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악, 아퍼, 애기야”
“통화 가능하세요?”
“아아~여기여기”
어느 날 아침 즐겨듣는 라디오에서 짧지만 강렬한 소리 하나가 내 귀에 꽂혔다. 산후조리원에 있는 산모를 깨워달라는 누군가의 부탁에 라디오 진행자가 대신 전화해 기상시켜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아마도 내가 모유수유 경험을 해보지 않았다면 ‘방송 사고’ 운운하며, 그 상황을 결코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산모의 외마디 비명소리는 라디오 전파를 그대로 탔고, 나는 7개월 전 내 모습이 떠올라 한참을 그대로 앉아 있었다.
지난 3월 자연분만으로 아기를 낳은 난 그 이튿날부터 아주 생경한 경험을 해야만 했다. 바로 어두컴컴한 수유실에 들어가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일이었다. 수유실 입구에서 벨을 누르고 “00 엄마에요”라고 말하는 것부터 영 낯설었다. 분명 10개월간 내 뱃속에 있었고, 또 내 배 아퍼 낳은 아기인데도 막상 현실에서 부딪혀보니 모든 게 어색했다.
수유실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이게 뭔 일인가 싶었다. 생판 모르는 이들 앞에서 가슴을 버젓이 노출해야하는 것은 물론, 결정적으로 물리면 당연히 나올 줄 알았던 모유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슴이 아팠다. 배가 고파 목청이 찢어져라 우는 아기에게 줄 수 있는게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에 나 또한 울고 또 울었다. 신생아실 유리창 너머로 나 대신 간호사가 분유를 먹여주는 모습을 보고, 꿀꺽꿀꺽 받아먹는 아기를 보며 그렇게 서럽게 울었던 적이 없었다. 산후조리원 신고식을 톡톡히 치룬 셈이다.
출산 후 3일, 4일, 일주일이 지나도 잘 나오지 않는 모유 탓에 수유실 가는 게 점점 두려워졌다. 출산의 고통이야 어떻게든 나 혼자 견디면 됐다. 하지만 모유수유의 미숙함, 부족함은 나로 인해 아기의 배고픔이 배가 되는 상황이어서 아기에게 너무 미안했다. 모성은 본능이라기보다는 철저한 학습에 의해 생긴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모유수유가 잘 안되자 급기야 34년 내 인생이 통째로 보잘 것 없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날 초라하게 만든 것은 모유수유를 너무도 잘하는 엄마들이었다. 산후조리원에서 모유수유를 해 본 엄마들은 다 알 것이다. 모유수유하다말고 간호사에게 “분유 좀 타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스스로를 작아지게 하는 말인지. 주변 엄마는 아기와 뜨거운 스킨십을 나누고 있는 동안 자신은 팔과 목에 쥐가 나도록 아기에게 모유를 먹이려고 안간힘을 쓸 때, 정작 아기는 모유가 잘 나오지 않아 울음을 터뜨릴 때 맛보는 좌절감이란…. 나 같은 초보엄마들이 겪는 육아의 첫 고통일테다.
유축기를 통해 가져온 젖병 속 모유량 역시 엄마들 사이 스트레스 유발 요인이다. ‘아직 다 회복되지 않은 몸일텐데 양이 왜 그렇게 많은거야?’,‘1~2시간마다 수유실로 똑같이 호출당하는데, 언제 또 짬이나 저렇게 모았지? ’ 등등의 비교를 하며 우울감에 빠지기 쉽다. 남과의 비교는 불행의 시작인 것을 뻔히 알지만 2평 남짓한 공간에서 거의 매시간, 그렇게 2~3주 동안 모유수유에만 집중하다보면 스스로도 통제불능인 부분이 생긴다. 오죽하면 산후조리원에서 위너(winner)는 모유가 펑펑 잘 나오는 엄마란 얘기가 산모들 사이 나올까.
산후조리원에서 수유 방법에 대해 간호사들은 친절히 설명을 해준다. 하지만 난생처음 모유수유를 시도하는 초보 엄마들에게 이론과 실전은 다를 때가 아주 많은 법. 그런 간극을 엄마들 사이 비교심리나 잘못된 정보가 교묘히 파고들 때 산모들은 불안감, 우울감을 호소하게 된다.
모유수유를 하던 당시 결국 내가 필요했던 것은 아이와 교감을 나누는 일이었는데 산후조리원에 있는 2주 동안 난 모유수유는 물론, 기저귀 갈아입히는 법, 목욕시키는 법,분유타는 법 등등 아기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모든 일을 습득해야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산후조리원에서 육아의 모든 것을 마스터해서 나가야지란 조바심 탓에 이 세상에 태어난 아기를 미처 축하할 겨를이 없었다.
7개여월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2주만에 육아를 모두 배우겠다는 내 생각이 얼마나 옹졸했는지, 또 모유수유가 잘 안된다고 해서 스스로를 루저(Loser)로 여길 필요는 더더욱 없었는데 그 땐 왜 그랬는지 창피하기만 하다. 엄마라는 위대한 자격에 루저와 위너 구분이 다 무슨 소용이람. 나중에 알고보니 모유수유를 잘 하던 엄마들은 둘째, 셋째를 낳아 육아 경험이 있었고, 출산 전 가슴 마사지를 한 두번은 받아 미리미리 모유수유 준비를 해왔던 엄마들이었다.
모유는 엄마가 아기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임이 틀림없다. 그래서 오늘도 졸린 눈을 비벼가며, 달리는 체력을 보충해가며 모유수유를 하는 엄마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동시에 이러저러한 사정 탓에 모유 대신 분유를 먹이는 엄마들도 응원
[디지털뉴스국 방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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