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지난달 30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에 대해 내놓은 첫 판단이 직접적으로는 관련이 없는 '채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자 정보수집' 사건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서울고법 형사12부(윤종구 오현규 조찬영 부장판사)는 오늘(4일) 채 전 총장의 혼외자 정보를 불법 조회한 혐의로 기소된 남재준 전 국가정보원장 등의 항소심 선고를 할 예정이었으나 취소했습니다.
재판부는 법정에서 "기본적으로 이 사건에 대해 불완전하게라도 선고할 수는 있지만, 몇 가지 추가로 고려할 요소가 있다"며 변론을 재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재판부가 추가로 고려할 요소로 밝힌 것 중에는 지난달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선고한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대법원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의 성립 여부에 관해 판시한 내용 중에는 직권남용 행위의 대상자가 일반인이냐, 공무원이냐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부분이 있습니다.
일반인이라면 직권에 대응해 따를 이유가 없으므로 곧바로 '의무 없는 일'을 시켰다고 해석될 수 있지만, 상대방이 공무원이라면 법령에 따라 임무를 수행해야 하므로 관계 법령의 내용에 따라 '의무 없는 일'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판단을 전제로 당시 대법원은 하급기관 임직원에게 각종 명단 등을 보고하게 한 행위는 '의무 없는 일'이라고 단정할 수 없으므로 추가 심리가 필요하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습니다.
남 전 원장을 포함한 국정원 임직원과 공무원들이 기소된 채 전 총장 혼외자 정보조회 사건에 직권남용 혐의는 적용돼 있지 않습니다. 이들은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남 전 원장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나머지 국정원 직원들의 혐의는 인정됐습니다.
다만 공소사실의 구조는 직권남용 혐의와 흡사하다고 해석되는 면이 있습니다.
'댓글 수사'가 진행 중이던 2013년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한다는 보도가 나오자, 수사를 방해하기 위해 남 전 원장과 서천호 전 국정원 2차장 등이 국내 정보 수집부서장을 거쳐 송모 당시 정보관에게 채 전 총장의 혼외자 첩보를 검증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 검찰이 제기한 공소 내용입니다.
검찰은 이렇게 직무 범위를 넘어 부정한 목적으로 개인정보를 받았다며 남 전 원장 등에게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습니다.
이런 점을 고려해 재판부는 일반인과 공무원의 의무를 별개로 접근하도록 한 대법원 판결이 이 사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재판부는 "기본권의 주체인 국민의 권리·의무는 공무원에 의해 침해될 수 없지만 최근에는 공무원 사이, 국가기관 사이, 국가기관과 공공기관 사이 등에서 어떤 기본권 침해가 이뤄지고 의무 없는 일을 하도록 했는지 등 과거에는 예상 못 한 쟁점으로 치열한 논의가 진행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이 사건은 기본적으로 등장하는 이들이 공무원"이라며 "이 사건과 동일한 쟁점은 아니지만,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공무원이나 기관 사이의 관계에 어떻게 법리적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도 국정원의 권한 범위, 상대 공무원에 대한 개인정보 보호법상 직무상 권한의 침해 여부 등이 쟁점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검찰과 변호인들에게 이런 쟁점에 대한 의견을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다음 공판기일은 3월 3일로 잡았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