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 매주 월~금 / 오후 3시 20분
진행 : 김형오, 차유나
인터뷰 : 이애주 전 의원 (고 육영수 여사 서거 당시 수간호사)
▶ 1974년, 육영수 여사가 흉탄에 돌아가시던 날 바로 곁에 있었던 분입니다. 이애주 전 한나라당 의원 만나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 피격당하는 현장에 계셨어요?
-아니요, 병원이요.
▶ 당시 이애주 의원께서는 병원 수간호사였습니까?
-네, 제가 서울대 병원 특실 수간호사였습니다. 그래서 분명하게 서울대학교 병원으로 오실 거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피격당한 사실을 아셨어요?
-그날 아침에 제 친구가 출국을 하는데. 옛날에는 다 공항까지 갔거든요. 가는 길에 방송에서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듣자마자 ‘아, 서울대학교 병원으로 오시겠구나.’그 생각을 하고 택시를 돌려서 바로 서울대학교 병원으로 갔습니다.
▶ 서울대학교병원으로 오면 병원의 수간호사인 내가 있어야 되니까 다시 돌아오셨군요.
-네.
▶ 그때 심정이 상당히 충격적이었을 것 같아요.
-그렇습니다. 제가 얼마나 다급한 생각이었냐면 분명히 서울대학교 병원으로 오실 거고. 제가 아이를 데리고 공항에 데리고 가던 길이었습니다. 26개월 된 아이를 골목에 내려놓고 “너 집에 혼자 가라” 그렇게 하니까 걔가 혼자 갈 수 있다고. 그래서 제가 바로 택시를 타고 공항을 떠나서 집으로 왔는데요. 원남동 4사거리부터 경비가 삼엄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난 빨리 가야 된다” 그렇게 얘기를 하고. 경비 아저씨들 다 통해서 들어갔는데. 저는 일단 제 병실로 갔습니다. 특실 간호사실로 갔더니 우리 간호사들이 다들 너무 초조하게.. 그래서 제가 어디에 계시냐고 물었더니 “수술중이십니다” 그래요. 그러니까 이미 도착해서 수술이 시작된 다음에 제가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우리가 초조하게 있는데 조금 있다가 수술실에서 필요한 물품 때문에 저희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갔어요. 제가 수간호사여서 병실에 도착했는데.. 저는 69년 1월부터 병원에 근무했습니다. 74년이니까 5년 남짓이었는데 그동안 제가 본 환자 상태로 볼 때 수술실 문을 딱 여는 순간, ‘아, 우리랑 같이 이제 못하시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 상당히 위독했던 상황이었나요?
-네. 위독했다기보다 수술현장이.. 수술실에 안 가보셨죠? 수술실 문을 딱 열었는데 수술실이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미 바닥에 피가 흥건하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 이미 돌아가시고 나서 도착하신 건가요?
-수술을 막 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수술을 막 하고 있는데 딱 들어서니까 양쪽 팔과 양쪽 다리로 수혈을 계속 하고 있는데 거의 줄줄 넣는 상태였고. 그만큼 뇌 쪽에서 출혈이 있는 거거든요. 바닥에 피가 흥건한 상태여서 5년 반 근무했던 간호사로서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너무 아프고. 사실 모든 분들이 그런 얘기를 하십니다만 육 여사는 모든 국민한테 존경과 사랑을 받지 않으셨습니까. 저 또한 굉장히 육 여사를 좋아했던 국민이 한 사람으로서.. 나오는데 구두 밑창의 피 때문에 끈적한.. 그런 것을 아무도 경험하지 못하셨을 거예요. 저는 그날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 1974년이면 아무리 서울대 병원이고 의료기술이 좋아도 총탄을 여러 군데 맞은 환자를 살리기에는 역부족한 상황이었을 것 같아요.
-총탄을 여러 군데 맞으신 건 아니고요. 딱 네 부만 맞으셨습니다. 그때 수술하셨던 선생님이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 계시는데요. 그 선생님 말씀이.. 그날이 8월 15이고 아침에 약간 비가 왔습니다. 그 선생님이 친구들과 약속이 있었는데 취소하고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시는데 중계방송 중에 여사님 고개가 딱 떨어지더랍니다. 그 선생님은 자기 직감으로 ‘수술할 사람은 나다’ 그래서 바로 집에서 입은 옷차림으로 병원에 도착하셨다고. 나중에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 육 여사가 병원으로 후송됐을 때 박정희 대통령도 같이 오셨어요? 자제분들도 같이 왔나요?
-제가 도착을 했을 때 이미 영부인은 수술중이셨고 301호실 특실에 보호자분들과 대통령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박정희 대통령이 잠시 후에 어딜 가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마음속으로 ‘세상에 저렇게 중한으로 수술을 받으시는데 어딜 가시나’ 했더니 그 날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지하철이 개통된 날이에요. 그래서 거길 가신 거예요. 거기에 갔다가 다시 오시는데 방송에서 제가 그걸 듣고 ‘세상에 남편의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 건데 그보다 더 중요한 나라의 대통령이기 때문에 저렇게 하시는구나.’ 마음속으로 참 대통령이 그날 안 되어 보이셨어요. 그리고 돌아 오셨습니다. 조금 있다가 식구들하고 계셨는데 그때까지도 방에 누구누구 계시는지 저는 몰랐어요. 왜냐하면 안 찾으시면 우리가 환자 방에 안 가니까. 그런데 나중에 가실 때 보니까 장모님, 지금 박근혜 대통령님의 외할머님과 여동생, 남동생만 있고 대통령은 안 계셨습니다.
▶ 그때 프랑스 유학중이었죠?
-저희는 그걸 모르고. ‘큰 딸은 어디 갔나.’ 당연히 이랬죠.
▶ 박정희 대통령이 옆방 특실에 계셨잖아요. 어떠셨어요? 지하철 기공식도 가신 거 보면..
-갔다 오셨는데 너무 굳은 얼굴로 계단을 올라오시더라고요. 저희 특실 간호실이 2층이거든요. 그래서 아래에서 올라오시는 게 다 보이는데 너무나 굳은 얼굴로. 저희가 인사를 하니까 인사를 받으시면서 그냥 올라가셨습니다. 한참 있다가 수술이 마무리가 되었는지 저를 찾았습니다. 회복실에서 환자분이 조금 그러니까 물품을 가져와 달라고 해서. 그때는 이미 수술이 끝났으니까 제가 수술실이 아닌 회복실로 물건을 챙겨서 가지고 갔습니다. 평소에 육영수 여사 하면 얼굴이 갸름하신데 피가 계속 나니까 그 피를 조금이라도 덜 나게 하려고 압박붕대로 얼마나 묶어두었는지 아랫부분이 너무 많이 부으셨어요. 그래서 저는 딱 들어가는 순간, 너무나 정말.. 자녀분들이 그 모습을 뵈었으면.. 저도 충격인데. 그래서 저도 너무 슬프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일이 겪는 나라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 일도 그렇고 힘들어서 정신을 잠시 놓고 서서 환자분을 뵙고 있었어요. 그런데 옆에서 제 옷을 당기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약간 신경질적인 반응으로 무슨 일 인가 보았더니 오른쪽을 보라는 눈빛을 해서 오른쪽을 보니 대통령이 와 계신 거였어요. 그런데 저는 누가 오신 것도 모르고 제 감정에 어떻게 할 수 없어서 서 있었거든요. 그런데 박정희 대통령이 오신 거예요. 그래서 제가 돌아보는 순간 너무 놀라서 뒷걸음을 쳐서 병실로 올라갔습니다.
▶ 임종하는 순간 옆을 지키셨고 유품 정리도 하셨잖아요.
-유품들이 거의 없었죠. 옷 입고 오신 것 뿐 이었어요. 다치시자마자 이동을 하느라 옷 입은 채로 그대로 오셔서. 병원에 오시자마자 제가 알기로는.. 저는 그때 응급실에 없었으니까. 오시자마자 바로 수술실로 옷을 정리해서 갔다고 해요. 나중에 그 옷하고 정리를 우리보고 해달라고 하셨는데..
▶ 옷도 낡은 옷이어서 대통령 영부인이 이런 옷도 입으시는구나..
-네. 그리고 그때 방송에서는 주황색 한복을 입으셨다고 했는데 주황색이 아니고 주황색 동그란 무늬가 든 옷을 입으셨습니다. 나중에 청와대에서 유품과 옷을 정리해달라고 하는데 이미 우리가 옷이 어디에 갔는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그 생각을 미처 못 해서. 그때 당시 저희 간호과장님이 저녁에 찾으셔서 우리도 옷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옷은 국산 감으로 한 한복이었고 속옷도.. 요즘에 누가 그런 것을 입겠습니까.
▶ 알려진 대로 검소하셨군요. 가난한 나라의 대통령 영부인이니까 국민과 고통을 같이 한다는 의미에서 검소하게 사셨던 것 같네요.
-제가 이것과 연결해서 여사님이 얼만큼 검소하셨는지를.. 제가 단골도 다닌 작은 미용실이 있습니다. 오래된 미용실인데 그 미용실에 오는 손님 중에 청운동에 살았데요. 그래서 청와대에 잔디밭을 가꾸는 분이 계셨어요. 그 분 말씀이 늘 단정하고 깔끔하시지만 옷은 굉장히 낡은 채로 입으셨고. 밥은 가능하면 싸오시면 좋겠다고 하셨대요. 그래서 사람들이 잔디 가꾸러 오는데 밥까지 싸오나 그랬더니 매번 점심으로 국수를 드신다고. 그래서 밥을 드실 분은 싸오시고 아니면 우리가 아침에 먹은 밥을 드린다고. 그런데 그 밥이 옛날 납작 보리라고 있습니다. 납작보리만 둔 밥이었다고 합니다. 그 분이 그런 얘기를 하시면서. 언제라도 육 여사님을 검소한 영부인이라고 칭찬하시는 그런 분이 계십니다.
▶ 관내에서 칼국수를 먹은 게 김영삼 전 대통령이 시초인 줄 알았더니 육영수 여사가 그렇게 또 드셨군요.
-그때는 쌀이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우리 모두 밀가루 음식을 먹을 때였습니다.
▶ 그때 그런 광경을 보시고 지금은 박근혜 대통령이 되시고. 이런 모습을 보시면서 감회가 남다르셨을 것 같아요.
-저는 사실 정치인이 아니잖아요. 저는 간호사입니다. 국회에 4년 동안 있었을 뿐인데. 일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생각할 때 정치라는 것도 많이 준비한 사람이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저는 국회에 가서 박근혜 의원님 시절에 의원님을 처음 뵈었을 때 인상이 어머님을 많이 닮으셨습니다. 별로 말수가 없으시고 남의 얘기를 잘 들이시고. 그런데 정말 준비를 많이 하신 대통령 아닙니까? 제가 묻고 싶어요.
▶ 원래는 육영수
-제가 그 날에 뵌 건 박정희 대통령이 장모님을 굉장히 존중하시는 모습을 뵈었고요. 그리고 양쪽에 아드님 따님을 데리고 가시는데 정말 뒷모습이 쓸쓸해 보였습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 말씀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