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의 전문가들은 한국 정치를 수렁에 빠트린 ‘정당’이 역설적으로 변화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법에 의존하지 않고도 스스로 개혁을 시작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많은 정치인들이 “정당의 목표는 정권 획득이며 선거에 승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막상 권력을 손에 얻은 뒤엔 허둥댄다.
한국의 정당들이 정책 생산보다는 선거 승리에 함몰돼 있기 때문이다. 이내영 고려대 교수는 “여당이 잘한 것도 없지만 야당도 이분법적 논리로 흘러간 옛날 노래만 부르고 있다”며 “집권을 한 뒤 무엇을 할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국 정치의 교착 상태를 해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세금으로 ‘정쟁’말고 ‘정책’을 만들어야
지난 2004년 정당법 개정으로 국고보조금의 30%는 정책연구소 운영에 쓰도록 법제화됐다. 그러나 여전히 나머지 70%는 정당 운영비로 지출된다.
2014년 기준으로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소, 더불어민주당 민주정책연구원, 정의당 진보정의연구소 등 3개 연구소에 투입된 돈은 159억원 수준이다. 반면 정당 정치의 모범인 독일은 정당 싱크탱크에 대한 보조금 총액이 4억2300만 유로(약 5515억원·2011년 기준)로 한국의 35배에 달한다. 정당 운영비는 당원이 납부하는 돈으로 충당하되, 예산 지원은 정책 싱크탱크에 집중하는 것이 독일식 모델이다.
우리도 국고보조금의 최소 60% 이상을 정책개발비에 쓰도록 법을 개정하되 현행법으로 금지돼 있는 정당 후원회를 다시 열어주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이에 대해 국회 입법조사처도 “정책연구소가 단기적인 선거 전략을 마련하는 데 그치고 있다”며 “재정 자립과 자율성을 제고해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매년 1회로 규정된 정당의 회계 보고는 분기별 보고로 바꾸고 세부 내역을 전면 공개할 필요성이 크다.
◆국회 중심 정당으로...인재 육성 시스템 필요
한국 정치의 뿌리 깊은 병폐는 ‘보스 정치’, ‘계파 정치’다. 패거리 정치의 정점에는 중앙당과 당 대표가 있다. 각 당은 2000년대 들어 ‘원내총무’를 ‘원내대표’로 격상시키고 직선제를 실시하면서 미국식 원내 중심주의를 표방했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 정치의 무게중심은 당 대표에게 있다. 과거와 같은 ‘제왕적 총재’는 아니지만 여전히 막강하다. 미국처럼 중앙당 대표를 아예 없애면 어떨까. 모든 현안이 원내에서 결정되는 구조가 되면 의원 개개인의 역할과 권한은 커질 수 있다.
정당이 젊은 인재를 키우지 않는 것도 문제다. 19대 국회의원 당선자 300명 가운데 40살 미만은 9명에 불과했다. 초선 의원 평균 나이가 56.4살에 달한다.
혜성처럼 등장한 캐나다의 총리 쥐스탱 트뤼도는 겨우 43살이다. 그리스의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는 40세에 총리에 올랐다. 45세에 미국 하원의장이 된 폴 라이언은 이미 의원 16년차다. 박재완 성균관대 교수는 “한국은 정치인 육성 시스템이 매우 열악하다”며 “정치를 지망하는 사람들이 정치적 경험을 체계적으로 쌓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선거때만 외부 인사를 수혈하는 리크루팅 시스템이 정치 리더십의 위기를 불러온다는 얘기다.
스웨덴 사회민주당
[기획취재팀 = 신헌철 차장 / 김명환 기자 / 박의명 기자 / 김연주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