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의 정치’를 심판하겠다며 시작된 비박(非朴) 공천학살과 과도한 진박(眞朴) 마케팅을 벌인 새누리당은 결국 대구 지역의 민심 이반으로 인한 역풍을 맞았다.
새누리당은 선거 막판 아스팔트에 무릎꿇는 ‘사죄 퍼포먼스’까지 벌인 끝에 유승민계의 돌풍을 차단하는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힘을 소진한 친박계는 대구·경북(TK) 출신 김부겸 후보를 앞세운 야권과 친이명박(MB)계의 맹공까지 막아내기에는 화력이 부족했다
애초 영남권의 최대 관심사는 여야 의석수 대결이 아니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에서 벌어진 ‘진박’과 유승민계의 진검 승부에 전국민의 관심이 쏠렸다.
무소속 열풍은 대구에서 공격과 수비를 바꿔놓았다. ‘복당은 없다’, ‘대통령 존영을 반환하라’던 진박 후보들은 성난 민심 앞에 의석 사수를 위해 무릎을 꿇었다. 새누리당은 막판 총력지원을 벌인 결과 전통 지지층의 마음을 일부 되돌리며 유승민계의 동반 원내 입성은 차단했다.
‘태풍의 눈’인 무소속 유승민 후보(대구 동을)는 오후 11시30분 기준75.9%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20대 국회에 사실상 무혈입성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공천 막판 ‘옥새 투쟁’으로 지역구가 새누리당의 무공천 지역으로 남게 되면서 선거 전부터 당선은 예고됐다. 이승천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맞수가 되기 어려웠다.
하지만 유 후보는 웃을 수 없는 입장이다. 무소속 연대를 결성한 류성걸(대구 동갑), 권은희(대구 북갑) 후보가 각각 새누리당 정종섭, 정태옥 후보에 석패했다. 두 후보의 결전은 박 대통령과 유 후보간 ‘대리전’으로 관심을 모았다.
류성걸 후보는 경북고 57회 동기인 ‘친박’ 정종섭 후보와 선거 막판까지 접전을 벌였지만 분루를 삼켰다. 정 후보에 공천을 내준데 반발해 탈당한 류 후보는 선거 전 여론조사에는 정 후보를 앞섰지만, 새누리당의 막판 총공세를 견디지 못하고 오후 11시 30분 기준 6.9%포인트 차이로 패했다.
무소속 3인방의 다른 한 축인 권은희 후보(대구 북갑)도 대구시 부시장 출신 정태옥 새누리당 후보에 오후 11시 30분 기준 30%포인트 이상 뒤지며 생환에 실패했다.
두 후보가 지역의 벽을 넘지 못하고 고배를 마시며 ‘나홀로 당선’에 그친 유 후보의 입지도 위축되게 됐다. 새누리당에 복귀하기도, 독자 세력화를 추진하기도 애매하다.
하지만 새누리당이 입은 내상도 크다. 2000년 이후 16년간 새누리당에 싹쓸이를 안겨준 콘크리트 지지층을 제 손으로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최대 이변은 정통 야권 후보의 대구 입성이다.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대구의 강남’이라는 수성갑에서 김문수 새누리당 후보를 압도적 표차로 누르면서 1988년 소선거구제 도입 이후 28년만에 보수 아성이 무너졌다.
대구·경북(TK) 출신으로 2012년 19대 총선과 2014년 대구시장 선거에서 잇달아 고배를 마셨던 김부겸 후보는 3수만에 대구 입성에 성공하며 단숨에 대권후보 반열에 오르게 됐다. 두 차례 출마 경력이 주는 진정성과 동정 여론, 친박에 대한 지역민의 반감이 순풍이 됐다.
김 후보는 “국민은 더 이상 지역주의에 안주하는 정당을 용납하지 않는다”며 “지역주의나 진영논리를 거부하고 국민만 바라보는 정치를 하겠다”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
MB계로 분류되는 무소속 주호영 의원(대구 수성을)도 새누리당 ‘공천 배제(컷오프)’의 수모를 넘고 수성에 성공하며 4선 고지에 올랐다. 대구 지역의 유일한 새누리당 여성 후보였던 이인선 후보는 보수 표심의 새누리당 쏠림에 기대를 걸었지만 고배를 마셨다.
무소속 홍의락 후보(대구 북을)의 당선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대이변이다. 19대 의회에서 더민주 비례대표 의원이었던 홍 후보는 20대 총선을 앞두고 컷오프되며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당초 힘들 것이란 예상을 깨고 시종일관 여론조사 1위를 놓치지 않은 홍 후보는 결국 당선증을 거머쥐며 이번 선거 최대의 ‘깜짝스타’로 이름을 올렸다.
새누리당은 국무조정실장 출신인 추경호(대구 달성군)와 조원진(대구 달서병) 후보 등이 의석을 사수하며 간신히 체면치레에 성공했다. 이에 따라 19대 총선에서 대구에 걸린 12석을 싹쓸이했던 새누리당은 이번에는 4석을 야권과 무소속에게 내주게 됐다.
13석이 걸린 경북에서는 고전했지만 새누리당이 전석을 석권하며 텃밭이라는 이름값을 지켜냈다.
새누리당 공
[전정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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