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청와대 분위기는 어떨까요?
박 대통령 지지율은 큰 폭으로 떨어졌고, 새누리당 지도부는 박 대통령을 지원하기보다는 어깃장을 놓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김무성 대표의 말입니다.
▶ 인터뷰 : 김무성 / 새누리당 대표(국회 교섭단체대표연설)
-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며, 정치인이 그러한 말로 국민을 속이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정치인이 인기에만 영합하면 그 나라는 미래가 없다는 사실은 아르헨티나와 그리스의 사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김무성 대표의 이 작심발언은 최경환 부총리를 겨냥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한 것인지를 놓고 하루종일 해석이 분분했습니다.
그러나 여당 대표가 그것도 국회연설에서 경제부총리를 향해 이런 말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더 윗선을 향한 발언이었을까요?
어제 국무회의를 개최한 박근혜 대통령은 이런 김무성 대표의 발언에 대해 아무런 말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오전에 예정된 국무회의를 오후로 미뤘습니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오전 10시에 국회 연설을 하는 김무성 대표를 배려한 것이라는 말도 들렸습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의 어제 발언을 보면 뼈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 인터뷰 : 박근혜 / 대통령(어제 국무회의)
- "앞으로 내각은 국무조정실을 중심으로 해 부처 간 정책 조율과 협의를 더욱 강화하고, 신설되는 정책조정협의회를 통해 청와대와 내각 간에 사전 협의와 조율도 강화해 나가기를 바란다."
당정청의 정책 조율이 아니라 청와대와 내각의 정책 조율을 강조한 것입니다.
당과는 거리두기를 하겠다는 뜻일까요?
증세와 관련한 김무성 대표의 물음에 대한 답은 박근혜 대통령을 대신해 최경환 부총리가 했습니다.
▶ 인터뷰 : 최경환 / 경제부총리(어제)
- "국민적 컨센서스(합의)가 이뤄지도록 해주시면 정부로서도 그 과정에 참여도 하고 결과를 수용하는 방법을 찾아보겠다"
증세는 절대 없다던 최경환 부총리가 결국 김무성, 유승민 두 사람의 공세에 밀린 모양새입니다.
그러나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은 아닐 겁니다.
이제 정책의 주도권은 청와대가 아니라 당으로 쏠릴 가능성이 큽니다.
유승민 원내대표의 말입니다.
▶ 인터뷰 : 유승민 / 새누리당 원내대표
- "(예전에는) 일방적인 관계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청와대나 정부가 하고 싶은 과제들을 우리는 일방적으로 뒷받침하고. 일방적인 관계에서 쌍방향의 관계로 바꾸자…."
이런 역학관계의 변화는 여론조사에서도 드러납니다.
리얼미터 여론조사를 보면, 유승민 원내대표 선출된 직후인 어제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긍정이 31.9%로 전날 33.4%보다 떨어졌습니다.
반면, 새누리당 지지율은 2일 38.5%에서 3일 39.6%로 오히려 올랐습니다.
(조사일시: 2월 2일(월), 2월 3일(화) 평일 이틀간 집계.
조사규모: 전국 19세이상 1천명
조사방법: 전화면접 및 자동응답, 유선(50%)·무선(50%) 혼합.
표집오차: 95% 신뢰수준 플러스마이너스 3.1%p
응답률: 자동응답 7.9%, 전화면접 20.5%)
유승민 원내대표의 선출이 박 대통령 지지율을 오히려 떨어뜨린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을까요?
한때 친박이었던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김무성 대표는 캠프총괄본부장을, 유 원내대표는 정책메시지 총괄단장을 했습니다.
박근혜의 남자들이었습니다.
그런 두 사람이 지금은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격한 비판을 쏟아내고 있으니 박 대통령의 심경이 어떨까요?
김 대표는 지난 3일 장대환 MBN 회장의 상갓집에서 조윤성 청와대 정무수석을 만나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것은 교과서적인 이야기'지 누구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습니다.
그래도 박 대통령의 착잡함은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지난 2012년 총선에서 사실상 '박근혜'라는 이름 덕에 금배지를 단 새누리당 의원들, 스스로를 친박이라 칭했던 그들이 이제는 서서히 등을 돌리는 모습을 보는 것도 고통스러운 일일겁니다.
박 대통령은 어쩌면 과거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바람처럼 사라졌던 측근들의 배신이 떠올랐을지 모릅니다.
박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이 일을 떠올리며 '아버지 가까이 있는 사람들조차 싸늘하게 변해 가는 현실은 적잖은 충격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배신하는 일만큼 슬픈 일도 없을 것'고 썼습니다.
지금의 형국은 바로 사람이 사람을 배신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박 대통령이 이들을 멀리할 수는 없습니다.
김무성 대표의 말처럼 새누리당과 청와대는 '풍우동주'입니다.
같은 배를 탄 운명인 만큼, 당의 지원없이 청와대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없습니다.
배신을 한 그들을 멀리하고 국정을 이끌 방법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박 대통령이 변하는 것 뿐일까요?
달라진 정치 지형을 받아들이고, 당의 의견을 적극 수용해야 하는 걸까요?
청와대는 곧 후속 개각을 할 예정입니다.
김기춘 비서실장을 비롯해 큰폭의 개각을 요구하는 당의 의견을 수용할 지, 아니면 박 대통령이 언급했던 대로 소폭 개각으로 갈 지 주목됩니다.
큰 폭의 개각이 이뤄진다면 박 대통령은 변했다는 평
선택의 고심이 클 수 밖에 없습니다.
원칙과 소신일까요? 아니면 변화일까요?
인사안은 사실상 박 대통령의 손에 쥐어졌지만, 발표가 늦어지는 이유가 바로 이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김형오의 시사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