국민에게 마땅히 할 바를 다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박 대통령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있었습니다.
지난 토요일. 10.26 행사에서 손병두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의 발언이 그것입니다.
들어보겠습니다.
<더빙>손병두 / 박정희 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10월26일)
- "서민들은 간첩이 날뛰는 세상보다는 차라리 유신시대가 더 좋았다고 부르짖습니다. 5·16과 유신을 폄훼하는 소리에 각하(박 전 대통령)의 심기가 조금은 불편하실 걸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태산 같은 각하의 뜻을 소인배들이 어찌 알겠습니까”
박 대통령을 '각하'라 부르며, 5.16과 유신을 미화하는 손 이사장의 발언은 당장 정치권을 발칵 뒤집어놨습니다.
민주당은 유신의 망령이 부활했다고 비난했습니다.
▶ 인터뷰 : 김한길 / 민주당 대표(10월27일)
- "아버지 대통령 각하라는 극존 찬양 호칭은 우리를 섬뜩하게 만듭니다. 부자세습 정권의 어버이 수령이라는 신격화 호칭과 매우 닮았습니다."
새누리당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애착심을 표현하기 위해 쓴 호칭을 놓고 민주당이 말꼬리 잡기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지만, 속내가 편한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당시 행사장에는 황우여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대거 참석해 손 이사장의 말을 경청했기 때문입니다.
시민들의 반응도 엇갈렸습니다.
▶ 인터뷰 : 이영세 / 서울 도화동
- "그때는 그런대로 사회가 안정돼서 좋았죠. 그때 유신으로 많이 사회 개혁했잖아요. 필요악이라고 할까?"
▶ 인터뷰 : 김동현 / 서울 잠실동
- "좌파 쪽을 간첩이라는, 빨갱이라는 말로 싸잡아서 이념싸움을 한다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인 생각이 아닌가…."
손 이사장의 발언은 다시 국민 여론을 편가르기한 셈입니다.
대통령은 이제 정쟁에서 벗어나 민생으로 가려 하는데, 손 이사장의 발언은 의도하지 않게 또다시 대통령을 정쟁으로 끌어들였습니다.
적어도 대통령이 원하지 않았을 방향인데 말입니다.
경기는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뛰는 전세금에 서민들의 주름살은 늘어가고 있습니다.
정치도 중요하고, 민생도 중요합니다.
정치권에서 풀 일은 풀고, 챙길 건 챙겼으면 합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영상편집 : 신민희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