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중학교 역사·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전환을 공식 발표하면서 이제 남은 일은 갈라진 국론을 통합하고, 정권이 바뀌더라도 흔들리지 않을 제대로 된 교과서를 만드는 일이다. 새로운 역사 교과서가 담아야할 내용과 가치관에 대해 역사학계와 교육학계, 헌법학자, 경제학자, 사회학자, 교사, 학부모 등 다양한 계층의 목소리를 들었다.
◆집필진 선정,공정하고 균형있게
역사학자들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교과서 국정화가 계획대로 추진된다면 집필진 선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진보·중도·보수 시각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집필진 선정과 소모적인 이념 논쟁을 최소화할 수 있는 합리적인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기존 검인정 체제 교과서의 좌편향이 국정화 전환의 원인을 제공한 만큼 새로운 역사 교과서 집필진은 진보나 보수에 관계없이 자유민주적 가치, 헌법적 가치에 충실한 사람들로 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교수는 “제대로 된 집필진이 교과서를 만들고, 철저히 검증한다면 국민들이 동의할 수 있는 교과서가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도 “다양한 사관을 가진 학자들이 참여해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며 “올바른 국가관을 심어줄 수 있는 교과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자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대표는 “특정 사관에 치우친 이념이 교과서에 반영되는 것은 좋지 않다”며 “다양한 집필진을 구성하는게 핵심”이라고 말했다.
◆정치색 빼고 교육의 본질에 충실해야
‘보수 대 진보’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역사의 본질이 무엇인지, 학생들을 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았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 교수는 “교과서 국정화는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진행되어야 하고, 이견들을 수렴해서 추후에 수정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놔야한다”고 전제조건을 밝혔다. 장교수는 “과거 국정교과서가 정치적으로 왜곡된 지식들을 전달했던 사례가 있기 때문에 우려의 목소리가 큰 것”이라며 “교과서 국정화는 국민적 합의를 통해 신중히 결정해야 할 사항”이라고 덧붙였다.
김동석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국정화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친일·독재 미화와 정부 입맛에 맞는 역사 기술을 가장 염려한다”며 “정부와 여당이 친일·독재 미화 등을 교과서에 담지 않겠다고 약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한숙 서울 신림중 교장은 “교사들도 서로 입장이 다 다르다”며 “논란의 소지가 있는 근현대사 분량을 줄이고 진보양측의 입장을 고려해 기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정치·사회·경제 등 다양한 시각 담아야
역사는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요인이 모두 얽혀있는 것인 만큼 다양한 연구성과를 반영해달라는 주문도 이어졌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역사라는 것이 한국사뿐 아니라 사회과학, 인문학 등 다양한 연구 성과들을 반영해서 만들어지는 것인 만큼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등 여러 분야 학자들이 모여 토론과 회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식 교수도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헌법학계 일각에서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가 교육의 중립성을 침해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임지봉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 헌법은 제 31조 4항에서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교과서 국정화는 해당 헌법 조항에 위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학회·토론회 등 열어 의견 모아야
신경아 교수는 “학자들마다 옳다고 생각하는 역사의 해석이 있기 때문에 다른 해석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책을 쓰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그럼에도 국정 교과서를 만들어야 한다면 다양한 학자들의 검토를 충분히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신교수는 “학자들이 순수한 연구성과를 발표하는 토론공간인 학회에서 의제로 삼아 토론하도록 하고, 10~20개 학회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가장 피해야 할 것은 정부가 주도하거나 특정학회 한 곳에 맡기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경자 대표는 “정부는 기존 교과서를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토론회 등을 열어 여러 의견을 듣고, 교과서를 잘 만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국민들도 정부의 노력을 제대로 지켜보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긍정적·건전한 가치관 담아야
학부모들은 교과서 발행체제가 어떤 것이든 아이들이 과도한 학습 부담에서 벗어나 긍정적이고 건전한 가치관을 배울 수 있도록 교과서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했다.
이경자 대표는 “아이들이 긍정적인 역사관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되야 한다”고 말했다.
중학교 3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 임모씨는 “이미 국정교과서를 만들기로 한 만큼 현행 검정교과서가 가지고 있다는 문제점을 최대한 없애고, 아이들이 건강한 역사관을 기를 수 있는 내용으로 충실히 구성해야 한다”면서도 “지나치게 성장의 성과를 미화하기 보다 노동운동이나 경제 개발의 공과를 상세히 다뤄 아이들이 직
임씨는 또 “국정교과서나 검정교과서나 입시에 지친 아이들에게는 매한가지”라며 “지나치게 배워야할 양이 많지 않도록 분량에도 신경써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수영 기자 / 유태양 기자 / 홍성용 기자/ 황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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