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치권의 최대 화두는 박근혜 대통령의 ‘진실된 사람’ 발언으로 불거진 물갈이론이다. 그 이면에 묘하게 맞물려 주목받는 또 하나의 화두가 바로 ‘반기문 대망론’이다.
친박계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이 불쑥 제기했다가 해프닝성으로 일단 가라앉은 이원집정부제 개헌론은 누가봐도 반기문 유엔(UN) 사무총장(71)을 염두에 둔 시나리오였다. 여기에 반 총장의 북한 방문이 초읽기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지면서 반기문 대망론은 이제 정치권에서 변수가 아니라 상수로 서서히 자리잡아 가는 분위기다. 지난 대선에서 거세게 불었던 안철수 바람을 연상케 한다. 지난 15일 한길리서치의 대선 지지율 조사에서 반 총장은 21.1%를 얻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각각 12.5%)를 더블스코어로 제쳤다.
물론 반 총장은 여전히 국내정치에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그가 한번도 “대선에 출마하지 않는다”고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은 점에 주목한다. 또 반 총장에 우호적인 쪽에선 “정치는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강조한다. 내년 12월 임기를 마치기 때문에 2017년 초반부터 시작될 대선 스케줄을 감안하면 아직 결단을 위한 시간도 충분하다. 반면 현실 정치에 직접 몸담그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선 고건·이수성·정운찬·안철수 등의 학습효과를 들어 출마 가능성을 낮게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본지는 20일 정치 전문가 4인에게 대권 후보로서의 반기문의 ‘SWOT(강점·약점·기회·위협)’을 물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국민들이 국제사회를 주도할 리더를 원하고 있고, 통일이 차기 정권의 최대 과제가 될 것”이라며 “현재 대선 후보들은 국제사회에서 높은 지명도를 갖춘 반 총장에 비하면 체급이 낮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정치 경험이 없다는 게 약점이지만 출마선언을 하면 지지율이 지금보다 훨씬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반면 박원호 서울대 교수는 “양당 구도를 가로질러 중도파 유권자를 흡수할 수 있는 파괴력이 있지만 정치적 자원이 없고 비전도 알려진 바 없다”며 “모가 될 수도 있지만 도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중도층 흡수력이 장점이 될 수 있지만 실제로 반 총장이 여야 거대정당 중 한쪽을 택할 경우 ‘원심력’에 의해 지지기반이 오히려 반감될 가능성이 상존한다는 분석이다.
박 교수는 이어 “유엔 사무총장까지 한 분에게 (대선 출마는)보장없는 리스크”라며 “정당에 들어가서 인파이트할 준비가 돼있는지 모르겠다. 스스로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출마 가능성에 낮은 점수를 매겼다.
유용화 정치평론가는 “중도 성향에다 충청권 출신, 국제적 인물이라는 것이 큰 강점”이라면서도 “정치적 능력이 검증되지 않아 거품론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고 자칫 포퓰리즘으로 흐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여권 내 강력한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실력자들이 조직적으로 밀어주면 대망론이 현실화될 가능성도 있다”면서 “그러나 과거 고건, 정운찬 전총리 등의 사례에서 본인이 정치적 리더십을 갖추지 못하면 결국 낙마하는 것을 봐왔다”고 강조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센터 소장은 “기존 정치인들에게 국민들이 식상해 있다는 것은 기회요인”이라면서도 “대선 국면에선 시간이 흐를수록 장점보다 단점이 부각된다”고 말했다. 최 소장은 “반기문 대망론이 현실화되려면 확고한 정치세력과 연대하거나 국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방법 중 하나로 가야 한다”며 “그러나 한국 정치에서 그런 실험이 성공한 적은 없다”고 덧붙였다.
반기문에 우호적인 친박계 의견도 아직은 신중론에 가깝다. 친박계 핵심 A 의원은 “고건이나 김황식 사례에서 보듯 정치권의 닳고 닳은 사람들이 반기문을 위해 자기를 버리고 나설지 의문” 이라면서도 “김무성 대표 역시 권력의지가 약해보인다는 점에서 변수는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친박계 B 의원은 “능력만 보면 훌륭한 분이지만 현실 정치에서 당내 경선을 통과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며 “무엇보다 권력을 향한 의지를 확인할 길이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친반연대’라는 자생조직까지 생겨나는 마당이지만 정작 반기문 대망론의 진원지인 충청권도 조심스러운 반응이다. 익명을 요구한 충청권의 반 총장 측근 인사는 “아직 대선 출마를 거론하긴 이른 시점이고 언론보도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사무총장 임기 종료에 맞춰 내년 하반기나 늦으면 내후년 초까지 기다리며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야권도 비문재인계를 중심으로 반기문 야당 영입설에 군불을 떼고 있지만 속내는 다른 곳에 있다는 분석도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중진 의원은 “야당으로선 김무성 대표가 대선에 나오는 것이 나은 카드”라며 “반 총장이 여당 경선에 뛰어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전문가나 정치권
[신헌철 기자 / 추동훈 기자 / 유준호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