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조원이 넘는 2017년도 예산안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따른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요구 여파로 부실심사로 처리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다음 달 2일로 다가온 법정 처리기한 내에 처리하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정부는 지난 9월 악화되는 경제여건을 고려해 내년 예산을 사상 최대 규모인 400조 7000억원으로 편성한 후 국회에 제출했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당시 “내년 예산안은 중장기 재정 건전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한 확장적으로 편성해 일자리 창출과 경제 활력 회복에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국회는 10월 말부터 터진 최순실 사태와 박근혜 대통령 퇴진 논의 때문에 이달 7일이 되서야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통해 심사에 착수했다. 세계교역 회복이 지연돼 한국의 내년 경제성장률이 2%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지만, 정부 예산 곳곳에 숨어 있는 ‘최순실 예산’ 의혹을 걸러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졸속 심사 우려를 낳고 있다.
국회는 감액 심사를 통해 2조 6000억원 상당의 예산을 삭감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외교부·농식품부 등의 문화창조융합벨트·스포츠산업육성·해외원조사업 등 이른바 ‘최순실 예산’ 4000여억원이 삭감됐고, 국민연금·고용보험 예산도 1조원 이상 줄어들었다.
정부는 노동개혁법 통과를 전제로 예산을 편성했으나 국회가 이를 모두 삭감했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정책의 핵심인 창조경제혁신센터 관련 1조 2000억원에 이르는 예산은 대부분 보류됐다.
국회는 이번 주부터 증액심사에 들어갔으나 증액 요구 규모가 4000여건, 40조원에 달해 심사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법정처리 기한인 다음 달 2일까지 국회는 대통령 탄핵 논의와 최순실 특검, 국정조사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 예산안에 대한 국회의 집중도가 떨어져 있어 증액심사에서 예산을 임의로 쪼개거나 끼워 넣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예년과 같이 효율적인 심사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증액 과정을 비공개로 전환한 것도 논란이 됐다.
여야는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에 맞춰 심사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선언했다. 예산 심사 때마다 반복된 의원들의 ‘쪽지예산’과 지역구 예산 나눠 먹기 구태를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올해도 나라 살림에 중요한 예산 편성이 ‘깜깜이’로 진행되고 있다.
최대 쟁점인 누리과정 예산을 둘러싼 야당과 정부의 입장 차이가 여전히 크다는 것도 문제다. 야당은 누리과정 예산을 1조원 이상으로 늘리고, 중앙정부 예산으로 명시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정부는 예년 수준 이상으로 편성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법인세와 소득세 인상과 관련해서도 뚜렷한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야당은 과세표준 500억원 초과 기업에 대해 법인세율을 기존 22%에서 25%로 인상하고, 근로소득 5억원 이상 초고소득자에 대한 최고세율을 38%에서 40%
여야 의견이 좁혀지지 않으면 정부안이 그대로 본회의 표결에 부쳐진다. 그러나 여소야대 국회에선 야당이 표결로 정부안을 부결시킬 수 있다. 예산안이 처리되지 못하고 법정 기한을 넘겨서까지 늘어질 수 있는 것이다.
[디지털뉴스국 한인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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