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직장인 김 모씨(27)는 최근 서울 시내 대형 화장품 매장에 들렀다가 한 젊은 여성의 행태에 화들짝 놀랐다. 인파로 들끓는 매장 내 립스틱 코너를 기웃하던 이 여성이 일순간 샘플용 립스틱의 3분의 1 가량을 댕강 잘라 작은 병에 담고 있던 것이다. 매장 직원 한 명이 근처를 지나가자 여성은 일이 마무리 된 듯 유유히 매장 밖을 나섰다. 김씨는 “향수만 뿌리고 나가는 사람은 자주 봤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매장 직원도 알면서 그냥 모른 척 하는 눈치인 것 같다”고 했다.
#2. 경기 고양시에 사는 서 모씨(26·여)는 거주지 인근 대형 화장품 매장을 갈 때 중·고등학교 하교 시간은 반드시 피한다. 오후 4~5시 무렵에 방문하면 바글바글한 10대 여학생들이 샘플 화장품으로 풀메이크업 하는데 여념이 없기 때문이다. 서씨는 “어린 학생들이라 얄팍한 주머니 사정은 이해하지만 대놓고 화장만 하고 나가는 걸 보면 눈쌀이 찌푸려진다”며 “되도록이면 점심시간처럼 학생들의 발길이 드문 시간대를 활용한다”고 했다.
서울 시내 대형 화장품 매장들이 ‘샘플족’들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샘플족’은 제품 구입은 하지 않고 상습적으로 샘플만 사용하고 나가는 얌채 고객을 의미한다.
연령대는 10대 청소년부터 2030세대 대학생과 직장 초년생을 아우르는데, 공통점이라면 주머니 사정이 녹록지 않다는 것.
서울 내 한 대형 화장품 가게에서 일하는 알바생 A씨. 하루 8시간 근무하는 그는 인근 중·고등학교 하교시간이 가장 두렵다. 우르르 밀려드는 교복 차림의 여학생들이 직원의 시선은 아랑곳 않고 한바탕 샘플 화장품을 휩쓸고 가는 탓이다. 립스틱만 사용하는 건 약과다. 기초화장부터 시작해 아예 풀메이크업을 하고 가는 경우도 다반사. A씨는 “기껏해야 몇 안되는 용돈으로 생활할텐데 샘플 쓴다고 구입까지 하겠냐”며 “거의 매일 보는 아이들인데 풀메이크업을 하든, 도둑질만 안 하면 뭐라하진 않는다”고 했다.
명동의 한 대형 화장품 매장 직원 B씨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 매장의 경우 하루 1500여명 가량의 손님이 오간다. 샘플 향수만 하루 100개 이상은 족히 동나는데, 대부분 향수만 뿌리고 휙, 나가는 ‘향수 샘플족’들로 인한 것이다. B씨는 “샘플 향수 사용이 실제 구매로 이어지는 경우는 관찰결과 거의 없다”며 “회사 방침상 잠재고객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그냥 두는 것”이라고 했다. 인근의 또다른 화장품 매장 직원 C씨는 “기초화장품인 토너, 에센스, 로션 같은 경우는 아예 공병을 가져와 몰래 담아가는 손님도 더러 있다”고 귀띔했다. “얼마전 한 손님은 향수 공병까지 가져와 몰래 챙겨갔어요. 이런 경우에는 제재를 하는데, 손님이 붐비면 일일이 적발하기도 힘들죠. 사실상 무방비 상태랄까요.” 명동의 경우 중국 관광객이 밀물 썰물처럼 오가지만 ‘샘플족’은 주로 내국인에 국한된다는 게 매장 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화장품 업계는 샘플 사용 자체를 ‘잠재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마케팅 수단이라고 설명한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테스터(샘플 화장품)만 이용하는 손님에 대해 별다른 제재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이를 ‘공짜 점심’으로 간주하는 ‘상습 샘플족’들이 과연 잠재 고객으로 연결될 지에 대해 전문가들 의견은 회의적이다.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는 “공짜 물건에 익숙해진 샘플족이 잠재 고객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기업이 생각하는 것보다 매우 적을 것”이라며 “별다른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서 마음껏 테스터기를 사용할 수 있다면야 굳이 비싼 제품을 구입하려 하겠냐”고 반문했다. 이어 “가난한 청년 세대의 일부가 이러한 행위를 보이는 맥락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안대용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김시균 기자 / 황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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