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슬 퍼런 군부정권이 들어서고 얼마 안 된 1981년 4월.
거대 정치권력과 재벌에 맞서 비리 척결에 앞장서왔던 대검 중수부의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이철희·장영자 부부의 어음사기 사건은 신호탄에 불과했습니다.
수천억 원대 뇌물을 받아챙긴 전직 대통령은 수의 차림으로 법정에 서게 됐고
▶ 인터뷰 : 안강민 / 전 중수부장(지난 1995년)
- "정경유착이란 커다란 비리를 단호히 척결해야 한다는 역사적 사명감을 갖고 전직 대통령을 구속하고…."
현직 대통령의 아들과 형제들도 줄줄이 중수부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 인터뷰 : 김현철 / 김영삼 전 대통령 아들(1997년)
- "(심경이 어떻습니까? 이권 개입 부분 다 부인하셨다면서요?) …."
▶ 인터뷰 : 이상득 / 이명박 전 대통령 형(지난해)
- "(저축은행에서 돈 받은 사실 인정하십니까?) 가서 얘기하겠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당시 한나라당 불법 대선자금 수사로 살아있는 권력에 맞선 국민검사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치검찰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된 근원지도 중수부였습니다.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총장의 지휘를 받다 보니 정권 눈치 살피기에 급급했고 공정성 논란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녔습니다.
결국 박연차 게이트 사건 당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비극을 초래하며 중수부는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 인터뷰 : 이인규 / 전 중수부장(지난 2009년)
- "수사가 완결되지 아니한 상태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돌아가심에 따라 공소권 없음 처분을 했습니다."
그리고 발생한 사상 초유의 검찰 내분 사태.
검찰총장과 중수부장의 힘겨루기는 중수부 스스로 문을 닫게 된 결정적 빌미가 됐습니다.
▶ 스탠딩 : 김태영 / 기자
- "권력에 맞설 때 국민은 아낌없는 지지를 보냈지만 권력 앞에 무릎 꿇을 땐 싸늘한 시선을 보냈습니다. 엇갈린 평가 속에 중수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습니다. MBN뉴스 김태영입니다." [ taegija@mbn.co.kr ]
영상취재 김재헌 기자
영상편집 윤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