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2인자’이자 신동빈 회장의 최측근인 이인원(69) 그룹 정책본부장(부회장)이 검찰 수사를 앞두고 돌연 목숨을 끊어 이 부회장이 극단적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룹 내 최고 임원들이 잇따라 불려가 조사를 받았고, 전날인 25일에는 황각규 정책본부 운영실장(사장)이 소환돼 강도 높은 수사를 받고 있었던 상황에서 자신까지 검찰 소환 통보가 날라 오자 압박감이 컸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이 부회장은 마지막 순간 “신동빈 회장은 훌륭한 사람”이라는 내용을 유서에 남겼다. 자신의 조사 다음 순서로 신 회장 등 오너 일가의 검찰 조사 수순까지 예고된 상황에서 ‘풍전등화’ 속 그룹의 운명을 구해낼 해결책으로 이런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분분하다.
이 부회장 거주지는 서울 용산구지만 그의 시신은 차량으로 1시간 거리인 경기도 양평에서 발견됐다. 양평경찰서는 신고를 받고 26일 오전 7시 11분쯤 이 부회장으로 추정되는 시신을 발견했다. 그는 전날까지도 주변 사람들에게 밝은 표정으로 인사하는 등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25일에도 사무실로 정상 출근해 보고를 받고 변호사들과 상의하는 시간도 갖는 등 평소와 다름없는 일정을 보냈다”며 “특히 임직원들에게 ‘내일 조사이니 검찰 앞에서 보자’는 대화를 나누기도 했는데 갑자기 이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할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롯데 측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25일 오후 6시 30분께 회사를 나섰다. 서울 용산구 이촌동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 입구에 들어선 시각은 이날 오후 8시 16분이었다. 이 부회장의 자택인 서울 용산구의 아파트에서 만난 관리소장 최모씨는 “아파트에 들어가면서 우편물을 확인했고 ‘조금 있으면 우리 부인도 곧 퇴원할 것’이라고 경비원에게 웃으며 인사했다”고 전했다.
현재 이 부회장 아들은 분가한 상황이고 부인은 보름 전께 종양 수술을 받고 입원했었다. 이 부회장은 이 집에서 혼자 지내왔는 데 이 부회장 조카가 함께 머물며 집 관리를 도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 부회장은 9시 56분께 운동복 차림으로 직접 제네시스 차량을 몰고 아파트 주차장을 나섰다. 당시 조카에게는 “운동하러 간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시각 황각규(61) 롯데정책본부 운영실장(사장)이 검찰 조사를 12시간 째 받고 있었다.
그가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 소재 강변에 위치한 한 무인호텔 인근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 것은 다음날인 26일 오전이다. 목을 멘 장소와 호텔사이 거리는 불과 100m였지만 해당 호텔에 투숙은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경찰 관계자는 “호텔 투숙기록을 조회했지만 기록이 없었고 직원들도 이 부회장을 봤다는 진술이 없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 부회장으로 추정되는 변사체가 산책로에 심어져 있는 가로수에 넥타이와 스카프를 연결해 목을 맸으나, 넥타이가 끊어지면서 바닥에 추락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형대룡 서종파출소장은 “발견 당시 고인은 검은색 점퍼 상의와 베이지색 반바지 차림 이었다”며 “곁에는 롯데로고가 새겨진 긴 우산이 있었다”고 말했다.
의문스러운 것은 용산 자택을 나선 후 다음날 오전 시신으로 발견될 때까지 약 9시간의 행적이다. 유서와 명함 등이 발견된 제네시스 차량에서 밤을 샜을 가능성이 있지만 아직까지 확실한 행적이 나오지 않고 있다. CCTV를 확인한 결과, 이 부회장과 동행자는 없었다.
이 부회장은 A4용지 4매(1매는 제목) 분량의 유서를 가족과 롯데 임직원에게 보냈다. 가족에게는 “그동안 앓고 있던 지병을 간병하느라 고생 많았다. 힘들었을 텐데 먼저 가서 미안하다”고 썼다. 또 롯데 임직원에게는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먼저 가서 미안하다. 신동빈 회장은 훌륭한 사람이다”라며 끝까지 신 회장을 옹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울러 “롯데그룹 비자금은 없다”며 검찰의 비자금 조성 수사에 정면 반박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 부회장이 집을 나설때 부터 ‘극단적 선택’을 결심하고 양평을 간 것인지 여부는 여전히 의문이다.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종교 생활을 꾸준히 유지해왔고 온화한 성품으로 대인관계에도 큰 무리가 없었다는 게 주변 인사들의 증언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 부회장이 목을 멘 양평 북한강 주변은 그가 노후 은퇴생활을 위해 전원주택용 부지를 구입해놓은 곳이다. 현지의 이 부회장 지인들은 “최근 이 부회장이 비교적 싼 땅을 구입해 40평짜리 1층 집을 지으려고 설계까지 맡겨놓은 상태”라고 전했다. 아울러 이번 뿐 아니라 주말이면 이따금 이 부회장은 직접 차량을 운전해 해당 땅을 찾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경기 양평경찰서는 사건발생 직후 이 부회장의
[서울 = 손일선 기자 / 박은진 기자 / 양평 = 연규욱 기자 / 송민근 기자 / 박재영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