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합의 통과시키기로 약속했던 북한인권법이 문구 하나 때문에 국회 본회의 처리에 실패했다.
여야는 29일 북한인권법 제2조 문구를 놓고 막판 조율에 나섰지만 결국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협상 결렬을 선언했다. 지난 주말 이틀에 걸친 릴레이협상 끝에 본회의 처리를 약속했던 여야지도부는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렸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북한인권법 제2조 2항에서 ‘함께’라는 단어를 어디에 두느냐가 문제가 됐다. 새누리당은 ‘북한인권 증진 노력과 함께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에서의 평화정착을 위한 방향으로도 노력해야 한다’는 문구를, 더불어민주당은 ‘북한인권 증진 노력은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에서의 평화정착 노력과 함께 추진해야 한다’는 문구를 제안한 상태였다. 새누리당은 ‘함께’를 앞에, 더불어민주당은 뒤에 놓자고 주장했다. 여야는 ‘함께’의 위치에 따라 북한인권 증진과 평화정책의 중요도가 달라진다며 입장을 좁히지 못했다. 야당은 지속적으로 인권증진과 평화정착이 병렬적으로 다뤄져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여야 정책위의장은 본회의 통과를 약속한 이날 오전 직접 만나 문구조정에 나섰지만 실패했다. 김정훈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이목희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을 만난 뒤 “‘함께’를 뒤로 빼자는 야당 주장은 병행보다도 더한 문장이 되기 때문에 앞에둬야 한다”며 “여야지도부가 합의처리하기로 해놓고 약속을 안지키면 어쩌란 말인가”라고 하소연했다. 반면 이목희 정책위의장은 “문구는 북한인권법의 핵심이다”며 “새누리당의 주장대로 한다면 그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에 양보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결국 ‘함께’의 위치가 11년간 기다려온 북한인권법의 통과를 가로막은 셈이다.
양당 정책위의장은 각각 원내대표와 재논의한 후 다시 협상을 진행하기로 했지만 이날 본회의 통과는 사실상 힘들어졌다. 해당 상임위를 통과해 본회의에 올라가 있는 기업활력제고특별법(원샷법)과 달리 아직 외교통일위원회조차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회 관계자는 “문구 하나가 여야 지도부 합의를 무용지물로 만들었다”며 “지도부 합의조차 깨진 상황에서 입장차를 좁힐 수 있을지 의문이다”고 설명했다.
수개월째 공방전이 펼쳐지고 있는 테러방지법은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계좌추적, 통신감청 등 테러 예방에 불가피한 정보 수집은 국정원이 주도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이철우 정보위원회 새누리당 간사는 26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국민안전처에서 자기들이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며 “국정원이 테러 전쟁을 하러가는데 정보수집 도구가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정보수집권을 국민안전처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목희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28일 정책조정회의에서 “그동안 국정원이 보유해왔던 반인권.반민주적 행위들을 정당화하고 더 큰 권력을 부여할 수는 없다”고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야당 의원들이 협상 자체를 거부하
30여 건의 무쟁점법안 처리도 불발됐다. 당초 양당 원내대표는 이들 법안도 이날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했지만 법사위에 안건이 올라오지 않았다. 이날 본회의 처리가 무산된 무쟁점법안들은 2월에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통과될 전망이다.
[추동훈 기자 / 노승환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