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統合)과 화합(和合).’
22일 서거한 김영삼 전 대통령이 필담을 통해 남겼다는 이 마지막 유훈이 정치권에 메아리처럼 울리고 있다. 소모적인 정쟁, 반목과 질시로 얼룩진 국회에서도 이번만큼은 김 전 대통령의 유훈을 따라 국민만을 생각하며 통합과 화합을 추구해야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친노·비노로 패가 갈려 이전투구중인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먼저 반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석현 국회부의장은 22일 자신의 트위터에 “이 시대의 야당은 왜 ‘양김(김영삼·김대중) 공조’같은 굳건한 단합을 이루지 못하는가”라며 “1980년대 전두환 신군부 때 평상의 경쟁자인 김대중, 김영삼 세력은 민추협(민주화추진협의회)으로 뭉쳐 독재와 싸웠고 직선 개헌을 쟁취했다. 문재인, 안철수는 왜 그렇게 못하냐”거 한탄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지난 18일 ‘문-안-박(문재인·안철수·박원순) 연대’를 공식 제안했지만 여전히 내홍에 시달리고 있는 게 새정치민주연합의 속사정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내부에서는 문 대표와 안철수 전 대표가 과거 김 전 대통령과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경쟁할 땐 경쟁해도, 화합할 땐 화합했던 것처럼 협력 관계로 돌아서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권노갑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도 “김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 역시 라이벌이었지만 민주화라는 큰 대의를 위해 서로 협력해서 큰 정치를 했다”고 말했다.
당 내부에서 문 대표와 안 전 대표가 화합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안 전 대표는 지난 22일 김 전 대통령 빈소에서 ‘통합과 화합을 위한 정치’를 거론했다. 문 대표와 손을 잡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지만 안 대표는 “문-안-박 구상과는 관련이 없는 언급이었다”고 말했다.
사정은 여당인 새누리당도 마찬가지다.
‘공천룰’을 놓고 격돌 중인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서청원 새누리당 최고위원 역시 ‘양김’처럼 화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김 대표와 서 최고위원 모두 ‘YS 문하’에서 정치에 입문한만큼 대의를 위해서는 ‘호랑이굴’에 들어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던 김 전 대통령의 ‘결단’을 본받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중 FTA 국회 비준, 20대 총선 선거구 획정, 2016년도 예산안 등 산적한 현안 속에서 정쟁만을 반복하는 여야 역시 국민들에게 하나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전날 김 전 대통령 빈소를 찾은 박찬종 전 의원은 “두 전 대통령이 민주화의 틀을 공고히 한 덕분에 이제 후배들은 목숨을 걸고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이 오고야 만다’는 말을 할 필요가 없는 시대가 됐다”면서 “그런데도 이렇게 서로 싸울 수가 있느냐. (김 전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전부 불러갖고 회초리를 들고 ‘야 이놈들’ 하고 대성일갈해서 버릇을 고치고 돌아가셔야 했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23일 여야는 약속이라도 한 듯 통합과 화합을 다짐했다.
조원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국회 원내수석회동을 앞두고 “화합과 통합이라는 말을 글로 써주셨는데 자기 것을 조금씩 양보하고 타협하면서 상대를 배려
전병헌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진행된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현대사의 두 거물이 민주화와 정권교체라는 결실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서로를 존중하고 승복하는 문화에 있었음을 되새겨야 할 때”라고 말했다.
[정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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