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서거로 정쟁으로 가득찼던 국회가 소강상태로 접어든 가운데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YS의 인연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양당 대표 모두 김 전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남긴 ‘화합’과 ‘통합’의 메시지를 깊이 새기고 있어 혼란한 정국에 향후 한줄기 빛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김 대표는 지난 22일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하자마자 이날 아침 일찍 빈소를 찾아 안타까운 심정을 내비췄다. 자신은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로서 상주임을 자처했고 개인일정을 취소하면서까지 빈소를 지키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김 대표는 김 전 대통령이 이끌던 ‘상도동계’의 막내로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 전 대통령의 재정을 관리하는 선거대책위원회 재정국장을 맡았고 1990년에는 3당 합당에 참여해 민주자유당에 합류했다. 1993년 김 전 대통령이 취임하고 나서는 청와대 민정비서관, 내무부 차관을 역임하면서 정치적 기반을 닦았다.
김 대표가 김 전 대통령의 ‘문지기’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1987년 당시 신민당을 탈당한 김 전 대통령은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통일민주당을 창당했으나 대통령 후보단일화를 두고 반목을 거듭했다. 이 맘때쯤 김 전 대통령의 자택에 난입한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자택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떡대’같은 사람이 바로 김무성 대표였다”고 회고했다.
반면, 문재인 대표는 김 전 대통령의 도움으로 좀 더 정치판에 일찍 뛰어들 기회가 있었다.
문 대표는 1982년 연수원을 졸업하고 변호사 개업을 먼저 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동업을 시작했다. 당시 문 대표는 사법연수원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도 대학 시절 시위 경력이 문제가 되면서 발령을 받지 못했다. 노 전 대통령과 동업 이후 문 대표는 민권운동에 뛰어들고 노동 분야의 변론도 맡게 되면서 그의 고향인 부산지역에서 신망이 높아만갔다.
그러던 중 1988년 13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였던 김 전 대통령의 영입리스트에 재야 인권변호사로 이름을 떨친 문 대표와 노 전 대통령, 김광일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올라갔다. 개혁적이고 참신한 인물을 발굴해 부산지역 총선을 승리로 이끌겠다는 김 전 대통령의 복안에 적합한 인물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김 전 대통령은 문 대표와 경남고 동기로 자신의 공보비서였던 박종웅 전 한나라당 의원을 보내 설득에 나섰다.
노 전 대통령과 김 전 실장은 김 전 대통령의 영입제입을 고심끝에 승낙한 반면 문 대표는 김 전 대통령의 밀명을 받고 온 박 전 의원에게 “내 성격 모르나. 난 정치 안 할란다”라고 단칼에 선을 그었다. 문 대표의 거절에 김 전 대통령은 다시 한번 그의 복심인 문정수 전 부산시장을 급파했다. 그러나 문 대표는 끝까지 출마를 고사하면서
[안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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