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8일(현지시간) ‘뉴욕 회동’ 이 하루 전 갑자기 무산됐다.
주유엔한국대표부 고위 관계자는 7일 매일경제와 통화하면서 “오늘(7일) 오후 이 전 총리 측으로부터 (반 총장을) 면담하지 않겠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면담을 취소한 이유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전임 총리인데다 반 총장과 같은 시기에 정부에 몸담고 있었던 점을 고려해 면담을 주선한 것으로 어느 쪽이 먼저 만남을 제안한 성격은 아니었다”며 이번 면담 추진의 배경을 설명했다.
실제로 한국의 전현직 고위 인사가 뉴욕을 방문하면 반 총장이 해외출장으로 본부를 비우지 않는 한 면담을 종종 진행했던 만큼 이 전 총리와의 만남 자체를 정치적으로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다는게 유엔 측 반응이다. 하지만 이번 만남은 ‘반기문 대망론’이 본격적으로 불거진 후 반 총장이 친노 진영 인사를 만나는 자리라는 점에서 정치권의 관심을 모은게 사실이다.
현재 무소속 국회의원이자 ‘노무현 재단’ 이사장인 이 전 총리는 미 국무부의 초청을 받아 재단 이사인 도종환 의원 등 재단 관계자 10여명과 함께 미국을 방문중이다. 이 전 총리는 8일 낮 12시30분 뉴욕 유엔본부에서 반 총장과 만날 예정이었고 모두 발언 부분은 언론에 공개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 전 총리 측은 “당초 비공개로 차나 한잔 하자고 잡았던 면담의 성격이 변했다”며 공개 행사가 된 점을 들어 취소를 통보해온 것이다. 이에 대해 한 정치권 인사는 “친노(친노무현) 좌장격인 이 전 총리가 반 총장을 만나 웃으며 악수하는 사진이 보도될 경우 여권 후보로 부각되는 반 총장을 이 전 총리가 괜히 띄워주는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며 “그런 해석이 나올 수 있는 점에 부담을 느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 시각을 일부 의식한 듯 이 전 총리는 뉴욕에 오기 전인 지난 5일 워싱턴DC에서 기자들과 만나 반 총장의 대망론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피력했다. 이 전 총리는 “외교관은 국내 정치와 캐릭터(성격)상 안 맞는다”며 “정치는 돌다리가 없어도 물에 빠지면서 건너가야 하는데 외교관은 돌다리를 두드리고도 안 건너간다”고 말했다.
회동 불발에 따라 반 총장과 친노 진영의 감정의 앙금은 풀리지 않은 채로 남겨지게 됐다. 친노 진영에서는 반 총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유엔 사무총장 자리에 올랐다는 점에서 최근 친박 진영의 대권 후보로 그가 거론된다는 사실이 불편할 수 밖에 없다. 반 총장도 향후 대권에 도전하려면 어떤 방식으로든 이 문제에 대응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반 총장이 참여정부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재직할 당시에도 친노 핵심인사들과는 다소 거리감이 존재했다는 후문이다. 반 총장이 당시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국 국무장관과의 대화 내용을 노 전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던 일화는 친노 진영과 반 총장의 거리감을 보여주는 사례다.
참여정부 때 외교부장관을 역임한 반 총장은 2006년 유엔 사무총장으로 선출됐으며,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이해찬 총리가 적극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 총장은 1944년 충북 음성 출생이고 이 전 총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이번 면담 취소는 개운치 못한 뒷맛을 남겼다”며 “대권 도전 가능성을 시사한 반 총장의 향후 행보가 앞으로도 계속 정치적으로 해석될 소지가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뉴욕 = 황인혁 특파원 / 서울 = 박승철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