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운동 관련해 전태일,박종철, 이한열 등 상징적인 인물을 통해 그 과정을 스토리있게 전한 반면 경제발전에 기여한 이병철·정주영 등에 대한 서술은 없다.’
현재 고등학생들이 배우는 한국사 교과서들은 대부분 노동운동가 전태일에 대해서는 사진과 탐구문제까지 만들어 자세히 다루지만 기업인 이야기는 거의 다루지 않는다. 기업의 역사도 찾아보기 힘들다.
역사는 이야기하듯 기록해야 읽는 사람이 흥미를 느끼고 오래 기억하기도 쉽다. 하지만 지금의 교과서들은 ‘인물’과 ‘스토리’를 뺀 산업화와 경제 성장만을 다루고 있다. 전태일, 이한열, 박종철 등 상징적 인물들을 통해 그 과정이 자연스럽게 전달되는 민주화에 대한 기술과는 대조적이다.
교육부의 역사 교과서 집필기준 역시 ‘저개발 국가였던 우리나라가 정부 주도의 경제 개발 계획을 기반으로 이룩한 경제 발전의 과정을 서술한다’ ‘급속한 경제성장이 삶의 질과 국민의 소득 증대에 기여했으나, 빈부격차 등 사회 문제를 야기했다는 점도 유의한다’라고만 되어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산업발전사에 대한 구체적인 맥락이나 역사를 교과서에서 제대로 배웠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압축성장과 그 부작용을 서술한 교과서만으로는 산업화의 긍정적 측면보다는 부정적인 측면이 부각되기 쉽고, 결과적으로 반기업 정서를 심어주게 되는 것이다.
정성태 LG경제연구원 박사는 “기업인이나 기업에 대한 소개가 미미한 점은 개선돼야 한다”며 “경성방직 등 우리 근대사의 터닝포인트를 만든 기업인, 기술가 등을 보다 적극적으로 서술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박사는 “다만 현재 기업활동이 이뤄지고 있는 대기업의 창업주를 소개할 경우 해당기업의 홍보도구로 전락할 염려도 있는 만큼, 이미 사라진 기업 중에 우리 경제발전에 큰 역할을 한 곳을 찾아 소개하는 것이 잡음을 없애면서 산업화를 보다 잘 기술하는데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직장인 김용진씨(가명, 28)는 “민주화 등에 대해서는 큰 흐름이 잡히지만, 산업 발전사에 대해서는 큰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게 사실”이라며 “여야는 종북·유신 등에 대한 정치공세를 벌이기 보다 산업화와 민주화 간 불균형은 없는지를 돌아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김씨는 “청년세대도 북한 목함지뢰 도발사건 당시 전역을 미루는 등 애국심을 보여주지 않았느냐”며 “정치권이 종북 등을 쟁점으로 싸우는 것은 기성세대들이 자신들의 프레임에 빠져서 헛다리를 짚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제발전을 이룬 관료들에 대한 서술이 미약한 것도 문제로 제기된다.
국무총리실장 출신의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은 “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세우는 등 한국경제 발전에 기여한 경제관료들에 대한 서술도 교과서에 거의 없다”며 “많은 해외학자들이 경제관료들의
그는 “관료들의 회고록 등이 있고 정보열람으로 몇 십년된 자료는 연구가 가능하다”며 “역사학계가 보다 적극적으로 관료의 역할을 재조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은아 기자 / 나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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