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 모씨(22)가 1년간 사랑을 싹틔우던 여자친구에게서 이별 통보를 받은 건 작년 9월 17일 오후 11시 30분쯤이었다.
충격을 가누지 못한 심씨는 서울 강남역 주변을 비틀거리며 배회했다. 이별이라니, 도무지 인정할 수 없었다.
제 인생의 전부라고 믿어 의심치 않은 존재에게서 내쳐진 느낌이란 참혹함 그 자체였다.
어떻게든 마음을 돌려놓고 싶었다. 그래야만 살 것 같았다.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심산이었다.
‘동정심에의 호소’, 어쩌면 가능할지도 몰랐다. “그래, 눈 딱 감고 교통사고 한 번 내보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때마침 왼편에 시속 60km로 달려오는 택시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에라, 모르겠다.” 주저하지 않았다. 2개 차로를 건너 택시 앞으로 몸을 날렸다.
순간적으로 택시가 시속 27km로 속도를 줄였지만 충돌과 동시에 심씨는 보닛 위에서 한 바퀴 회전해 택시 옆으로 나가떨어졌다.
왼쪽 무릎 인대 파열, 전치 12주 진단을 받고 심씨는 병원에 입원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입원치료비만 470만원이었던 것이다. 별다른 직업이 없던 심씨는 고민했다.
결국 “고의로 뛰어든 게 아니라 무단횡단이었다”는 거짓 진술을 했다.
우연히 사고를 당한 것처럼 가장해 입원치료비를 부당하게 지급받았다. 그러나 거짓은 들통나기 마련.
심씨가 일부로 사고를 냈음을 보여주는 증거는 블랙박스 영상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교통사고면 피해자가 본능적으로 차량을 피하려고 오후 12시나 1시 방향으로 움직여야 했다.
하지만 심씨는 택씨와 가까운 오전 11시 방향으로 이동했다. 충돌 직전의 시선도 차량을 향해 있었다.
왼쪽 팔꿈치를 차량 보닛에 짚고 스스로 점프하는 등 반사적으로 충격을 줄이려는 동작도 보였다.
다친 부위 또한 의심스러웠다. 무심코 횡단을 했다면 앞범퍼에 왼쪽 무릎이 닿아 골절상을 입었어야 했지만 어설프게 점프해 회전한 탓에 엉뚱한 곳을 다쳤다.
경찰은 블랙박스 영상을 근거로 추궁했지만 심씨는 줄곧 부인하며 고집을 부렸다. 거짓말탐지기마저 거부했다.
결국 교통사고 재현 프로그램(PC-CRASH)을 사용했다. 보통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하는 데 사용되는 프로그램이었다.
사고 고의성을 입증하기 위해 사용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경찰은 도로교통공단과 함께 피해 부분과 차량 이동거리
서울지방경찰청 교통범죄수사팀은 심씨를 사기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25일 밝혔다.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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