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7시 강남역 11번 출구 뒤쪽 공터가 집결지입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의거하여 신고된 합법적인 시위이니, 걱정 마시고 참여해주시면 됩니다.” 서울 주요 대학교 학생들이 모여 만든 단체인 ‘숨은주권찾기’가 강남역과 신촌, 외대앞, 대학로 일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집회·행진을 예고한 15일.
이날 오전부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카카오톡에 개설된 ‘숨은주권찾기 동시다발시위 강남’이라는 오픈채팅에는 집회 참여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속속 참여하기 시작했다. 오전 10시 60여명이었던 채팅 참여자는 정오가 되자 100명을 훌쩍 넘었다. ‘숨은 주권찾기’는 강남 이외에도 신촌 외대앞 대학로 등 각 집결지 별로 오픈카톡방을 개설했다. 이 곳에서 집회 진행 요원들은 질의응답과 진행상황을 공유했다.
채팅방에 새롭게 참여한 참가자들은 “오픈채팅에 처음 들어와봤다. 오늘 집회에 참여하겠다”, “작지만 힘을 보태겠다”며 집회 참여 의사를 속속 밝혔다.
기존에 채팅방에 참여하고 있었던 사람들은 집회 참여시 필요한 물건이나 주의해야 할 점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학생 뿐만 아니라 졸업생 중에서도 퇴근 후 합류하겠다는 사람이 많았다.
오픈채팅은 SNS에 공개적으로 개설된 카톡 채팅 공간이다. 공통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 끼리만 자유롭게 참여해 의견을 교환하는 공간인 것이다..
이런 ’오픈채팅‘이 최근 전 국민적인 분노를 불러 일으키고 있는 ’최순실 사태‘를 계기로 새로운 집회문화를 형성하는 해방구 역할을 하고 있다. 평소에 집회에 참여해 본 적이 없었던 집회 새내기와 이른바 ’혼참족(혼자 집회에 참가하는 사람들)‘들을 현장으로 이끌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 6월 성주 사드배치 반대 집회에 다수 학생들이 참여했던 현상과 지난 12일 민중총궐기 집회가 20세기 들어 가장 많은 인원인 100만명이 모일 수 있었던 것도 ’오픈채팅‘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한 사람들이 대거 거리로 쏟아져 나왔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TV로 ’마음만‘ 함께 했을 사람들이 오픈채팅을 통해 한 데 모여 집회와 관련한 정보를 교환하고 ’혼자가 아니다‘라는 용기를 얻게 되면서 대거 도심으로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12일 민중총궐기 집회에는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오픈채팅을 통해 일면식도 없었던 학생 700명이 모여 현장에 모여 ‘박근혜 퇴진’ 구호를 외쳤다. 오픈채팅을 통해 실시간으로 집회 정보룰 공유하면서 조직력으로 움직이는 모습까지 보였다.
우리나라에서 집회는 일부 소수 노동·시민단체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일반 시민들, 특히 학생이나 직장인들의 겨우 집회에 참여해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드러내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보고 분노해 집회에 참여하고 싶지만, 집회 참여가 낯설거나 함께 갈 지인을 구하지 못해 주저했던 사람들에게 ‘오픈채팅’이 진입장벽을 낮춰주는 역할을 했다는 게 전문가 분석이다.
신광영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이번 최순실 사태는 특정한 직업단위나 연령, 지역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 전 국민들이 관심을 갖는 사항이다 보니 그런 방식(오픈카톡방)으로 광범위하게 집회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본다”며 “ 또한 SNS는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는데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공간이다 보니 집회새내기와 혼참족들의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면서 광범위한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실제 익명성이 보장된 오픈채팅에서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다양한 의견이 개진하면서 쉽게 공감대가 형성되는 모습을 보였다.앞서 지난 12일 민중총궐기 대회를 앞두고 매일경제가 참여한 한 오픈채팅에서는 평소에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은 공무원들도 적극적으로 대화에 참여하는 모습을 관찰
공무원이라고 밝힌 한 사람은 “세금으로 밥 먹고 있어 괜한 두려움은 있지만 그래도 이번만큼은 (집회에) 참여해 힘을 보태고자 한다”면서 “어쨌든 ‘그 분’은 행정부 수장이고 공무원들에게 정치적 중립의무가 없지는 않으니 마스크를 꼭 쓰겠다”고 말했다.
[서태욱 기자 / 양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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