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성신약 등 구(舊) 삼성물산 주주들이 지난해 제일모직과의 합병 당시 “국민연금이 위법하게 개입해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사실이 22일 확인됐다.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자 주주들은 다음달 선고를 앞둔 ‘삼성물산 합병 무효소송’에 대한 변론 재개 신청도 검토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2부(부장판사 전지원)는 일성신약 등 삼성물산 주주 4명이 국민연금공단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의 첫 재판을 열었다. 이날 재판에서 원고 측은 “국민연금이 삼성으로부터 합병 관련 미공개 정보를 받아 주가를 조작했고, 검찰 역시 이 같은 국민연금과 삼성이 사전에 공모했다는 의혹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고 청구 이유를 밝혔다.
이어 “국민연금은 삼성 합병이 시장에 공개될 것을 미리 알고 합병 발표 전부터 삼성물산 주식을 처분해 주가를 인위적으로 낮췄다. 그 결과 주식매수청구 가격이 삼성그룹 오너 일가에 유리하게 저가에서 결정됐다”고 주장했다.
원고 측은 현재 ‘미공개 정보 이용 주가조작’ 의혹에 따른 손해만 청구한 상태다. 그러나 향후 특검 수사와 국회 조사를 지켜보면서 청구 원인을 계속 추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민연금의 위법한 의결권 행사나 대가성이 입증되면 이에 대한 피해도 주장하겠다는 뜻이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국민연금이 합병 당시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의결권전문위원회를 건너뛰고 홍완선 기금운용본부장 주재로 열린 투자심의위원회만 거쳐 찬성표를 던진 경위를 수사하고 있다. 당시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한 것을 두고 ‘삼성의 최순실씨(60) 모녀 지원에 대한 대가’라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국민연금은 ISS, 한국기업지배구조원 등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모두 합병 반대를 권고했는데 정반대의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삼성그룹과 국민연금의 위법 행위에 대한 검찰 수사로 인해 ‘삼성물산 합병 무효소송’ 재판이 재개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당초 이 사건은 지난달 31일 최종변론을 끝내고 다음달 15일 선고가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원고 측은 “사정이 변경돼 변론 재개 신청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단 예정대로 선고가 진행되더라도 향후 대가성 등이 밝혀지면 2심에서 판결이 뒤집힐 수도 있다는 게 법조계 시각이다.
합병 무효 소송에서도 삼성물산 주가가 최근 5년간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국민연금 보유 삼성물산 지분율도 가장 낮아진 시점인 지난해 5월 26일 합병안이 발표됐다는 게 쟁점이 됐다. 원고 측은 최종변론에서 “합병은 구 삼성물산에 가장 불리한 시점에 이뤄졌다. 반면 합병을 앞두고 상장된 제일모직은 상장 당일 주가가 공모가 2배 이상 올라 오너일가는 하루만에 5조9000억원 차익을 달성했다”고 강조했다.
한편 주주들이 2심에서 승소한 주식매수가격 조정 소송은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는 중이다. 지난 5월 서울고법 민사합의35부
[김윤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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