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한·일 양국 정부의 합의를 통해 설립하기로 한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한 ‘화해·치유 재단’이 극심한 갈등을 빚어내며 출범 첫 날부터 파행을 빚었다. 특히 김태현 화해·치유 재단 이사장은 캡사이신으로 추정되는 액체를 맞고 병원으로 후송되는 곤욕을 치렀다.
‘화해·치유재단’은 지난해 12월 28일 한·일 양국 간 합의에 따라 정확히 7개월 만인 28일 현판식을 갖고 공식 출범하게 됐다. 그러나 이날 첫 이사회와 기자간담회가 진행된 서대문역 일대 곳곳에서 극심한 반대 시위가 벌어지면서 화해·치유 재단의 험난한 앞날을 예고 했다.
가장 큰 쟁점은 다수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정부의 위안부 합의에 찬성하고 재단설립을 용인해줬는가 하는 부분이다. 김태현 화해·치유 재단 이사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5월 30일 재단설립준비위원회 창립 이후 모두 37분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직접 찾아가 대화를 나눴다”고 밝혔다. 여성가족부의 파악에 따르면 현재 생존해 있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는 모두 40명으로 김 위원장이 만나지 못한 3명은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에서 머물고 있는 할머니 3분이다. 이를 근거로 김 이사장은 “재단 설립을 반대하는 극히 소수의 피해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피해자 분들이 재단 사업에 동참하겠단 뜻을 전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날 정부의 위안부 합의에 반대하는 단체 소속 50명여명이 재단 사무실이 있는 바비앵3 주상복합건물 앞에서 따로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의 재단 출범을 비판했다. 평화나비네트워크 등 일부 단체 소속 시위대는 “정부는 10억엔 재단 설립 중단하고 즉각 재협상하라” 등 구호를 외치면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또 20여명의 여자 대학생들은 기자간담회 연단을 30분가량 점거하는 등 정부의 위안부 재단 출범에 강하게 항의했다. 반대 시위에 참가한 대학생 박은혜 씨(23)는 “정부의 위안부 합의가 피해자 할머니의 바람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며 정부를 비판했다.
일본 정부가 약속한 10억엔의 재단 출연금이 위안부 소녀 상의 이전 등의 추가조건 없이 지급될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날 재단 현판식에 앞서 일본 정부측에서는 거출금의 용처를 두고 한-일 양국의 미래지향적 관계를 위해 일본에 유학한 한국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으로도 일부 쓰이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가 하면, 재단의 운영비가 아닌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 대한 직접 지원에 활용되는 것에는 일본 정부가 반대한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이에 대해 김 이사장은 “일본이 제공할 10억 엔을 장학사업에 사용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10억엔은 피해자의 의사에 따른 ‘개인 맞춤형 지원’에 쓰일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일본 정부가 10억엔 출연 시점을 명확히 밝히지 않은 것이 소녀상 이전과 연계된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선 “12·28 합의를 보면 10억 엔과 소녀상 이전은 별개라 명시돼 있다”고 답했다. 외교부 당국자도 일본 정부가 위안부 지원재단에 출연할 10억 엔을 일본에 유학한 한국 학생들의 장학사업에도 사용하자고 제안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와 관련해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외교부는 주한 일본대사관 앞의 위안부 소녀상 철거를 위해 한국 정부가 어떤 노력을 할 것이냐는 일본 취재진의 질문에 대해 “가능한 대응방안에 대해 관련 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해 가겠다는 입장”이라며 작년 말 합의한 사항 그대로임을 밝혔다.
한편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은 일본 정부 거출금 출연 시기에 대해 “양국 정부가 (재단) 사업의 조정을 하고 있다”며 “그 결과에 따라 지출 시기가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도 28일 기자회견에서 “재단 출연금 지출의 구체적인 시기는 미정”이라고 말했지만 소녀상 이전이 출연금 지출
현재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는 238명이며, 작년 12.28 위안부 합의 당시 46명이던 생존자는 현재 40명으로 줄었다.
[안두원 기자 / 최희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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