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국정 지지도가 역대 대통령 중 최악인 5%까지 떨어지고, 연일 전국적으로 대통령 하야 집회가 열리면서 차기 대권주자들도 제각각 복잡한 셈법을 하고 있다. 야권 유력 대권 후보는 대통령 탄핵·하야 등 최후의 카드를 품 속에 넣은 채 민심의 동향을 예의주시하는 반면, 지지도를 높여야 할 잠룡들은 촛불민심에 편승해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현 정권과의 공동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여권 잠룡들은 박 대통령에 대한 공격 타이밍과 강도를 놓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대선후보 지지도 1위를 꿰찬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지난 4일 △총리후보 지명 철회 △국회 추천 총리 중심의 거국중립내각 구성 △ 대통령은 거국내각에 국정운영 권한 넘기고 국정에서 손을 떼는 것 등 세가지를 국정정상화 해법으로 제시했다. 이같은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저로서도 중대한 결심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고 밝혔다. 대통령 하야라고 공식적으로 단어를 쓰지 않았을 뿐, 사실상의 대통령의 완전한 2선 퇴진을 요구한 것이다.
문 전 대표는 현 시점에서 대통령 후보 1순위로서 박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따른 반사이익을 최대한 누리고 있다. 박 대통령이 당장 하야하거나 임기 말까지 ‘식물 대통령’으로 남더라도 이는 국민적인 요구사항에 따른 것이라고 문 전 대표측은 생각한다.
문 전 대표는 내년 12월 대선에 모든 시계를 맞춰놓고 있다. 이 때문에 대선 전에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논의 등 기존 시스템을 흔드는 방안에 소극적으로 대응한다. 특히 가장 먼저 거국중립내각을 주장했던 문 전 대표는 지난 달 말 새누리당의 거국내각 수용입장과 야권 총리후보추천 등을 전해듣고는 “새누리당이 총리를 추천하는 내각이 무슨 거국중립내각이냐”며 반대하면서 말바꾸기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강경파로는 안철수 국민의당 전 상임대표가 꼽힌다. 안 전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적인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지난 4일부터 온·오프라인에서 대통령 퇴진 촉구 서명운동을 진행하면서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대통령 퇴진’을 연일 요구하고 있는 안 전 대표는 5일 정진석 새누리당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할 경우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와 안 전 대표만 대선에 출마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서도 “이런 국가 위기상황에서조차 그렇게 대선에 목매는 모습이 국민들께서 실망하는 근본적 원인”이라며 일침을 놨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직접적으로 대통령의 하야를 주장하고 있다. 박 시장은 5일 광화문에서 열린 집회에서 “이제 우리가 불의한 권력의 정점, 박근혜 대통령을 하야시키겠다”며 기존 입장을 강조했다. 박 시장의 강경론은 안 전 대표처럼 유력대선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와의 입장을 달리하면서 선명성 부각과 지지층 결집을 노린 것으로 해석된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강경 일변도다. 이미 박대통령은 하야 시기를 놓쳤다며, 탄핵과 구속수사를 주장하고 있다. 촛불 민심에 힘입어 지난 3일 리얼미터가 발표한 이 시장의 대권후보 지지율은 9.7%로 안철수 전 대표를 0.6%p까지 추격했다.
이에 비해 안희정 충남지사와 김부겸 의원 등 잠룡들은 대통령의 2선 후퇴를 주장하면서 다소 신중론을 펼치고 있다. 안희정 지사는 5일 백남기 농민 영결식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이 지금 실질적인 민심의 바다에서 탄핵 당한 상태다. 이대로는 국정운영이 불가능한 상태”라며 사실상 2선 후퇴를 촉구했다. 김부겸 의원도 대통령의 하야나 퇴진과는 선을 그으면서 2선퇴진과 여야가 합의한 중립내각 구성을 외치고 있다.
손학규 민주당 전 대표의 경우에도 대통령 탄핵이나 퇴진과는 선을 분명하게 긋고 있다. 이 대신에 안정적인 정국관리를 위한 여야협의총리 임명과 차후 대선 전까지 개헌을 주장하고 있다. 혼란을 야기하기 보다 안정을 유도해 차기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각인시키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여당 대선주자들은 속내가 더 복잡하다. 문 전 민주당 대표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진보·보수 대결 구도가 유효한 상황에서 판이 크게 흔들릴수록 유리하지만, 과거 친박으로서의 행적과 여당 소속의 굴레로 인해 무조건 흔들수만도 없는 입장이다.
비박계 좌장이라 할 수 있는 김무성 전 대표와 유승민 의원은 한때 친박의 핵심에 몸담았던 전력이 곤혹스럽다. 최순실 씨의 존재나 행적을 눈치채지 못했다면 무능한 것이고, 눈치챘다면 방조의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딜레마에 빠졌다.
김 전 대표와 친 김무성계 의원들은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를 중심으로 한 당 지도부 퇴진을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보수혁신’의 기치를 내걸고 있지만, 차기 여당 대권후보 경선 주도권을 손에 쥐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김 전 대표 자신도 이 대표의 퇴진과 여당 재창당을 촉구한 ‘대권주자 5인 회동’에 직접 참여했다.
유 의원은 지난 4일 박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를 두고 “크게 모자랐다”고 평가했다. 김 전 대표가 같은 질문에 “답하지 않겠다”며 물러선 것과 대조된다.
다만 김 전 대표와 유의원 모두 박 대통령의 퇴진 여부에 대해선 입을 닫고 있다. 일단 당 지도부 퇴진을 촉구하면서 당권을 쥐고 박 대통령에 대한 공세 등 후속조치를 도모할 것으로 보인다.
남경필 도지사는 여권 잠룡 중 가장 선명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는 4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대통령직을 제외하곤 권한을 내려놓고 2선으로 물러나시라”고 주장했다. 야권 잠룡 중 대통령의 2선 퇴진을 직접적으로 요구한 건 남 지사가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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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주 기자 / 김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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