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이 지난 3일 강원도 철원 비무장지대(DMZ) 안 한국군 최전방 감시초소(GP)에 총격을 가할 때 사용한 화기는 14.5mm 기관총(고사총)인 것으로 알려졌다.
원래 항공기와 헬기 격추용인 고사총은 4개의 총열을 한데 묶어 4발이 한꺼번에 나가는데, 파괴력이 우리 군의 주력 중기관총인 K-6(12.7mm)의 두배에 달한다.
고사총은 북한이 2013년 12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고모부인 장성택 전 노동당 행정부장과 2015년 4월 현영철 전 인민무력부장을 처형했을 때 사용한 바 있다.
우리 군과 청와대는 이번 북한 도발에 대해 "우발적 총격으로 보인다"며 오발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14.5mm 기관총이 1.5km 이상 떨어진 우리 GP에 여러 발을 탄착군 형태로 정확히 명중시킨 점으로 미뤄 의도적인 도발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은 이번 도발에 대한 우리측 해명 요구에도 사흘째 침묵을 지키고 있다.
대신 북한 선전 매체 메아리는 지난 4일 '변명할 수 없는 반민족적 죄악'이란 기사에서 "(남조선당국은) 미국으로부터 스텔스 전투기 F-35A와 고고도무인정찰기 글로벌 호크를 비롯한 첨단군사장비들을 계속 끌어들이고 있다"며 "반공화국 고립 및 압살· 책동에 광분하는 미국과의 동맹강화에 혈안이 된 남조선 당국의 죄악은 그 무엇으로도 가릴 수 없다"고 비판했다.
GP 총격에 대한 사과와 해명은 커녕 우리 군의 스텔스기 도입과 합동훈련을 꼬투리삼아 강도높은 비난에 나선 것이다.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
하지만 더 우려스러운 것은 북한의 눈치를 살피는 우리 정부와 군의 태도다.
정부는 이번에도 "우발적 총격"이라며 북한의 도발에 애써 눈을 감고 사태 진화에 급급한 분위기가 역력하다.
군 소식통 등에 따르면 우리 군은 북한 군 총성을 들은 뒤 GP 외벽 총탄 흔적을 확인하고 대응사격 및 경고 방송을 하는데 20분이나 걸렸다고 한다.
군 당국이 구체적인 대응 시간을 공개하지 않는 점도 미심쩍다.
더불어민주당 또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을 제기한 탈북자 출신 야당 정치인들에 대해선 "세 치 혀로 국민 혼란을 부추겼다"며 인신공격과 비난을 서슴치않으면서 정작 북한 총격에 대해선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그동안 북한의 위협과 도발이 있을 때마다 우리 정부와 군은 엄중한 항의 대신 북한 입장을 두둔하는 듯한 저자세로 일관해온 것이 사실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에 보건분야 공동협력을 제안한 지 하룻 만인 지난 3월2일에도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며 문 대통령의 제의를 조롱하고 나섰지만, 북한의 오만방자한 태도를 질타하는 우리 정부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지난해에도 북한은 13차례 걸쳐 20발 이상의 미사일을 쏘아댔지만 우리 정부는 유감을 표명하고 군사적 긴장행위 중단과 재발 방지만 촉구하는 수준에만 그쳤다.
특히 북한이 모친상을 당한 문 대통령에게 조의를 전달한 지 하룻만에 발사체를 쏘는 몰상식한 행태를 보였는데도 정부는 제대로 된 항의조차 하지 않았다.
정부가 지난해 12월 충북 청주에서 열린 최신예 스텔스기 F-35A 전력화(배치)행사를 비공개로 진행한 것도 북한 반발을 염두에 둔 조치라는 지적이 많다.
F-35A 전투기사업은 1차에만 7조원 넘는 천문학적 세금이 투입된 초대형 사업이다.
하지만 대통령과 국방장관은 이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고 공군 내부행사로 철저히 베일에 가려진 채 국민에게도 공개되지 않아 논란이 일었다.
우리 정부가 지난해 탈북 범죄자 2명의 강제북송을 단행한 것이나, 유엔의 인권결의안 공동발의국에서 빠진 것도 북한을 달래기 위한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다.
정부가 대북 유화정책을 통해 북한과의 대화 불씨를 살리고 관계 개선에 나선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텐트에 코를 들이밀어 결국 자리까지 차지한 낙타처럼, 북한의 잦은 도발을 단호하게 봉쇄하지 않고 계속 묵인해주면 언젠가는 국가 안보마저 무너질 수도 있다.
최근 들어 우리 군의 철통같은 경계·대비 태세에 허점과 빈틈이 생기면서 군의 기강이 무너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실제로 얼마전 현역 병사가 직속 상관인 여군 중대장을 야삽으로 폭행해 상해를 입히는 하극상이 발생했다.
또 육군 한 직할 부대에선 부사관 4명이 상관인 위관급 남성장교를 강제추행한 혐의로 형사입건됐고, 한 장교는 부대 밖에서 음주 회식을 벌인 뒤 노래방에서 민간인 여성을 성추행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이처럼 군 기강이 문란해지고 장병들의 경계심마저 해이해진 상황에선 북한의 기습적인 군사도발을 막아낼 수 없다.
집안에서도 막내가 자꾸 말썽만 부리면 맏형이 한번쯤 엄하게
이제라도 북한의 막가파식 도발에 엄중하게 대응하고 느스해진 한미 동맹의 고삐를 더욱 단단히 죄야 국가의 존엄과 안보를 지킬 수 있다.
북한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정부의 모습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박정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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