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표정에는 긴장한 티가 역력히 났다. 비록 생후 15개월 밖에 안됐지만, 감정 표현이 어느 정도 가능한터라 엄마는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물을 무서워하는구나’
아이의 긴장을 풀어줄만큼 엄마아빠가 능수능란했어야하는데, 우리 부부는 그러질 못했다. 겨우 내 무릎 약간 윗부분에서 찰랑거리는 물높이였지만 겁이 덜컥 났다. 아기에게는 거의 귀밑에 차는 높이였기 때문이다.
물총놀이를 하는 아이들은 또 왜그렇게 많은지 행여 내 아이의 귀에 물이 들어갈까봐 미간만 계속 찌푸리게 됐다. 분명 따뜻한 물이라고 했는데 수영장 전반의 공기가 차가워서인지 물 온도도 마뜩잖다. ‘아! 괜히 왔다’
곁에서 도무지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 아이는 내가 물거품을 살짝 만들어주자 흥미를 조금 보였다. 마침 아빠가 불어온 튜브까지 착용하니 이제 재미를 좀 느끼겠구나 했다. 하지만 이내 아이는 난생 처음 해 본 튜브를 불편해했고 엄마 손만 더 꼬옥 잡았다.
튜브를 벗고 대신 아장아장 걸어보기를 했다. 물의 저항력에 부딪혀서인지 물밖에선 곧잘 걷던 아이가 자꾸 헛발질을 했다. 그런 모습이 내 눈에는 귀엽기만했다. 덩달아 긴장도 약간 풀렸다.
귀여운 아이의 모습이 더 보고 싶어 나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 혼자 걸어보게했다. 뚜벅뚜벅 두세발짝을 뗐다. 물을 가르며 걸어가는 느낌이 스스로도 신기했는지 아이는 자기 손을 한번씩 휘저으며 걸어보려고 애썼다.
철퍼덕! 아이가 물 속으로 머리를 박고 넘어졌다. 아이는 곧장 고개를 들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계속 더 고꾸라졌다. 나와 불과 두 세발짝 거리여서 방심한 틈에 아이는 물에 빠졌다.
재빨리 일으켜세운다고는 했지만 이미 코로, 눈으로, 입으로 물이 다 들어간 상태였다. 아이는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하고 빨개진 코와 눈에 어쩔 줄 몰라했다. 인공호흡을 해야하나 순간 생각이 들 정도로 숨쉬기조차 힘들어하는 아이를 보니 아 정말로 괜히 왔나 싶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인공호흡을 할 줄 몰랐던 나는 아이가 곤경에 빠졌을 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시달렸다. 아이가 물에 빠진 것은 정말로 순식간이었다.
“여름하면 물놀이지!” 많은 설렘을 안고 떠난 물놀이였다. 점점 더워지는 날씨 탓에 집에만 있기 답답했던 우리 부부는 15개월 아이를 데리고 물놀이를 가기로 마음먹었다.
아이와의 외출에 있어 돌 전과 돌 후는 마음가짐이 많이 달라져 이같은 결정은 쉽게 이뤄졌다. 돌 전에는 일단 기어다니는 아이를 데리고 집밖을 나가기가 조심스러웠다. 나가더라도 준비할 게 많으니 아예 외출하지 않는 편이 속 편했다.
하지만 돌이 지나 젖병을 떼 먹는 일이 좀 수월해졌고,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니 지금 당장 세상 구경을 시켜주지 못하면 안될 것 처럼 안달나는 경우가 종종 생겼다. 이번 물놀이 여행 출발이 그랬다. 오감 발달을 위해, 뇌세포 증진을 위해 이번에 꼭 물놀이를 데리고 가야만 될 것 같았다.
출퇴근길 지하철을 기다리며, 점심시간 차 한잔 마시며, 야간 당직 시간 지루한 틈을 타 물놀이와 관련해 폭풍검색을 할 때면 그렇게 신이 날 수가 없었다. 목튜브가 좋을지, 보행기 튜브가 좋을지, 아니면 조끼처럼 생긴 튜브를 입힐지 이미 물놀이 좀 해봤다는 엄마들의 경험담을 읽으며 내 아이의 모습을 상상했고, 상상만해도 흐뭇했다.
남편 역시 직장 동료들에게 아들과 물놀이 간다고 미리부터 자랑했다. “좋을 때다. 한창 귀엽지?” “아빠 노릇 제대로 하는구나” 등 동료들로부터 부러움을 산 여행길이었기에 더욱 설레여했던 남편이었다.
오랜만에 꺼내 본 수영복에, 선글라스며, 여름 샌들, 꽃무늬 반바지….간만의 외출에 멋을 잔뜩 부린 나는 수영복을 갈아입는 동안 이리저리 구경 다니느라 바쁜 아이를 붙잡느라 애를 먹긴했으나 아이가 신나하니 내 기분은 더욱 좋았다. 물 속에 들어가기 전까지만해도 말이다.
그런데 막상 결과는….일주일 이상 상상해왔던 것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긴장감, 당황스러움, 괜한 짜증, 좌절감, 피곤한 몸, 예상치 못한 아이의 기분 변화, 밀려드는 후회 뿐이었다.
사실 15개월 아기를 데리고 물놀이를 간다고 하니 걱정하는 목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직 어리다”, “두돌은 지나야 놀 수 있을텐데”, “너희 부부 녹초가 돼서 올 걸, 싸우지나 마라” 등등. 그 때는 귓등으로 다 흘려들었는데, 어찌 그리 맞는 말만 했었는지. 이렇게 뒤늦게 후회한다.
생애 첫 물놀이 경험이 아이에게는 어떤 기억으로 남았는지 참 궁금하다. 부디 겁나고, 두려웠던 경험이 되지 않았기를 기도해본다. 돌이 지나 걷기 시작하니 어느 정도 키웠다고 생각한 나의 옹졸함 역시 반성한다. 오히려 더 많은 위험과 도전이 곳곳에 놓여있음을, 그런 변수들로부터 우리
그리고 중학교 교련시간 때 배우고서는 한번도 써먹은 적이 없는, 그래서 배운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인공호흡을 반드시 배우리라. 엄마의 의무다.
[디지털뉴스국 방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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