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금융 자본주의의 중심지이자 ‘적진’ 한복판인 영국 런던에서 김정은 체제를 변호했던 태영호 주영국 북한대사관 공사가 평양을 등지고 서울로 넘어왔다. 이는 지난 2012년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꾸준히 늘었던 핵심 엘리트 계층의 탈북 사례 중에서도 상징적 의미가 크다.
18일 복수의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태 공사 탈북에 격노해 중국 등 해외 각지 공관과 주요 사업장에 검열단을 급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장기간 해외에 주재하고 있는 외교관들의 가족에 대해서는 ‘소환령’을 내려 단속에 나선 것으로도 전해졌다. 또 북한은 최근 대북제재 국면 이후 엘리트 계층의 탈북이 잇따르는 상황에서 태 공사 가족마저 한국으로 넘어가자 이를 막지 못지 못한 인민보안성과 국가안전보위부 관계자들을 고사총으로 처형했다는 이야기도 나오는 상황이다.
대북제재 이후 북한이 밖으로부터 균열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태 공사처럼 국제적인 대북제재 국면에서 해외에서 근무했던 외교관이나 외화벌이 무역일꾼 등과 같은 계층은 그동안 안팎에 낀 ‘넛 크래커’ 신세였다. 이들은 주재 지역에서 북한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제재는 물론 평양의 외화자금 상납 압박과 감시·통제 강화라는 이중고를 겪었다. 이미 북한 외교관들은 대북제재 이전부터 세계 각지에서 밀수나 불법거래·자금 이동 등에 연루돼 추방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이러한 경향은 대북제재 이후 더욱 분명해지고 있는 추세다.
실제로 태 공사가 근무했던 영국은 유엔 대북결의 이후 자국에서 활동하던 북한 국영 보험회사 사무실을 폐쇄시키고 자산을 동결시키며 평양으로 가는 외화 공급선을 약화시켰다. 이에 영국이 지난 해 민주주의와 보편적 인권의 상징적 문서인 마그나카르타(대헌장) 800주년을 맞아 북한인권 문제를 집중 제기하며 비판의 수위를 높이고 있는 것도 태 공사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을 공산이 크다.
통일부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태 공사가 대북 제재 이후 본국으로부터 상당한 외화 상납 압박을 받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태 공사의 탈북에 대해 “김정은 체제 내부 결속에 금이 가게 되는 계기 중의 하나가 되지 않겠나 평가해본다”고 말했다.
북한을 둘러싼 안팎의 상황을 종합하면 앞으로도 해외 주재 북한 엘리트들이 조국을 버리는 사례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고위 정부 소식통은 “예전에는 벌목공이나 장사하러 나왔던 사람들이 주로 한국에 넘어왔고 더러 엘리트 계층에서도 탈북을 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엘리트 층의 절대 숫자와 비중이 모두 늘었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최근에는 본국에서 죄를 짓거나 생계가 곤란해서가 아니라 기획하고 준비해서 가족 단위로 탈북하는 사례가 늘었다는 점도 눈여겨 볼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공사 가족 탈북 사태에서 관심을 끄는 또 하나의 포인트는 그가 한국행을 결심하는 과정에서 자녀들의 교육과 진로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점이다. 김정은 체제와 주체 이념의 가장 충실한 대변자였던 그조차도 정작 자식의 장래 앞에서는 부정(父情)에 끌려 다른 선택을 하는, 이른바 ‘이민형 탈북’에 나선 셈이다.
이에 대해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태 공사는 아이들이 영국에서 공부하고 있다가 본국에 귀환해야 하는 상황에서 서구적 사고방식에 익숙한 아이들이 북한에 돌아갔을 때 격리된 북한 체제 속에서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본 것 같다”는 견해를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태 공사 가족 탈북 사태로 북한 정권이 직접적으로 큰 타격을 받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전망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핵심 엘리트의 충격적인 이탈이 향후 무역과 외교 등 대외 관계의 위축을 불러와 장기적으로 북한 체제의 내구력에 손상을 입힐 가능성에 주목했다. 태 공사 탈북이 세계적으로 주요 뉴스로 보도되며 국가 이미지를 더욱 깎아먹고 있는 점도 북한으로서는 부담이다.
한 대북 전문가는 “(태 공사 사건 등 일련의 탈북사태로) 평양 핵심부가 흔들리는 조짐이 있다고 보기엔 아직 힘들다”면서도 “외곽 부분에서는 금이 가거나 균열이 생기
[김성훈 기자 / 박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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