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을 엽전으로 바꿔 시장 돌아다니며 음식 사먹는 재미가 쏠쏠해요. 가능한 많은 음식을 먹어보고 싶어하는 관광객에게 특히 매력적인 곳입니다. 또 오고 싶네요.” (호주 관광객 제프 윗윌씨)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촌 통인시장 ‘도시락카페’는 외국인 관광객과 평일 점심을 해결하려는 회사원들이 몰려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준비된 120개 좌석이 꽉 들어차 식판을 손에 쥐고 서서 먹는 이들도 많았다. 통인시장은 이곳에서만 통용되는 전용 엽전(코인)을 만들어 교환의 재미를 부여하자는 아이디어 하나로 대박을 쳤다.
한때 소비자들이 외면하며 위기를 겪던 전통시장 운명을 엽전이 구했다. 상인회에서 판매하는 엽전(개당 500원)을 사서 떡볶이, 닭강정, 나물가게 등을 돌아다니며 ‘나만의 식단’을 구성하는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상인회에 따르면 2011년 2000여명에 불과했던 시장 주말 유동인구는 올해 3만여명까지 불어나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통인시장이 ‘코인의 경제학’으로 흥행한 가운데 강동 암사종합시장, 인천 신기시장 등도 전용 코인을 내놓으며 상권 살리기에 나섰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전용 코인(쿠폰)을 발행해 프로모션 활동에 나선 전통시장은 전체 4.9%(2013년 기준)로 2010년 2.0%에 비해 크게 늘었다. 심계순 통인시장 상인회 관리과장은 “불과 5년여전만해도 지인들까지 동원해 억지매출을 올릴 정도로 상황이 안좋았지만 엽전이 유명세를 타면서 관광객까지 대거 몰리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용도가 제한적인 화폐는 굳이 아끼려는 마음이 들지 않아 그 자리에서 소비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며 “전용 화폐 도입으로 시장 매출이 증가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성공에 자극받은 암사시장 상인들은 지난달 24일 시장 내 50개 가맹점에서 사용 가능한 공동체 화폐를 내놨다. 원화와 100대 95의 비율로 환전돼 5% 할인혜택을 받도록 고안했다.
시장에서 식혜·떡가게를 운영하는 문은배씨(67)는 “공동체 화폐 거래가 이뤄지자 평소 하루 매출의 2배를 올렸다”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상인들은 시장 화폐를 암사동 일대 지역화폐로 발전시킨다는 구상이다. 장성규 암사종합시장 시장육성사업단장은 “인근 암사동 선사유적지나 지역 학원 등에서도 사용될 수 있도록 한다면 지역경제에 확실한 버팀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 신기시장은 ‘신기통보’라는 전용 엽전을 발행하면서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는 6개씩 무료로 주는 이벤트로 재미를 봤다. 교환의 재미와 더불어 엽전 자체를 한국을 알리는 전통 기념품으로 고안한게 주요했던 것. 주말 이곳을 찾는 2만명 인파 상당수는 외국인이다.
신기시장은 2000년대 초반 인근에 대형마트 등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위기를 맞았지만, 외국인 관광으로 특화한 전통 엽전을 개발하며 위기를 정면 돌파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전통시장 코인이 성공적으로 안착하려면 단순한 교환의 재미를 넘어선 요인이 가미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민성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역화폐를 통한 할인 폭은 종전에 시장 상인들이 제공할 수 있
손종칠 한국외대 경제학과 교수는 “그 지역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물건과 서비스를 마련해 화폐의 경쟁력을 높이는 작업이 병행돼야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정환 기자 / 박창영 기자 / 문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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