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을 1년여간 뒤흔든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정국'이 어제(13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과 '유치원 3법안'이 이날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입니다.
여야의 극심한 대립과 정치의 실종 속에서 공직선거법 개정안(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등)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 제정안이 처리된 데 이어 이날 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안과 사립학교법·유아교육법·학교급식법 개정안까지 가결되며 패스트트랙에 오른 7개 법안이 모두 국회 문턱을 넘어섰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4+1 협의체'를 꾸려 문재인 대통령의 '1호 공약'인 공수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 등 검찰개혁 입법을 완수해내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그러나 과반이라는 힘의 논리에 기초해 '게임의 룰'을 여야 합의 없이 처리한 데 따른 정치적 부담이 엄존하고 있습니다.
한국당은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 과정에서 시종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스스로 협상의 문을 걸어잠근 전략부재 측면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패스트트랙 지정 때 발생한 물리적 충돌로 소속 의원들이 무더기 기소된 데다 법안 처리마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다수당의 '날치기'를 막기 위한 패스트트랙은 쇠사슬·해머·전기톱에 최루탄까지 등장했던 '최악의 국회'가 반복되지 않도록 18대 국회 막판(2012년 5월) 국회선진화법(개정 국회법)에 따라 도입됐습니다.
법 개정 취지가 무색하게 '동물국회'는 결국 7년만에 되풀이됐습니다.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해머는 빠루와 함께 재등장했습니다. '인간 바리케이드'가 만들어졌고, 몸싸움으로 부상이 속출했습니다.
2018년 12월 15일, 여야 5당 원내대표가 '선거제 개혁'에 합의하면서 패스트트랙 정국의 막이 올랐습니다.
결국 지난해 4월 22일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연동형 비례제와 공수처법·수사권 조정안을 패스트트랙에 태우기로 합의하며, 여야의 가파른 대치는 본격화됐습니다.
공수처법 등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기 위해 사법개혁특별위원회의 바른미래당 소속 위원 사·보임이 이뤄졌고, 불법 논란을 낳은 사·보임계 육탄저지와 법안 팩스 제출, 채 의원 감금과 탈출, 문희상 국회의장의 '병상 결재' 등 블랙코미디를 연상케 하는 장면들이 이어졌습니다.
여야는 육탄저지 과정에서 물리력이 동원된 것을 두고 상대방에 책임을 돌리며 무더기 고소·고발로 맞섰습니다.
한국당은 패스트트랙 법안들이 표결되는 것을 늦추려고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에 나섰습니다.
민주당은 임시국회 회기를 2∼3일로 짧게 자르는 '살라미' 전략으로 맞섰습니다. 임시회 회기와 함께 필리버스터는 끝나고, 다음번 회기에서 대상 법안이 표결된다는 점을 활용한 것입니다.
한국당은 임시회 첫 안건인 '회기 결정의 건'을 필리버스터로 늦추려 시도했지만, 문 의장이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선거법과 공수처법이 통과되자 한국당은 나머지 법안들에 대한 필리버스터를 철회했습니다. 이로써 1년여에 걸친 패스트트랙 정국은 종료됐습니다.
패스트트랙으로 통과된 법안은 7개입니다. 이 가운데 여야는 물론 4+1 내에서도 이해가 첨예하게 맞선 것은 선거법과 공수처법이었습니다.
공수처법의 경우 민주당에 '검찰 개혁' 상징이자 '문 대통령 1호 공약'인 반면, 한국당에는 '검찰 무력화'와 '친문(친문재인) 독재'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공수처법보다 선거법에 대한 갈등은 더 날카로웠습니다.
'밥그릇 싸움' 비판 속에도 민주당(129석)·바른미래당(당권파 13석)·정의당(6석)·민주평화당(4석)과 대안신당(8석)이 모여 재적 과반을 확보한 4+1은 진통 끝에 선거법 절충안을 마련했습니다.
지역구 253석과 비례대표 47석 등 기존 의석 배분은 그대로 유지하고 비례대표 의석 배분에 정당득표율의 50%까지 보장하는 준연동형을 도입하되, 이를 30석에만 적용하는 방안이었습니다.
4+1 합의대로 선거법은 지난해 12월 27일, 공수처법이 사흘 뒤 처리됐습니다. 선거법 처리에 대해 4+1은 다소 부족하나마 '민심을 왜곡 없이 의석에 반영한 선거제도'로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한국당은 4+1의 합의를 '야합'으로 규정했습니다. 민주당이 '검찰 무력화'를 위한 공수처를 얻어내려고 몇몇 후진국에만 있는 연동형 비례제를, 그것도 의석수를 늘리지 못하다 보니 위헌 소지가 큰 준연동형으로 만들어 군소 정당들과 거래했다는 것입니다.
야당에서는 또 4+1이 쟁점법안의 경우 여야 합의처리를 원칙으로 삼는 국회 관행을 깼다는 점도 문제 삼습니다.
그러나 합의를 시도하되 안 되면 다수결 원리가 작동할 수밖에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게임의 룰인 선거법을 여야 합의 없이 처리한 것은 뒤탈을 낳을 소지가 있습니다. 정세균 국무총리 후보자조차 지난 7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선거법은 여야 합의에 의해 처리하는 것이 덕목이었다"고 아쉬워했습니다. '선거 불복' 가능성까지 제기됩니다.
다만 4+1 차원의 논의에 앞서 한국당이 의견을 개진할 기회가 있었지만, 한국당이 의도적으로 외면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습니다.
4+1 논의가 진행되는 도중 민주당의 물밑 협상 시도에도 한국당이 응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번 결과에 할 말이 없다는 것입니다.
개정된 선거법에서 공천 탈락 예비후보자에 대한 기탁금 반환 조항이 헌법에 맞지 않고, 선거연령을 18세로 낮춘 데 따른 보완 입법도 필요하다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지적이 뒤따랐습니다.
패스트트랙 정국은 여야 원내대표들의 희비를 갈랐습니다.
웃는 쪽은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입니다. 이 원내대표는 패스트트랙 법안들에 대한 교섭단체 간 협의가 공전만 거듭하자 4+1 협의체로 돌파구를 찾았습니다. 결국 준연동형 비례제에 대한 당내 우려를 잠재우면서 공수처법 처리를 관철했습니다.
한국당 나경원 전 원내대표, 그리고 바통을 이어받은 심재철 원내대표는 결국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한 채 무릎을 꿇었습니다. 나 전 원내대표는 패스트트랙 정국이 절정으로 치달았을 때 임기가 종료됐습니다. 패스트트랙 충돌 사태로 소속 의원 22명과 함께 기소된 것도 사법적·정치적 부담입니다.
바른미래당 김관영 전 원내대표는 일정부분 중재자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이 같은 정치적 득실과 별개로, 대화와 타협이 실종된 채 쟁점 법안들이 일방적으로 처리된 것은 우리나라의 의회민주주의 역사에 오점을 남겼다는 비판이 제기됩니다. 상대를 향한 증오 섞인 비난이 격해
결국 민주당은 문 대통령 '1호 공약'인 검찰개혁을 마무리하기 위해 정치적 무리수를 뒀다는 지적과 한국당은 사사건건 반대하면서도 무기력한 모습만 노출했다는 비판 속에 석 달 뒤 총선을 치르게 됐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