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서울 신촌의 한 영화관.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가 영화 한편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다름아닌 '광해'였다. 2012년 9월 개봉해 1200만 관객을 끌어모은 흥행 대작이다. 영화 '광해'의 배급사는 CJ엔터테인먼트였다.
'문재인의 눈물'이 언론에서 화제가 되자, 이 영화는 졸지에 '노무현'을 그린 영화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상당수 문화계 인사들은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캠프가 이 영화를 계기로 CJ를 곱지 않은 시각으로 보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이에 대해 CJ그룹 관계자는 28일 "철저히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항변한다. 그는 "솔직히 광해란 인물은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후 핍박을 받고 칩거에 들어간 박근혜 당시 후보와 더욱 가깝게 느껴질 것으로 생각했고, 실제 박 후보도 초대했지만 일정이 맞지 않아 관람을 못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대선 이후 박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 인생을 다룬 영화 '변호인'을 통해 또 한번 실망감을 나타냈던 것으로 알려진다. CJ는 이 영화의 제작사도 아니고 배급도 맡지 않았다. 다만 투자만 했을 뿐인데 이 영화를 'CJ 작품'으로 인식한 것 자체가 또다른 오해라고 CJ는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엔 CJ가 제작한 영화 '베테랑'이 논란이 됐다. 이 영화엔 추악한 모습의 재벌 3세(유아인 분)가 등장한다. 당시 이 영화를 두고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오너(이재현 회장)가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인데, CJ가 왜 그런 영화를 만들었는지 이해가 안간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손경식 회장은 "그나마 상영된 버전은 그룹 차원에서 수차례 검토해 완화시킨 내용"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청와대가 '영화계 대모'로 불려 온 이미경 CJ 부회장의 사퇴를 종용하고 문화융성을 현정부 핵심 정책으로 추진하게 된 이면엔 이같은 에피소드가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는 전언이다. 여권 고위관계자는 이날 "영화를 포함한 문화·예술계에 진보·좌파 인사들 입김이 너무 강한 것 아니냐는 인식을 박 대통령이 갖고 있었던 것은 사실에 가깝다"며 "이런 문제 의식 하에 나름대로 균형을 맞추기 위한 여러 개혁작업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른바 문화융성 정책과 미르재단 설립에 박 대통령의 이같은 인식이 상당부분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며 "미르재단은 한류를 통해 우리 기업들의 해외진출을 돕고자 하는 목적이 강했지만, 이를 통해 문화계 새판짜기를 시도해 보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현 정부의 이같은 인식은 결국 '문화계 블랙리스트' 논란으로 이어져 정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날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야당은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국정교과서 논란에 대해 맹공을 퍼부었다.
김민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문체부에서 만들지 않고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다"며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모르냐"며 몰아부쳤다. 조 장관은 "다시 한번 말하지만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받은 적도 지시한 적도 없다"고 부인했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전직도 아닌 현직 장관을 특검에서 직접 압수수색을 했다. 상황이 자꾸 조여가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며 "자꾸 똑같은 대답을 하는게 국민에 대한 모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 장관은 "특검 조사로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며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제가 견지해온 주장이 사실임을 밝히는게 제 책무"라고 답변했다.
15분 사이에 뒤바뀐 역사 국정교과서 보도자료에 대한 질책도 이어졌다. 김병욱 의원은 "27일 오전 11시 보도자료가 나오기 15분 전에 배포된 자료를 보면 그 내용이 다르다"며 "15분 차이로 졸속으로 내는 교육행정 정책을 어떻게 믿을 수 있냐"고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을 힐난했다. 이에 이 장관은 "15분전 배포된 보도자료는 훨씬 전에 나온 자료로 미리 작성된 것이 잘못 배포됐다"며 "물리적으로 15분만에 새로운 보도자료를 만들수 없다"고 해명했다.
한편 '지역구 라이벌'인 이혜훈 개혁보수신당(가칭) 의원과 조 장관이 이날 간접 충돌해 관심을 모았다. 이 의원이 이날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남기현 기자 / 추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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