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서(lancer·창을 든 군인)’라는 별칭처럼 앞이 뾰족하고 동체가 긴 B-1B 폭격기의 모습이 12일 오전 경기도 오산 기지의 동쪽 상공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고도를 약 300m로 유지하며 굉음과 함께 지나가 서쪽으로 사라지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1분 안팎이었다. B-1B 폭격기의 무장량는 60t에 달한다. 지난 1월 북한 4차 핵실험 이후 무력시위를 벌였던 B-52보다 작아보여도 탑재할 수 있는 폭탄의 양은 2배를 훌쩍 넘어선다. B-1B 폭격기는 제한적이지만 스텔스 성능도 보유하고 있다. B-1B 2대 정도면 평양 상공에 은밀하게 침투해 북한 지휘부가 은신할 만하 곳을 모두 초토화할 수 있는 전력으로 평가되는 이유다. 막대한 양의 폭탄을 쏟아부을 수 있는 있는 폭격기를 공개해 김정은 등 북한 수뇌부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메시지가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나 핵 실험 등 초대형 도발 때마다 유사한 형태로 되풀이되면서 경고 효과를 주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최신예 기종인 B-2 스텔스 폭격기로 2013년 무력시위를 한 뒤 더 구형 기종인 B-52와 B-1B를 동원해 효과가 더 떨어지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된다. 특히 이날 투입된 B-1B 전략폭격기는 미·러 간 핵감축 협정에 따라 핵탄두를 탑재한 공대지 무장을 하지 않은 기종으로 알려졌다. 유사시에 개조작업을 통해 핵폭탄 무장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현재로서는 미국의 핵우산으로 보기 어려운 전력이라는 지적이다.
이날 B-1B의 양쪽에는 한국 공군의 F-15K 각 2대씩 4대가 호위 비행을 했다. F-15K는 대구 제11전투비행단 소속으로 동해 상에서 B-1B와 합류해 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곧이어 1.5㎞ 정도 떨어져 뒤따르던 또 한 대의 B-1B가 다가왔. 이번엔 미국 7공군 소속 F-16 전투기 4대가 각 2대씩 양옆에서 호위 비행을 했다.
B-1B는 괌의 앤더슨 공군기지에서 이륙한 지 4시간 만에 오산기지 상공에 도착했다. 주한미군의 한 관계자는 “실제 작전에 들어가 최대 속도로 비행한다면 괌에서 출격해 1시간30분 정도면 평양에 대량의 폭탄을 투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4개의 엔진이 달린 초음속 폭격기인 B-1B의 최대속도는 마하 2로 알려졌다.
B-1B는 빠른 속도에도 불구하고 폭탄 적재량은 미군의 3대 전략폭격기인 B-2와 B-52보다 많다. 최대 탑재량이 기체 내부는 34t, 날개를 포함한 외부는 27t에 달한다. 2000파운드급 MK-84 폭탄 24발, 500파운드급 MK-82 폭탄 84발, 2000파운드급 GBU-31 유도폭탄 24발 등을 탑재할 수 있다. 주한미군 관계자는 “이번에 출격한 B-1B 2대면 평양에 김정은이 숨어있을 만한 곳들은 완전히 초토화할 수 있는 양의 폭탄을 실을 수 있다”면서 “유사시 가장 빠르게 평양으로 침투해 김정은을 제거할 수 있는 전략자산”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한반도 상공에 전개된 B-1B는 지난달 초 미국 사우스다코타주 엘스워스 공군기지에서 괌 기
미국은 B-1B를 시작으로 주요 전략무기를 잇달아 한반도에 전개해 대북 압박 강도를 높일 계획이다. 다음 달 중순 서해와 제주도 남쪽 해상에서 진행되는 한미 연합 항모강습단 훈련에는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인 로널드 레이건호(CVN-76)가 참가할 것으로 알려졌다.
[안두원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