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실세 의혹을 받는 최순실씨의 딸인 정유라씨가 고교 시절 대한승마협회 공문을 근거로 공결(결석을 출석으로 인정)처리를 받고 이 기간 동안 해외로 무단 출국하거나 학교장 승인 없이 대회에 참가한 사실이 확인됐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하루 앞둔 시점에서 상식적이지 않은 학교 운영과 학생 관리가 여실히 드러남에 따라 교육청이 고개를 숙였다.
서울시교육청은 16일 교육청 브리핑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은 내용을 담은 청담고, 선화예술학교(중학교 과정) 특정감사 중간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출결과 성적 관리 등에서 비정상적이고 광범위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
앞서 교육청은 국회 등에서 정씨의 출결관리 특혜 의혹이 제기되자 지난달 31일부터 정씨가 졸업한 청담고와 선화예술학교를 상대로 특정감사를 실시했다.
청담고 감사 결과, 정씨가 국내 대회에 참가한다는 대한승마협회 공문을 근거로 공결(결석을 출석으로 인정)처리를 받은 기간에 해외로 무단 출국하거나 학교장 승인 없이 대회에 참가한 사실이 다수 확인됐다.
무단 결석을 출석으로 처리한 날짜는 고교 3년간 최소 37일이었으며 특히 고교 3학년 때는 정씨가 실제로 등교했다고 주장할 수 있는 날이 17일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회 출전이나 훈련 등을 이유로 공결 처리를 받을 경우 제출해야 하는 보충학습 결과물도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보충학습 결과 제출이 확인되지 않는 날은 3학년 때만 141일에 달했다.
또 ‘학교 체육 업무 매뉴얼’에 따라 학생의 대회 참가는 4회로 제한돼 있지만 정씨는 2012년 7회, 2013년 6회 전국대회를 참가했고 학교장 승인 없이 5개의 대회를 무단 출전하는 등 규정을 어긴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생활기록부 기재와 성적 처리도 엉터리로 이뤄진 사실이 일부 확인됐다.
학교 측은 정씨가 대회 참가 등을 이유로 결석한 날에 ‘창의적 체험 활동’ 등을 했다고 기재하는가 하면 정씨가 체육수업에 거의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수행평가에서 만점을 줬다. 정씨는 이를 토대로 2학년 2학기와 3학년 2학기에 교과우수상을 받았다.
또 교사 1명이 최씨로부터 금품(30만원)을 수수하고 최씨가 교사들에게 폭언한 사실도 추가로 확인됐다.
최씨는 당시 배우자(정윤회씨)를 거론하며 교사들에게 폭언하고 심지어 수업 중인 교사를 찾아가 학생들 앞에서 폭언을 퍼부어 수업을 중단시키기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선화예술학교 재학 때에도 정씨는 학교장 승인없이 무단으로 대회에 출전하거나 해외에 있는데도 출석 처리되는 등 특혜를 받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교육청은 정씨의 고교 졸업 취소 여부를 검토하는 한편 최씨를 비롯한 비위 관련자들을 수사 의뢰하겠다고 밝혔다. 또 부당하게 처리된 정씨의 학생부 성적 및 수상 기록도 삭제하기로 했다.
조희연 교육감은 “모든 학생에게 공평 무사하게 적용돼야 할 원칙들이 이 학생 앞에서만 허무하게 무너져 참담한 심정”이라며 “전대미문의 교육농단을 바로잡기 위해 법리적 검토를 거쳐 엄중 조처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수능 날에 무너진 학교에 대한 뉴스가 예민한 수험생들에게 혹시라도 일말의 영향을 끼치면 어쩔까 하는 두려움도 크다”며 “최씨와 정씨의 추문이 전화위복이 돼 정의로운 교육, 특권 없는 평등 교육이 실현되는 계기가 되도록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래는 조 교육감의 수사 결과 발표 전문이다.
<조희연 교육감 발표문 전문>
참으로 착잡합니다.
교육감이 돼 수없이 많은 기자회견과 발표를 했지만 오늘처럼 참담하고 가슴 아픈 내용은 없지 않았나 싶습니다.
온 세상을 충격에 빠뜨린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의 전모는 그의 딸인 정유라씨의 이화여대 입학과 학사관리 문제에서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출발점부터 최순실 게이트는 국정 농단이기도 하지만 ‘교육 농단’이기도 했습니다.
서울시교육청은 정씨 고교 시절의 특혜 의혹 등이 제기되었을 때 즉각 정씨의 출신학교들에 대한 장학과 감사에 착수했습니다. 10월27일의 장학 결과 발표에서는 문제점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특정감사반을 투입해 전면 조사를 진행하면서 제 귀가 의심스러울 정도의 보고들이 하나 둘 들어왔습니다.
우선 정씨 출신학교들에서는 모든 학생에게 공평무사하게 적용돼야 할 학사 관리와 출결 관리가 유독 이 학생 앞에서 허무하게 무너졌습니다.
공결 처리의 근거가 된 승마 대회 참석 공문에 찍힌 날짜에 정유라 학생은 해외에 나가 있기도 했습니다. 학교장의 승인 없이 무단으로 승마 대회에 나가기도 했습니다.
체육특기 학생의 학습권을 보호하고 보장하기 위해 대회 참가 횟수를 4회로 제한하고 있는 규정도 이 학생 앞에서는 여지없이 무너졌습니다.
수업에 참가하지 않았음에도 실기 점수 만점을 받았고 그 성적 처리를 근거로 교과우수상을 두 차례나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는 대회 참가 등을 이유로 정씨가 등교하지 않은 날에 ‘창의적 체험 활동’을 했다는 내용이 학교생활기록부에 허위로 기재되기도 했습니다.
학교는 무너졌습니다.
학생들 앞에서 정직하지 못하고 모든 학생들에게 공평무사하지 못한 학교는 교육기관이라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저 조희연, 이 무너진 폐허에 주저앉아 엉엉 통곡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이번 감사 결과 이 참담한 교육 농단의 배후에 최순실씨가 있음이 직간접적으로 드러났습니다. 최씨는 교직자들에게 금품 증여를 수차례 시도했고 수업중인 교사에게 안하무인격의 폭언을 퍼부었습니다. 유사-권력자 행세를 가장 부박한 방식으로, 매우 노골적으로 자행했습니다.
학교를 옹호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무소불위의 금력과 권력을 자랑하는 최씨의 로비, 압력, 폭언 앞에서 아무런 힘도 배경도 없는 학교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교사와 학교와 교육이 짓밟히고 유린당했다고 표현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서울교육을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통렬한 책임감과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하필이면 수능을 하루 앞둔 시점인데 부박한 유사-권력자의 농단 앞에 맥없이 허물어진 이 처참한 학교 현실에 대한 발표를 해야 하는가 하는 깊은 고민에 빠졌었습니다.
“이게 나라냐?”라는 외침에 대응해 어느 시의원께서 행정감사 시간에 “이게 학교냐?”라고 외치기도 하셨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수능 날에, 무너진 학교에 대한 뉴스가 예민한 수험생들에게 혹시라도 일말의 영향을 끼치면 어쩔까 하는 두려움도 컸습니다.
그러나 서울시의회에서 행정감사 때 정씨 출신고교 관계자들을 증언으로 대거 부르는 등 철저한 조사를 위해 불철주야 애쓰고 있는 이 시점에서, 주요한 내용이 이미 확인된 감사 발표를 마냥 연기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시의회의 행정감사와 시너지를 내기 위해 보조를 맞추어야 했습니다. 하루 빨리 속 시원한 진실을 드러내주길 원하는 시민들의 바람에도 부응해야 했습니다.
비록 우울한 뉴스이지만 우리 수험생들과 청소년들이 교육 농단과 특권 교육은 언젠가는 반드시 정의의 심판과 철퇴를 맞게 된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정의가 살아 있음을 느끼도록 하고도 싶었습니다. 서울교육이 이 정도의 자정 능력은 갖추고 있음을 확인하도록 하고도 싶었습니다.
이 전대미문의 교육 농단을 계기로 학교를 다시 세우겠습니다. 어떤 권력과 금력도 흔들지 못하는 공정함과 평등의 현장이 되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우선 수차례 금품 제공 시도와 부당한 압력을 행사함으로써 교육 현장을 왜곡시킨 교육 농단의 주범 최순실씨에 대해서는 사법기관에 그의 교육 농단 부분에 대해서도 추가 수사를 철저하게 해주실 것을 의뢰하겠습니다.
또 최씨의 압력에 굴해 교육 현장을 무너뜨린 소수 관계자들에 대해서는 교육청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엄정하게 조처하고 사법기관에 수사를 의뢰하겠습니다.
그리고 부당한 성적 처리로 교과우수상까지 수상한 정씨의 학교 생활기록부 상의 성적과 수상 내용에 대해서는 교육 농단을 바로잡는 상징적 의미에서 성적을 원칙대로 수정하고 수상 내력을 삭제하겠습니다.
그리고 전혀 엄정한 출결 관리를 받지 않고 졸업한 정씨에 대해서 ‘졸업 취소’가 행정적으로 가능한지 법리적 검토를 거쳐 이 농단에 상응하는 적절하고 정의로운 조처를 취할 것입니다.
또한 추가 제보와 의혹 제기에 대해 추호의 의심도 없도록 추가 조사와 조처를 취해나갈 예정입니다. 학교와 교육을 바로 세우기 위해 최씨와 정씨의 부당한 행위를 목격하신 분들은 언제든지 마음과 입을 열고 저희들의 문을 두드려주십시오.
특히 이번 사안을 계기로 출결 관리 등 공정한 학사 관리 ‘공부하는 스포츠 학생’으로서 체육 특기자의 합당한 대회 참여와 학습권 보장에 대한 제도 개선안 등을 조속히 마련해 여러분들 앞에 공개해 드리겠습니다.
이런 모든 조처는 교육 농단을 단죄하고 기울어진 교단을 바로세우기 위한 우리 모두의 처절한 몸부림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처참한 사태를 함께 목도했습니다. 우리 눈으로 직접 본, 이 말도 안 되는 사태가 우리 사회에서 또 다시 벌어지도록 우리가 허용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교육을 바로세우기 위한 노력에 힘을 모아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우리 모두를 비참하게 만든 최씨와 정씨의 추문이 전화위복이 돼 ‘정의로운 교육’, ‘특권 없는 평등 교육’이 실현되는 계기가 되도록 함께 만들어 나갑시다.
마지막으로 두 가지 당부를 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지금도 묵묵히 교육 현장을 지키고 계신 절대 다수의 성실한 선생님들과 학교에 대해 무차별적인 불신을 품지는 말아주시길 간곡히 당부 드립니다. 또 정씨 출신학교들에 대해서도 다른 선입견이나 편견을 가지지는 말아주시길 당부 드립니다.
더불어 내일 수능을 볼 수험생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당부합니다. 흔들리지 말고 갈고 닦아온 실력을 최선을 다해 발휘하길 두 손 모아 기원하겠습니다.
오늘의 이 뉴스는 우리
정의롭고 따뜻한 서울교육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 나갑시다. 감사합니다.
[디지털뉴스국 이명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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