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조원대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의 최측근 강태용씨(54)가 도피 7년 만에 검거된 가운데, 조씨의 사망 사실을 발표했던 경찰이 달라진 입장을 발표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경찰은 2012년 5월 ‘조씨가 2011년 12월 18일 중국에서 급성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고 공식발표한 이후 사실상 추가 수사를 중단했다. 그러나 경찰이 사망 ‘확인’에서 ‘추정’으로 한 발짝 물러난 입장을 밝히면서 파장이 일고 있다. ‘원점 재수사’를 천명한 검찰의 행보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13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사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조씨가) 사망했다고 판단할만한 과학적인 근거는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강 청장은 “(사망 발표) 당시 중국 측에서 보낸 자료를 보고 현실적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 것 같다”며 “중국 현지에서 작성한 사망진단서, 시신화장증만 가지고 사망했다고 보기는 무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강 청장은 “2012년 이후 약 3년간 생존반응이 없는 것은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라고 선을 긋고 “페이스 오프(성형수술)를 했더라도 주변 첩보형태로 감지가 될텐데 우리 주재관 등의 첩보에 특별한 것은 없었다”고 밝혔다.
조씨는 2004년 10월부터 대구·경북지역을 중심으로 전국 10여개 유사 수신 업체를 차린 뒤, 의료기기 대여업으로 고수익을 돌려주겠다며 투자자 3만여명에게 약 4조원을 가로챈 후 2008년 12월 중국으로 도피했다.
지난 2012년 5월 경찰은 중국 측을 통해 확보한 현지 응급 진료기록과 사망증명서, 시신화장증, 장례식 영상 등을 근거로 조씨의 사망을 확인했다. 당시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장으로 사건을 맡았던 박관천 전 경정은 “이미 시신을 화장하는 바람에 DNA 대조까지는 못했지만,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조씨가 사망했다는 점을 어느 정도 의심의 여지가 없는 선까지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강 청장은 “당시 ‘확인했다’고 한 건 맞지만, 지금으로선 과학적인 물증이 없다는 얘기”라고 해명했다. 당시 사망을 확신했던 박 전 경정에 대해선 “평소 소신과 자기 믿음이 강한 사람”이라며 “자신의 상사에게도 그렇게 보고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박 전 경정은 현재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으로 구속기소된 상태다.
당시 경찰 발표가 너무 성급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사망진단서에 있어야 할 파출소 확인 도장이 없었고, 시신화장증 발급 날짜도 경찰이 발표한 사망일보다 열흘이나 빨라 의혹이 무성했다.
특히 조씨의 가족들은 여지껏 사망신고조차 하지 않았고, 조씨에 대한 지명수배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정용선 경찰청 수사국장은 “사망을 하면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되지만 (조씨의) 가족들이 사망신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중국 공안을 통해 사망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생존 가능성에 대비해 수배를 유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조씨의 오른팔 강씨가 지난 10일 검거되면서 수사는 급물살을 타고 있다. 대구지검 형사4부가 12일 원점 재수사 방침을 분명히 밝히면서 향후 수사 방향에도 이목이 쏠린다. 수사의 핵심은 역시 조씨의 생존 여부다. ‘조씨가 살아 있어 붙잡아 올 수 있다’는 전제가 성립해야 그를 비호한 정관계 인사들의 실체와 규모를 최종 확인하고 빼돌린 재산도 환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씨는 조씨가 충남 태안에서 작은 고깃배에 7000만원을 주고 중국으로 밀항하기 몇 달 전인 2008년 가을께 먼저 중국으로 건너갔다. 검찰은 강씨가 조씨의 최측근이고, 약간의 시차를 두고 둘의 행로가 겹친다는 점에서 강씨가 조씨의 생사 여부부터 그의 최근 행적도 알고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검찰은 이와 함께 4조원대 사기 범행은 물론 정관계 뇌물공여·로비 의혹도 샅샅이 파헤친다는 계획이다. 조씨가 중국으로 밀항할 수 있었던 건 깊숙이 뻗은 조씨의 정관계 인맥 때문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사기극이 발각되자 조씨는 검·경의 여러 관계자들에게 뒷돈을 뿌려가며 비호를 받았다. 수사 무마를 대가로 조씨에게 2억4000만원을 받은 김광준 전 검사(54·사법연수원 20기), 9억원을 챙긴 혐의로 구속된 권 모 전 대구지방경찰청 총경(51) 등이 대표적
검찰은 조씨가 벌인 사기극의 피해 보상을 위한 은닉재산 환수에도 수사력을 모을 계획이다. 조 단위 피해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지금까지 찾아낸 조씨의 부동산·현금 등은 1200억원 규모에 그친다. 검찰은 조씨의 ‘금고지기’ 역할을 한 강씨를 상대로 강도 높은 추궁을 이어갈 방침이다.
[백상경 기자 / 김세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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