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유방을 만졌다.”
“가벼운 감기로 병원을 방문했는데 청진기 진찰 중 의사가 옷 안에서 브래지어를 들고 가슴에 청진기를 갖다 댔다. 사전 설명이나 동의는 전혀 없었다.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
“한의원에서 수기치료라는 것을 받았는데 한의사가 속옷을 벗기고 손을 넣었다.”
“진맥을 하면서 속옷 속으로 손을 넣었다. 수치심을 느꼈지만 뭐라 말할 수 없었다.”
성폭력상담소 등에 접수된 상담 사례 중 일부다. 병원 진료 과정에서 불필요한 성적 접촉을 당했다는 내용이다. 병원을 찾은 성인 여성 10명 중 1명 정도는 성적 불쾌감이나 수치심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이 국가인권위원회의 의뢰로 작성한 ‘진료과정 성희롱 예방기준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의료기관을 이용한 성인(19~59세) 여성 1000명 중 118명이 성적 불쾌감이나 수치심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진찰 또는 검사를 위해 옷을 갈아입는 과정에서 과다한 신체 노출과 폐쇄적인 공간으로 인해 느끼는 불쾌감, 사전 설명 없이 진료과정에서 신체 부위 접촉 등으로 인해 빚어지는 성희롱, 통상적인 진료의 범위에 들어가지 않는 ‘신체적 성희롱’ 등 다양한 사례가 보고됐다.
전문가들은 진료 과정 중 의사의 발언이나 신체적 접촉으로 성적 모욕감과 수치심을 느껴도 항의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한다. ‘권위’를 가진 의사와 의학 지식에 대해 ‘무지한’ 것으로 간주되는 환자와의 관계가 위계적일수록 더욱 그러하다는 것.
때문에 일각에서는 성추행 예방 매뉴얼이나 가이드라인 등을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진료 과정에서 의사와 환자 간의 벌어진 신체적 접촉을 두고 성추행이냐, 아니냐가 종종 논란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아서다.
일례로 한 한의원에서는 한의사가 수기치료(어떤 기구나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치료하는 방법)를 이유로 여중생의 속옷을 벗기고 손을 넣어 추행한 사건이 있었지만 재판부는 의료행위로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다. 해당 여중생은 이런 일은 한 달여 동안 7차례나 겪었다.
재판부는 “피고인(한의사)이 수기치료를 빙자해 피해자들을 추행한 것에는 강한 의심이 든다”면서도 “수기치료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성기와 가슴 부위를 만진 것을 추행으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해당 부위를 손을 이용해 치료하는 방법이 실제 의학 서적에 나온다는 것이 결정적인 이유였다.
의료계 안팎에서는 몸에 대해 말하고 신체적 접촉이 이뤄지는 진료행위와 성추행의 경계는 모호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병원에서 겪는 불쾌한 접촉이 환자가 성추행을 당한 것인지, 의사가 억울하게 오해를 받은 것인지 경계를 가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 등에서는 이런 논란을 방지하기 위해 진료 시 일어날 수 있는 신체적 접촉 행위에 대해 매뉴얼이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활용하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샤프롱’(Chaperone) 제도.
샤프롱 제도는 진료실이나 검사실에서 여성이나 미성년 환자, 정신지체 환자 등을 진료할 때 가족·보호자·간호사 등을 함께 있게 해 환자를 안심시키고 진료 중 발생할 수 있는 성범죄 등의 행위를 방지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쉽게 말해 신체접촉이 불가피할 경우 간호사 등이 동반한 상태에서 진료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이 제도는 의료인과 환자 외 제3자가 동행함으로써 혹시나 있을 환자의 피해를 방지하는 동시에 거짓 고발을 당할 수 있는 의료진 보호가 가능하단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의사와 환자 간의 불신을 전제로 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부정적인 시각도 더러 있다. 최적의 진료는 의사와 환자 간의 신뢰에서부터 시작하는데 이 제도는 불신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정적인 측면보다는 불미스러운 일을 미연에 방지할
[매경닷컴 전종헌 기자 /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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