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에서 나고 자라 이제는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운영하며 터를 지키고 있는 박준식씨는 노량진을 이렇게 정의했다. 꿈과 희망을 품은 이들이 목표 달성을 위해 인내한 시간들이 추억으로 남는 ‘애증’의 공간이라고.
세월의 흐름 속에서 역 앞에 즐비했던 컵밥집도 자리를 옮겼고 ‘세속으로 가는 다리’였던 육교도 철거됐지만 그 모든 것들이 노량진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가슴 속에 남아있다. 박씨는 “노량진을 대표할 수 있는 상징적인 무언가는 없는 것 같다”면서도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이지만 이방인이 찾아와도 자연스럽게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현재 노량진은 공무원을 비롯해 경찰, 소방관 등 ‘국가 고시’라고 불리는 각종 임용시험의 중심지가 됐다. 하지만 대학 입학통지서가 곧 성공의 보증 수표가 되던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이 곳은 재수학원 일색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고등학교를 갓 마친 20대 초반의 청년들이 ‘오직 수능 대박’을 외치며 이 곳에 모여 자신과의 싸움을 이어갔다. 수능만큼 치열한 재수학원의 입학 전형을 거쳐야 원하는 수업을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학령인구가 점차 감소하고 원격 강의가 도입되며 점차 그 위세가 줄었다. 한 입시 미술학원 원장은 “10여년까지만해도 이 곳에 입시 미술학원도 수십여개에 달했지만 현재 남아 있는 곳은 2곳 정도”라고 말했다.
재수학원이 주춤한 사이 이 빈틈을 채운 것은 공인중개사 학원이다. IMF 위기로 경기가 침체기에 접어들자 정부가 부동산 규제완화 중심의 부동산 정책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공인중개사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며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학원이 노량진을 점령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더이상 부동산이 재테크의 대상이 되지 않으며 공인중개사 학원은 더는 늘어나지 않았다.
2010년대 들어 대학 졸업장만으로는 취업이 어려워지고 평생 직장이 보장되지 않는 불안한 사회가 이어지며 노량진은 또다시 변모한다. 삶의 안정과 여유를 꿈꾸는 이들이 공무원 합격을 목표로 하나둘씩 노량진으로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블랙홀처럼 모든 수험 준비생들을 빨아들이고 있는 노량진에 대해 ‘입지적 관성’을 들어 설명했다. 입지적 관성이란 어떤 장소가 하나의 특성을 가지고 개발이 됐을 때는 그 특성이 조금씩 달라지더라도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지리학 용어이다. 최재헌 건국대 지리학과 교수는 “1980년대 입시학원이 설립되기 시작할 당시 노량진은 서울대, 중앙대 등 인근지역 학생들이 차를 갈아타는 지역이었다”며 “질 좋은 강사를 확보하기 위해선 교통이 편리한 곳에 학원을 둘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건물을 학원 용도로 지은 것도 노량진에 학원가가 유지되는 이유 중 하나”라며 “가르치는 내용이 달라지더라도 학원이라는 형태는 변화가 없어 동일한 상권이 지속될 수 있었던
[박대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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