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지난달 30일 김무성표 공천제도를 사실상 비토하면서 새누리당에 ‘공천전쟁’을 알리는 총성이 울렸다.
과거 역사를 돌아보면 야권이 총선을 앞두고 이합집산을 반복했다면 여권은 내부에서 처절한 공천싸움을 해왔다.
지난 2000년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가 정계 거물이던 김윤환·이기택·신상우 의원 등 현역 43명을 탈락시키며 ‘공천학살’이란 표현이 정치권에 본격 등장했다. 2008년 18대 총선때는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가까운 친이계가 당권을 장악하고 친박근혜(친박)계를 대거 밀어냈다.
친박계는 ‘친박연대’와 ‘친박 무소속’등 두 부류로 나뉘어 각자도생을 모색해야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시 “저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며 친이계를 비난했다.
김무성 대표도 이때 공천에서 탈락했다. 김 대표는 사석에서 당시를 떠올리며 “안강민과 박재승이 여야에서 공천위원장을 맡아 경쟁하듯 칼을 휘둘렀다. 그 피해자가 바로 나였다”며 “이제 국민이 공천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2012년 19대 총선때는 반대로 친박계가 칼자루를 쥐었다.
한때 친박계 핵심이었지만 대오에서 이탈해 있던 김무성 대표는 또 다시 공천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김 대표는 이때 탈당하지 않고 ‘백의종군(불출마)’을 선언했고, 지난 대선에서 다시 박 대통령의 편에 섰다. 하지만 1등 공신 반열에 오르지 못한 채 결국 서청원 최고위원과 힘든 싸움을 거쳐 지난 해 7월 당권을 스스로 획득했다. 박 대통령과 김 대표를 모두 잘 아는 정치인들은 두 사람의 관계를 ‘물과 기름’에 비유한다. 2인자를 허용하지 않는 박 대통령의 스타일과 특유의 보스 기질을 지닌 김 대표는 함께 갈 수 없다는 시각이다.
그럼에도 김 대표는 결정적 순간에는 박 대통령을 택해왔다. 지난 여름 국회법 파동때도 그랬다.
하지만 ‘박심(朴心)’은 일찌감치 김 대표로부터 멀어졌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여권에서 대권 선호도 1위를 달리는 김 대표지만 박 대통령은 그를 차기 대통령 후보로 생각하지 않는다는게 친박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이미 친박계는 반기문·김문수·오세훈 등 ‘플랜B’를 모색해야 한다고 얘기해왔다.
한 새누리당 의원은 “현재 권력이 미래 권력을 비토하는 상황이니 의원들도 눈치를 보는 것”이라며 “과거 김영삼(YS) 전 대통령과 이회창 전 총재,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의 관계를 보면 이미 답이 나와 있다”고 말했다. 과거 방식의 공천 싸움이었다면 선거 두달여 전에야 본격화됐을 계파간 충돌이 오픈프라이머리 논란으로 인해 4~5달 앞당겨졌을 뿐이란 얘기다.
권력 구조로 봐도 18·19대 총선은 각각 이명박·박근혜 두 정치인의 권력이 확고부동한 상태였지만 20대 총선은 김 대표가 아직 차기 대권주자로 확고한 입지를 굳히지 못한 상태에서 치러진다는 차이점이 분명하다.
이제부터 계파간 진검승부가 불가피해 보인다.
올 초 ‘김무성-유승민(K-Y)’ 체제가 등장하자 친박계는 소수파로 전락하고 비박계가 당을 장악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유승민 파동을 거치며 다시 친박계가 뭉쳤고, 박 대통령 지지율이 상승하면서 오히려 친박 우호세력이 수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다만 친박계가 이슈마다
[신헌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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