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일은 눈앞에 쌓여있는데 어느새 초점은 다른 곳을 향해 있다.
턱을 괴고 눈꺼풀에 살짝 힘을 빼니 금세 머릿속에 편안함이 찾아오면서 새로운 상상이 떠오른다.
바쁠수록, 집중해야 할수록 ‘멍 때리는 것’은 왜 이렇게 재밌는 걸까.
하지만 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 자주, 심하게 멍을 때린다면 문제가 되지만 종종 멍 때리는 것은 오히려 창의력에 도움을 준다는 연구가 있다.
미국의 신경과학자 마커스 라이클(Marcus Raichle)은 우리가 멍 때리며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뇌가 바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라이클 교수 연구팀은 기능적 자기공명영상(MRI)과 양전자단층촬영(PET) 기법을 이용해 뇌의 활동사진을 촬영했다.
그는 인간이 아무것도 안 할 때, 뇌가 에너지를 쓰는 것을 봤고 심지어 쉴 때 유난히 활발해지는 뇌 영역, 디폴드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 DMN)를 발견했다.
이 연구를 기반으로 책 ‘딴생각의 힘’을 쓴 저자 마이클 코벌리스는 ‘우리가 멍 때려야 하는 이유’를 책을 통해 설명했다.
◆기억을 저장하고 관리한다
장보기 목록, 오늘 할 일, 이번 달 지출 등은 우리의 ‘기억’과 모두 연관이 있다.
당신은 멍 때리는 활동을 통해 기억의 저장과 재생산에 활기를 불어 넣을 수 있다.
멍 때릴 때 활성화되는 뇌의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 영역은 ‘해마’와 함께 활발한 작용을 한다.
우리 귀의 뒤쪽에 위치한 해마는 우리 뇌에서 기억을 담당하고 있는 중요한 기관이다.
해마는 단기 기억과 장기 기억에 관여하며 이를 저장하고 삭제한다.
즉 당신이 하던 일을 멈추고 멍을 때릴 때, 기억을 지휘하는 해마가 활발해지며 뒤엉키고 복잡해진 머릿속 정보들을 정리할 수 있는 것이다.
◆창의력을 키울 수 있다
우리는 복잡한 생각을 멈춘 상태에서 뜻하지 않게 뛰어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다.
스티브 잡스는 “창의성은 그냥 사물을 연결하는 능력입니다. 한참 들여다보니 이거다 싶은 확신이 들었던 겁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는 우리 뇌 안에서 떨어져 있던 연결고리들이 이어지며 새로운 창의성이 생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한다.
당신이 멍 때리는 동안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일을 하기 시작하면 그동안 끊겨 있던 뇌의 부위들이 연결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종종 멍을 때리거나 다른 공상에 빠져들면서 뇌의 단편들이 정보를 서로 연결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
당신도 별생각 없이 멍을 때리다가 “아! 맞다”라고 말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을 수 있다.
◆자아를 형성한다
멍을 때리는 동안엔 내 옆의 친구도 모니터 속 글자도 사람도 보이지 않아 오로지 ‘나’에 집중할 수 있다.
당신이 멍 때리는 동안엔 자아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전전두엽’ 부위가 함께 일을 시작한다.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이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이 심리학에서 정신 작용을 담당하고 있다고 말한다.
대뇌 피질 중 전두엽의 앞부분인 전전두엽은 자신의 일을 계획하고 평가하며,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즉, 사람의 ‘자아 형성’과 관련된 전전두엽은 당신이 멍을 때리는 동안 활성화된다.
또 멍 때리는 동안 뇌에선 ‘두정엽(parietal lobe)’이라는 곳이 함께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 기관은 일차적으로는 체감각 기능, 감각 통합과 공간 인식 등에 관여하며 단어를 조합해 새로운 의미나 생각을 만드는 곳이므로 이 부위가 손상되면 ‘무인식증(Agnosia, 알지 못하는 상태)’이 생긴다.
◆상상력을 제공한다
‘다리가 잘린 인공지능 로봇이 한 여자를 쫓고 있다’
공상과학을 대표하는 영화 ‘터미네이터’는 감독 제임스 카메론의 이런 엉뚱한 생각으로부터 시작했다.
이처럼 멍 때림과 엉뚱한 생각들은 상상 속의 세계를 현실로 만들어주는 기폭제 역할을 한다.
저자 마이클 코벌리스는 “우리는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다른 사람을 우리의 정신
당신이 글을 보는 이 순간에도 당신의 뇌는 열심히 기억 조각들을 전달하고 조립하며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낼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가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멍을 때려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디지털뉴스국 박가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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