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3일 2020년까지 최저 임금인상(시간당 6030원->8000~9000원)을 추진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임금 격차를 50%에서 20%로 줄이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보편적 복지를 늘리는 재정정책으로는 소득 분배개선에 한계가 있다고 보고, 직접 가계 소득을 올려주는 방향으로 정책 틀을 짠 것이다. 강봉균 새누리당 공동 중앙선거대책위원장은 “임금소득으로 적어도 중산층 하위권 생활 정도는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건강한 사회”라고 설명했다. 새누리당 인상안은 선거 막판 경쟁이 가열하면서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등 야당에 대응할 수 있는 ‘맞불’차원으로 보인다. 앞서 더민주는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으로 인상, 국민의당은 최저임금 근로자 평균 소득의 50% 수준 확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전문가들은 여야 정치권의 최저 임금 인상안에 대해 ‘전형적인 표퓰리즘 공약’이라고 인색한 평가를 내렸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우리나라가 새누리당이 주장하는 소득 주도 성장론으로 갈 형편이 아니다”며 “현재 기업 부담이 큰 상황에서 최저 임금 인상까지 이야기하면 빈사상태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치킨집·빵집 등 골목상권 타격 불가피
영세 상인들도 발끈하고 나섰다. 경기 일산 마두동에서 커피숍을 운영하는 조성진씨(55·가명)은 “장사 못한다. 죽으라는 건가”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조씨는 “하루 순이익이 10만원이 채 안되는데 알바는 최소 2명, 8시간씩을 써야한다”며 “여기서 올리면 알바 쓸 여력이 아예 없어진다”고 울상을 지었다. 대구에서 고시원을 운영하는 김금필씨는 “총무, 청소 관리인, 식당직원 등 직원 여러명을 쓰고 있는데 최저 임금을 올리면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며 “그나마 수익도 직원 임금으로 나가버리면 어떻게 운영하라는 얘기냐”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 고위 관계자는 “알바생 표심을 의식한 공약”이라며 “최저임금 인상으로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이 받는 피해는 거의 없다. 결국 치킨집, 빵집 등 골목상권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영국, 일본 등 최저임금 인상을 추진한 나라는 복지 축소를 전제로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최근 최저 임금 인상률이 상대적으로 높았는데 앞으로는 인상폭을 합리적으로 논의해 가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MB정부 때 최저임금 인상률은 평균 5.2%인 반면 현 정부 들어서는 인상률이 7~8%로 높아졌다.
◆정부 근로예산 대폭 증액 불가피
이같은 반발을 의식해 새누리당은 정부 근로장려세제(EITC)를 끌어들였다. 나랏돈을 이용해 영세 상인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얘기다.
EITC는 일은 하지만 소득이 낮아 생활이 어려운 근로자들에게 정부가 현금을 지급하는 프로그램이다. 연간 소득 2100만원 미만 홑벌이 가구나 2500만원 미만의 맞벌이 가구 등이 신청 대상이다. 연간 1조1000억원이 들어가는 EITC 예산에 향후 4년간 1.5배(1조6000억원)되는 돈을 추가로 부어 저소득층 소득을 높이겠다는게 새누리당 복안이다. 이렇게 되면 EITC로 현재 170만원을 받는 가족(4인 홑벌이 기준)은 2020년 최대 510만원까지 받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EITC 지원을 확대하면서 최저 임금 기준 자체도 올리겠다는 입장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조원동 새누리당 경제정책본부장은 “최저임금심의위원회를 통해 기준 자체를 올려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ITC 지원 가구(120만 가구)는 정부 예산으로 지원한다고 하지만, 최저 임금 기준 자체가 올라가면 영세 자영업자가 직격탄을 맞을 수 밖에 없다. 현재 최저임금 이하 임금을 받는 노동자는 220여만명으로 추산된다.
◆비정규직 임금격차 해소도
강 위원장은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동일근로 동일임금’ 법제화도 20대 국회에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전체 근로자 30%가 넘는 비정규직 근로자 임금차별이 소득분배 악화의 가장 큰 요인이라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재계 관계자는 “자동차 업종의 1인당 평균 임금이 일본 자동차 업계를 넘어서고 있다”며 “정규직과 비정규직 임금 격차 해소는 필요하지만 우선은 귀족노조의 임금 체계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비정규직 임금만 끌어올리면 결국 상품, 서비스 가격 상승으로 국민들의 부담만 가중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새누리당은 이밖에 대기업주와 고액자산가의 자본거래, 신종 금융거래, 공익법인 등을 통한 변칙 상속 증여, 불법자금 유출 등을 차단하기 위한 세무검증도 강화하기로 했다. 민간자본을 활용해 임대주택, 유치원, 보건소, 산후조리원 등 복지시설을 확충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임대형 민자사업(BTL)과 수익형 민자사업(BTO)의 중간형태로 민자사업자가 직접 건설해 운영하면서 일정 한도내에서 정부가 수익률을 차등 보전해 주는 방식이다.
정부가 보장하는 최저수익률은 ‘은행금리+α’다. 새누리당은 이날 구체적인 α값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BTO 사업 수익률이 7~8% 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업자들은 4~5% 수준 α값을 요구해 지난 2009년 폐지된 최소운영수입보장(MRG) 문제가 다시 불거질 우려가 있다.
[박용범 기자 / 김정환 기자 / 문지웅 기자 / 추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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