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교과서, 선거구 획정 등으로 치열한 기싸움을 벌이고 있는 여야가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통과는 일사천리로 진행해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통시장 상인들의 표심을 의식해 규제 강화에 힘을 모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회는 12일 본회의에서 전통시장과 전통상점가 인근 1㎞ 이내에 대형마트나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입점을 금지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현행 유통산업발전법은 지자체 조례로 전통시장 1km 이내를 ‘전통상업보존구역’으로 지정하고 이 구역 내에 대형마트 등 대규모 점포 개설을 제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난 2010년 시행된 전통상업보존구역 제도는 부칙의 일몰규정에 따라 오는 23일로 효력이 만료될 예정이었으나 이번 개정안을 통해 일몰규정의 유효기간이 5년 연장됐다. 당초 정부안(3년)보다 더 길어진 5년으로 통과된 것은 시장 상인들의 표를 의식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유통법 개정안 통과가 표와 직결된다고 국회의원들이 생각한 것 같다”며 “이같은 포퓰리즘 때문에 최근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는 대형마트들의 경영상태는 더욱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이마트, 롯데마트 등 국내 대형마트들의 매출실적(기존점 기준)은 지난 2012년 -3.5%, 2013년 -8.5%, 2014년 -11.2%를 기록했다. 내수 침체라는 큰 장벽에다 강제휴무제, 출점제한 등 각종 규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게 대형마트측의 설명이다.
국회는 이번 5년 연장의 배경으로 골목상권과 전통시장을 보호하자는 입법 취지가 아직 달성되지 않았다는 점을 꼽고 있다. 하지만 대형마트측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이같은 출점제한 조치가 사실상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 만큼 일몰제의 취지를 살려 유효기간을 연장하지 않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2010년 규제를 도입한 이후 전통시장의 매출은 꾸준히 감소세를 보이고 있는 만큼 국회가 선거를 앞두고 표만 의식하지 말고 규제의 실효성을 다시 한번 진지하게 검토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특히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소비자의 선택권이 제한된 것은 물론 농어민과 중소제조업체 등 납품업체들의 피해도 커지고 있다. 또한 대형유통사의 투자 축소, 소비위축에 따른 경기
안승호 숭실대 교수(한국유통학회장)는 “유통법을 통한 규제는 객관적인 성과측정 없이 정치적 여론에 의해 좌우되는 경향이 있다”며 “소비를 살리려면 하루빨리 정치적 논리가 아니라 경제적 논리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손일선 기자 / 안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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