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담화 이후 청와대는 여야 영수회담에 사활을 걸었다. 오는 12일 민중총궐기를 앞두고 어떻게든 꽉 막힌 정국에 돌파구를 마련해야 했고, 그 답은 오로지 국회에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일 한광옥 청와대 비서실장과 허원제 정무수석이 국회를 찾아 영수회담을 읍소했다. 그러나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만나지도 못했고, 나머지 두 야당 대표에게선 쓴소리만 들었다.
초조해진 청와대는 최후의 카드를 쓸 수밖에 없었다. 박 대통령이 무조건 국회로 달려가 국회를 향해 메시지를 던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7일 저녁 박 대통령은 영수회담에 대한 여야 합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국회를 방문키로 결심을 굳혔다. 이날 밤 청와대는 정세균 국회의장측과 긴급하게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 일정을 조율했다. 이로써 8일 오전 10시30분 대통령과 국회의장간 회동이 극적으로 성사됐다. 박 대통령은 국회의장을 만나는 김에 여야 대표도 함께 만날 것을 희망했으나, 일단 의장을 만나 ‘총리 추천’ 메시지를 전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이날 박 대통령은 국회에 총리 추천을 공식 요청했다. 이를 두고 한가지 논란이 일었다. 국회가 추천한 총리는 책임총리가 되느냐, 거국 중립내각의 총리가 되느냐다. 둘의 차이는 분명하다. 헌법에 보장된 총리 권한(인사 제청·해임권)을 100% 보장받고 총리 주도로 내각을 꾸려나가면 책임총리제다. 개각 과정에서 책임총리와 대통령이 상의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하다. 반면 거국내각은 여야가 합의해 부처를 사실상 나눠갖고, 각 당이 확보한 부처에 자기 당 인사를 장관으로 들여 보내는 형태다.
책임총리제가 됐든 거국내각이 됐든 대통령은 외치(외교·안보 등), 총리는 내치(경제·사회·문화·교육 등)를 책임지는 방식의 ‘권한분산’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날 박 대통령 언급에 대해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책임총리와 거국내각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으로 이해해 달라”며 “국회가 추천한 분을 총리로 임명하면 그 분이 당연히 인사권을 갖게 될 것이고, 그가 개각을 주도할지(책임총리제) 국회에 각 부처별로 사람을 추천해 달라고 요청할지(거국내각)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국회 추천 총리가 야당 인사를 장관으로 기용해도 박 대통령이 거부하지 않겠다는 뜻이냐는 질문에 청와대 참모는 “그렇다”고 답했다. 결국 책임총리로 가든 거국내각으로 가든 국회가 추천한 총리에게 장관 인사권한을 부여하겠다는 설명이다.
야당이 “국회 추천 총리가 결국 청와대 통제를 받아 힘없는 총리로 전락할 것”이라고 반응한데 대해서도 청와대는 “전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이날 박 대통령의 기습적인 국회 방문과 총리 추천 요청은 고도의 승부수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대한 결정권을 국회에 넘김으로써 향후 정국에 대한 책임을 나눠 가질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당장 야당은 혼란에 빠진 모습이다. 영수회담에 응해야 할지, 총리를 추천할지 말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박 대통령이 김병준 카드를 사실상 접은 것이나 다름없는데도 또다시 새로운 조건(박대통령 탈당)을 내세워 영수회담을 보이콧 하겠다는 움직임마저 감지된다.
한편 이날 박 대통령의 방문때 국회 분위기는 험악했다. 오전 10시28분께 박 대통령이 국회에 도착하자 야당 의원과 보좌진 수십명은 국회 로텐더홀에서 하야를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기습 시위’엔 더민주 우원식 유은혜 김현권 의원, 국민의당 채이배 이용주 의원, 정의당 심상정 대표 등이 참여했다.
국회 도착후 우윤근 국회 사무총장과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 영접을 받을 때까지만
[남기현 기자 / 정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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