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장성택이 전격적으로 처형된지 나흘이 지났습니다.
40년간 북한의 2인자로 권세를 누렸던 그이기에 그의 처형은 너무나 충격적이고, 북한 사회는 요동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예상보다 북한은 평온하고, 피 바람이 불것이라던 전망은 적어도 현재까지만 놓고 보면 틀렸다고 시인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장성택 처형.
모두들 깜짝 놀라고 경악을 금치 못한 그 일에 적어도 한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았던 모양입니다.
바로 김정은입니다.
김정은은 장성택을 처형한 다음 날 인민군 산하인 군 설계연구소를 현지지도했습니다.
군 설계연구소는 평양시 뿐 아니라 북한의 주요 건물이나 교량 등 대규모 건설 공사를 설계하는 곳입니다.
마식령 스키장도 이곳에서 설계했다고 합니다.
이곳을 방문했던 김정은의 말입니다.
"당의 전국요새화 방침과 사회주의 문명국 건설 구상을 관철하는 데 설계연구소가 맡은 임무가 대단히 중요하다. 건설의 대번영기를 위한 투쟁에서 선구자의 구실을 해야 한다."
▶ 인터뷰 : 조선중앙TV
-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동지께서는 당의 전국요새화 방침과 사회주의 문명국 건설 구상을 관철하는데 조선인민군 설계연구소가 맡은 임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설계 연구소 방문 사진을 볼까요?
맨 왼쪽에 있는 인물이 바로 군을 담당하는 황병서 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이고, 그 옆이 최룡해 총정치국장, 그리고 김정은 뒤에 얼굴이 반만 보이는 사람이 장정남 인민무력부장입니다.
이 세사람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설계연구소 방문 다음 날에는 마식령 스키장을 찾았습니다.
이걸 보면 김정은은 마식령 스키장에 대해 대단히 집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식령 스키장을 방문한 김정은의 말입니다.
"마식령 호텔은 북한의 호텔 중 가장 잘 건설했고, 스키 주로도 세계적 수준이다. 조명이 있으면 밤에도 스키를 탈 수도 있고, 전국의 청소년 학생들이 마식령 스키장에서 즐길 수 있도록 숙소를 더 건설하자."
김정은이 마식령 스키장에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요?
입장료가 50달러 인데, 이 돈을 내고 스키를 즐길 북한 주민들이 얼마나 될까요?
중국 관광객을 유치한다고 해도, 외지고 비싼 마식령을 스키장을 찾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김정은은 올해 완공을 앞둔 마식령 스키장을 방문하며 한없이 흐뭇한 웃음을 짓고 있습니다.
스키를 좋아하는 김정은으로서는 마음껏 스키를 탈 수 있게 돼 한없이 행복한 것일까요?
스키장 방문 사진도 한번 보시죠.
오른 쪽 끝에 보이는 인물.
앞서 설계연구소 방문때도 보였던 황병서 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입니다.
황병서는 2010년 9월 김정은이 대장 칭호를 받은 날 중장 계급장을 받았고, 김정은이 군을 장악할 수 있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가 올해 김정은을 수행한 횟수는 51차례에 이릅니다.
황병서는 어제 김정은이 방문한 군 수산사업소에도 모습을 드러냅니다.
김정은 지난 5월27일에도 이곳을 방문해 어선 4척을 선물하며 고깃배당 해마다 (물고기) 1,000톤은 잡아야 한다'며 이를 달성할 경우 자신에게 편지로 알려 달라고 말했습니다.
최근 이 수산사업소가 지난 6개월 동안 물고기 4,000톤을 잡았다는 편지를 김정은에게 보내자, 김정은이 직접 이곳을 다시 방문한 것입니다.
김정은의 말입니다.
"(물고기로가득찬 냉동창고를 보고) 포탄들이 차있는 탄약창고 같다"
"어로 전투에서 대단한 성과를 쟁취한 종업원들에게 김정은이 인사를 보내오, 고맙소"
이 사진을 보시죠.
수산사업소 병사 관리들과 팔장을 끼고 환하게 웃는 김정은의 모습입니다.
장성택 처형에 대한 심리적 동요나 불안감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김정은은 또 지난 13일 사망한 노동당 검열위원장 김국태의 빈소를 방문했습니다.
할아버지 김일성이 그랬던 것처럼 병사들과 측근에게 자애로운 어버이 수령의 이미지를 심어주려는 듯 보입니다.
장성택 처형이후 북한 고위 관리는 북한의 경제정책은 하나도 변하지 않는다고 강조했습니다.
적어도 겉으로는 지금 북한은 장성택 처형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그게 의도적으로 연출된 평온이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 인터뷰 : 김광진 /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
- "고모부 장성택을 숙청하고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북한 1인자는 건재해 있고 나라의 모든 일들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다…."
장성택 처형 이후 김정은의 3일은 '자 봐라. 장성택이 없어도 북한은 잘 돌아간다. 내가 북한을 확실하게 장악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주려 한 듯합니다.
너무나 일상적인 3일이었습니다.
내일은 김정일 사망 2주기입니다.
오늘 북한은 대규모 중앙추모대회를 여는데요.
여기서 주석단에 누가 앉는지를 유심히 봐야 합니다.
지난해는 김정은 제1위원장 오른쪽에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왼쪽에는 최춘식 제2자연과학원 원장이 앉았습니다.
최춘식 원장의 파격적인 배치는 지난해 장거리 로켓 발사 성공의 주역이라는 점이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김정은의 왼쪽에는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과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이 자리했고, 현영철, 김격식 등 군부 내 대표적 강경파 모습도 보입니다.
하지만 올해는 장성택과 현영철, 김격식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겁니다.
대신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 조연준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황병서 조직지도부 부부장 등이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른쪽에는 장성택 처형 이후에도 건재를 과시한 김경희와 박봉주 내각 총리가 앉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들 역시 어디까지나 '곁가지'에 불과합니다.
'김정은 밖에 모른다'는 군가 처럼 북한은 곧 김정은이요, 김정은이 곧 북한인 셈이니 다른 사람들의 존재가 기억될 리 만무합니다.
이들도 언젠가 쓸모가 없어지면 장성택 처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겠죠..
이들은 그 운명을 알까요?
그리고 측근들을 이렇게 쳐낸 김정은의 운명을 김정은 스스로 알까요?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영상편집 : 신민희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