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불십년(權不十年) 화무십일홍(花無十一紅)’이라 했다.
10년, 열흘을 버티지 못하는 것이 비단 권세와 꽃 만은 아니다. 호황과 불황을 오가며 요동치는 경기, 시시각각 변하는 소비자들의 취향 속에 한때 성공신화를 썼던 회사도 어느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곤 한다.
2000년대 초반 ‘고려대 명물’로 입소문이 나며 서울 대학가 일대를 주름잡았던 인기 프랜차이즈 수제버거, ‘영철버거’도 이 법칙을 피해가지 못했다. 서울 안암동 고려대 정경대학 후문에 위치한 영철버거 고려대점은 벌써 한 달째 불이 꺼져있다. 영철버거 신화가 시작됐던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이곳은 현재 폐점 상태다.
27일 매일경제신문은 15년 간의 성공신화에 마침표를 찍고 어렵게 폐점을 결정한 이영철 영철버거 대표(47)를 만났다.
시종일관 굳은 얼굴로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는 이영철 영철버거 대표는 벌개진 눈을 연신 꾹꾹 눌렀다. 그는 “불면증과 우울증 속에 1년이 넘도록 마음놓고 잠을 자본 적이 없다”며 허탈하고 아쉬운 심경을 전했다.
이 대표에게 영철버거는 분신과도 같은 존재다. 그의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 4학년 중퇴. 11살 홀홀단신으로 서울에 올라와 공사판을 전전하며 막노동을 자신의 천직으로 생각하면서 살아왔던 이 대표다. 일을 하다가 사고로 허리를 다쳐 좌절하기도 했고, 도박에 손을 대 경마로 하루에 수백 만원을 날려보기도 했다. ‘인생 막장’의 기로에서 초심으로 돌아간 그는 수중에 남아 있던 돈과 지인에게 빌린 돈을 합쳐 노점을 차렸다. 그 때 나이 32살, 고려대 앞 리어카에서 팔기 시작한 영철버거는 이 대표의 인생 궤적을 바꿔놨다.
주머니가 가벼운 대학생들에게 단돈 1000원으로 근사한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게 해준 영철버거는 어느새 고려대의 명물을 넘어 서울 대학가의 명물로 자리잡았다. 2007년에는 스트리트 버거로 가맹점 80개를 낼 정도로 성공 가도를 달렸다.
어두웠던 과거는 이 대표에게 특별한 ‘부의 철학’을 갖게 했다. ‘진정한 부자는 인격을 갖춘 사람’이라는 정신 아래 정직하게 땀 흘리며 영철버거를 키우는데 힘썼다. 대학가에서 ‘부자학개론’과 같은 강연을 하며 진정한 부자의 의미를 알리고, 2005년에는 ‘내가 굽는 것은 희망이고 파는 것은 행복입니다’라는 자서전도 냈다.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해준 고려대 학생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에서 2004년부터 햄버거를 판 돈으로 1억원 상당 장학금을 학교에 기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영원한 것은 없었다. 시간이 흐르며 대학생들의 입맛이 바뀌기 시작했다. 저렴한 영철버거보다는 비싸고 고급스러운 수제버거를 찾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다. 수수료 부담이 큰 신용·체크카드 사용률은 점차 높아지고 대학생들은 4000~5000원짜리 커피를 늘상 들고 다닐 정도로 소비 수준이 높아졌다. 무엇보다도 단순히 1000원짜리 버거만 팔아서는 회사를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몸집이 커졌다.
2009년 영철버거가 정부 유망 프랜차이즈 브랜드로 선정되기도 했지만 이 대표는 한계를 절감했다. 가맹점이 늘면서 관리가 소홀해지고 이익창출이 힘들어졌다. 결국 영철버거는 이때를 기점으로 고급화 전략을 택했다. 좋은 재료를 충분히 사용하고 신메뉴 개발에 주력해 4000~7000원대의 수제버거를 팔았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소비자들은 영철버거를 고급 수제버거로 인정해주지 않았고, 적자가 계속됐다. 이 대표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고자 했지만 ‘1000원’ 버거라는 이미지가 생각보다 강했다”고 한숨을 쉬었다.
영철버거 브랜드를 헐값에 넘기라는 제안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고대에 누가 되고 싶지 않아 단칼에 거절했다고 밝혔다. 영철버거를 살리기 위해 열심히 투자자를 찾았지만 협상이 지지부진하며 줄다리기만 1년 가까이 계속 됐다. 결국 지난 21일 투자자와 합의가 불발되면서 영철버거의 최종 폐업이 결정됐다. 이 대표는 영철버거 고대점을 2억원 가량에 매각했고, 현재 2억~3억원 상당의 빚을 떠
그러나 그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며 마지막 의지를 내비쳤다. 그는 “돈보다는 꿈을 만들어 보이고 싶었다”며 “아직 끝이 아니다. 고대생에게 희망을 주는 영철버거로 다시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박윤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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