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숨진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대)' 위안부 피해자 마포 쉼터(평화의 우리집) 소장 A씨는 그동안 언론의 의혹 제기와 검찰의 수사에 큰 심적 부담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이나영 정의연대 이사장은 지난 7일 발표한 부고 성명에서 "고인은 최근 정의연대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셨다. 특히 검찰의 급작스런 평화의 우리집 압수수색 이후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것 같다며 심리적으로 힘든 상황을 호소하셨다"며 "무엇보다 언론의 과도한 취재경쟁으로 쏟아지는 전화와 초인종 벨소리, 카메라 세례로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셨다. 항상 밝게 웃으시던 고인은 쉼터 밖을 제대로 나가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이셨다"고 밝혔다.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같은날 "우리 소장님, 기자들이 쉼터 초인종 소리 딩동 울릴 때마다, 그들이 대문 밖에서 카메라 세워놓고 생중계하며,마치 쉼터가 범죄자 소굴처럼 보도를 해대고, 검찰에서 쉼터로 들이닥쳐 압수수색을 하고, 매일같이 압박감. 죄인도 아닌데 죄인의식 갖게 하고, 쉴 새 없이 전화벨 소리로 괴롭힐 때마다 홀로 그것을 다 감당해 내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요"라는 추모사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김어준씨는 지난 8일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에서 "검증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기사가 나오고, 그 과정에서 한쪽으로 '몰이'를 당하면 보도살인이라고 부를 상황이 나온다"고 말했다.
하지만 야권에서는 A씨 사망에 대해 연일 의혹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A씨 죽음이 뭔가 석연치 않다는 주장이다. 미래통합당 위안부 할머니 피해 진상규명 태스크포스(TF) 위원장을 맡고 있는 곽상도 의원은 지난 11일 기자회견을 열고 A씨 사망 원인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곽 의원은 "경찰에서 자살이라는 결론을 미리 내놓고 제대로 조사를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곽 의원은 "고인이 사망 전 누구와 통화했는지, 어떤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았는지는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데 핵심적인 부분"이라며 "수사기관은 (휴대전화) 포렌식 결과에 대해 투명하게 공개해 주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경찰조차 "타살 혐의전이 없다"고 1차 부검 결과를 밝힌 마당에 야권에서는 왜 이런 의문이 나오고 있을까. 매일경제는 A씨가 사망하기 직전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지금까지 알려진,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사건을 재구성해봤다.
◆2004년 5월 윤미향과 처음 만나다
숨진 A씨와 윤 의원의 인연은 2004년 5월로 거슬로 올라간다. 두 사람의 오래된 인연에 대해서 A씨는 지난 3월 3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그녀 윤미향을 만난 건 2004년 5월. 쉼터에 기거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여 부산에서 서울로 상경했다"고 썼다. A씨는 "그러나 할머니들의 트라우마는 만만치 않아 3개월 사이에 몇 번의 사표를 내고 마지막 그해 8월이었던가? 그녀의 눈물을 보고 다시는 사표 이야기 하지 않을께요. 그리고 지금까지 동지처럼, 친구처럼 함께 울고 웃으며 지내오는 동안 그녀의 머리는 어느새 흰머리가 늘어났다"고 적었다.
윤 의원도 A씨가 숨진날 밤 지난해 1월 자신이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을 다시 공유했다가 다음날 삭제했다. 윤 의원이 공유했던 글에서도 두 사람의 오랜 인연, 끈끈한 동지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윤 의원은 그 글에서 "어느 날 한 여성이 연락을 주었다. 서울까지 와 주었고, 첫 만남에 아 이사람이다 싶었다"며 "급여는 80만원 밖에 못 드린다 하였는데도 이 사람, 이리도 좋은 일에 함께 하는 일인데 괜찮다고 했다"고 적었다.
A씨가 언급한 세번째 사표 얘기도 있다. 윤 의원은 "(A씨가)세 번째 사표를 내던 날, 저는 A씨 앞에서 엉엉 목놓아 울면서 붙잡고 싶었다"며 "결국 제 이야기를 듣고 제 지난 삶 속으로 쏙 들어와버려 세 번째 사표도 결국은 다시 접고, A씨는 14년을 우리와 함께 해왔다"고 썼다.
A씨 부고를 접한 윤 의원은 추모사에서 "2004년 처음 우리가 만나 함께 해온 20여년을 너무나 잘 알기에 이런 날들이 우리에게 닥칠 것이라고 3월 푸르른 날에조차 우리는 생각조차 못했다. 이런 지옥의 삶을 살게 되리라 생각도 못했다"고 밝혔다.
◆2020년 4월1일 '김복동의 희망' 공동대표 됐지만...
A씨는 2004년 5월 정의연대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운영하던 서울 서대문구 쉼터 '우리집'에서부터 시작해 최근까지 서울 마포구 쉼터 '평화의 우리집'에서 거의 상주하면서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발을 들었다. 2012년 10월 22일 정대협은 서대문에서 운영하던 쉼터를 마포로 옮기고 '평화의 우리집'이라고 명명했다. 명성교회측이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게끔 조치해준 덕분이다.
마포 쉼터를 지켜온 A씨는 윤 의원이 국회의원 출마를 위해 물러나면서 지난 4월 1일 '김복동의 희망' 공동대표 자리에 올랐다. 윤 의원의 남편인 김모씨가 운영하는 '수원시민신문' 5월 6일자 기사에 따르면 4월 1일 열린 '김복동의 희망' 공동대표 이·취임식에서 윤 의원은 "A씨는 그 누구보다 할머니를 옆에서 잘 모셨고, 뜻이 뭔지 다 안다"며 "지난 김복동 장학금 기간 동안 회계, 사무 일체를 사무처 활동가들과 함께 해와서, 이렇게 사람이 교체되는 것이 다른 회원들에게 부담주지않을 것같아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A씨의 취임사에는 당시 비례대표 당선 안정권 순번(더불어시민당 비례 7번)을 받은 윤 의원을 국회로 보내는 복잡한 마음이 담겼다. 그대로 옮겨본다. A씨는 "저는 윤미향 대표를 보낼 때가 됐다고 상상을 못했어요. 언젠가 제가 먼저 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많이 충격받았어요. 너무 기뻐할 일인데 김복동 할머니 방에 올라가서 3일을 울었어요. 어떻해요 보내는거 맞죠하고 울고, 잘하도록 기도하자고 울고. 그래도 할머니는 씩~ 웃고 계세요. 기쁜 맘으로 웃고 계신 거였어요. 이렇게 기뻐하는 일이면 우리도 기뻐하고 가셔서 더 좋은 일을 하시면 김복동의 희망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마포 쉼터 압수수색 때 큰 충격? 개인계좌 모금 트윗 갑자기 등장
시련은 이내 찾아왔다. 지난달 7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92)가 정의연대의 불투명한 회계 문제를 처음 제기한 후 연일 관련 언론 보도가 이어졌고, 많은 시민단체가 정의연대와 윤 의원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정대협, 정의연대 설립 이후 최대의 위기가 닥쳤다.
수사에 착수한 서울서부지검 형사 4부(부장검사 최지석)는 정의연대와 정대협 사무실, 마포 쉼터, 안성 쉼터(힐링센터)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였다. 마포 쉼터 압수수색이 A씨에게 큰 충격을 준 것일까. 정의연대는 21일 오후 검찰의 마포 쉼터 압수수색을 규탄하는 성명서을 발표했다.
정의연대는 "회계 검증과정 절차를 기다리지 않고 이례적으로 진행된 압수수색에 성실히 협조한 것은 공정한 수사와 신속한 의혹 해소를 기대하였기 때문이다. 변호인들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께서 생활하시는 마포 쉼터에 있는 자료에 대해 임의제출하기로 검찰과 합의했다. 이는 할머니의 명예와 존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수사과정에서 할머니들의 명예를 보호해 달라고 다시 한 번 간곡히 부탁드린 바 있다"며 "그럼에도 변호인들과 활동가들이 미처 대응할 수 없는 오전 시간에 길원옥 할머니께서 계시는 쉼터에 영장을 집행하러 온 검찰의 행위는 일본군 위안부 운동과 피해자들에 대한 심각한 모독이며 인권침해 행위"라고 검찰 수사를 비판했다.
검찰은 반박했다. 지난달 24일 검찰은 "수사팀은 5월20일 정의연대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집행 과정에서 마포 쉼터에 일부 관련자료가 보관된 사실을 확인하고 임의제출을 권유했으나 정의연대측 변호인이 거부해 부득이 그 즉시(5월20일 밤) 마포 쉼터에 대한 추가 영장을 청구하게 됐다"며 "5월21일 오전에 발부된 압수수색 영장 집행 대상 장소인 마포 쉼터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거주 장소임을 감안해 집행과정에서 할머니께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집행절차와 방법에 관해 변호인측과 충분히 논의를 했고, 그에 따라 할머니의 거주공간 1층과는 입구부터 분리된 지하실에만 국한해 평온하게 집행했으며, 할머니의 거주 공간에 대해서는 구체적 집행이 이뤄진 바 전혀 없다"고 밝혔다.
마포 쉼터 압수수색 과정에서 검찰 수사관과 A씨가 접촉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에 따르면 이날 A씨로 추정되는 한 여성이 검찰 수사관에게 "변호인이 올 때까지 (문을) 열어줄 수 없다"고 했다. A씨로 보이는 인물은 변호인들에게 전달할 목적으로 해당 수사관의 휴대전화 번호를 메모지에 적었다. 검찰은 "이 여성이 고인인지 여부는 수사팀으로서는 알 수 없다"고 밝혔다.
검찰의 마포 쉼터 압수수색이 있고 난 뒤인 지난달 31일 트위터에는 "이순덕 할머니 조의금은 A씨 개인계좌로"라는 글이 느닷없이 올라왔다. 실제 윤 의원은 지난 2017년 4월 이 할머니가 별세하자 페이스북에 부고 소식을 전하며 A씨 개인계좌 번호를 올렸다. 지금까지 나오지 않은 새로운 의혹 제기였다.
그로부터 5일 뒤인 지난 5일 검찰은 경기도 안성에 위치한 쉼터를 압수수색했다. 당시 수사팀은 안성 쉼터의 초인종을 눌렀지만 기척이 없어 쉼터 관리자로 알려진 A씨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었다. 수사팀은 A씨에게 압수수색 참여의사를 문의했지만 A씨는 본인이 안성 쉼터는 관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여 통화를 마쳤다고 한다. 검찰은 A씨 사망 이후 "이외에는 수사팀이 고인에게 일체 연락을 하거나 접촉한 사실이 없다"며 "고인을 조사한 적도, 조사를 위해 출석요구를 한 사실도 전혀 없다"고 밝혔다. A씨가 사망한 지난 6일 오후 5시49분 A씨 개인계좌 문제를 다룬 2차 트윗이 등장했다.
◆A씨 연락두절...윤 의원 비서관이 119에 최초신고
검찰이 안성 쉼터를 전격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A씨와 통화를 나눈 다음날인 6일 오전 10시57분께 A씨는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자택에 들어가는 모습이 아파트 폐쇄회로(CC)TV에 포착됐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A씨는 차에 휴대전화를 둔 채로 집에 들어갔다.
그리고 정대협 팀장 출신으로 알려진 윤 의원실 비서관인 B씨가 이날 오후 9~10시께 A씨와 연락이 닿지 않자 파주 아파트로 왔다. 자신을 A씨의 '전 직장동료'라고 밝힌 B씨는 오후 10시33분 차분한 목소리로 119에 신고를 했다. B씨는 이후 A씨 변사 사건을 조사한 경기 파주경찰서 형사과에 본인 신분을 '국회 공무원'이라고 밝혔다.
최초 신고자가 윤 의원실 보좌진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음모론이 확산되자 지난 11일 윤 의원측은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6일 당시 119에 신고한 최초 신고자는 윤미향 의원실의 비서관이 맞다"면서도 "일각에서는 국회의원의 비서관이 왜 신고자냐는 물음을 던지시지만, 이는 고인과 비서관, 윤미향 의원의 끈끈한 자매애를 모르고 하는 허언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윤 의원측은 "6일 당일 오후 연락이 닿지 않아 모두가 걱정하고 있었다"며 "최근 심적 상태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고인의 집을 찾아가 보자는 마음이 앞섰다. 그리고 119에 신고했으며, 결국 고인의 죽음을 알게 된 것이다"고 밝혔다.
119 신고 당시 녹취록에 따르면 B씨는 "아는 분이 지금 오랫동안, 몇 시간 동안 연락이 안된다"며 "그래서 저희가 집에 찾아왔는데, 집 앞에 있는데, 집 안에 있을 거라고 추정이 되는데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반응이 없다"고 말했다. 119 상황실 직원이 "요구조자(구조를 필요로 하는 사람)가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것 같다는 것이냐"고 묻자 B씨는 "네 혹시 몰라서요"라고 답했다. 신고를 접수한 경찰과 소방당국은 오후 10시50분께 현장에 도착해 A씨의 사망 사실을 확인했다.
그런데 A씨 사망이 확인되고 1시간여 후인 6일 자정께 윤 의원은 페이스북에 지난 2019년 1월에 올렸던 자신과 A씨의 인연과 관련된 글을 공유했다가 7일 새벽 돌연 삭제했다. 그리고 윤 의원은 7일 오전 검은색 상하의 차림으로 마포 쉼터로 와 오열하는 모습이 취재진의 카메라에 잡혔다.
◆이제 검찰의 시간...'스모킹 건' A씨 휴대전화도 檢 손에
A씨의 사인을 보다 명확하게 밝혀줄 휴대전화는 현재 검찰이 확보하고 있다. 정의연대의 회계부실 의혹과 윤 의원에 대한 고발 사건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서울 서부지검은 지난 10일 A씨 휴대전화를 포함해 경찰이 현장에서 확보한 A씨 유류품들을 압수수색 영장을 통해 받아 갔다. 검찰은 세 차례 압수수색과 정의연대·정대협 회계담당자 참고인 조사 등을 마쳤지만 윤 의원에 대한 조사를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경찰은 앞선 8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를 토대로 A씨가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A씨 유서를 따로 발견하지 못했다. 현재로선 외부 침입 흔적이 없고, 타살 혐의점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이번 변사사건을 자살로 결론 짓고 내사종결 처리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곽 의원은 연일 A씨 사망 경위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윤 의원과 정의연대는 강하게 반발했다. 윤 의원은 "고인의 죽음을 폄훼하기 말라. 오랜 세월 곁을 지킨 동지의 헌신을 모욕하지 말라"며 "고인의 사망 경위를 극히 자세히 언급하며 터무니없는 의혹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고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의연대 역시 "곽상도 의원은 패륜적 정치공작을 당장 중단하고, 고인과 정의기억연대에 공개 사과하십시오"라는 성명서를 지난 11일 발표했다.
정의연대는 A씨 개인계좌 모금 의혹도 해명했다. 정의연대는 "2017년 '평화의 우리집'에 거주하시던 이순덕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당시, 정대협 실행이사회의 결의를 통해 할머니를 모시고 있던 고인의 계좌를 열어 이 할머니의 조의금을 받았고, 조의금 정산 또한 정대협 실행위원회에서 공식적으로 처리됐다"며 "명백한 허위사실에 근거한 명예훼손이자, 정의연대를 '타살에 연루된 집단'으로 모함하는 행
정의연대는 "고인은 쉼터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과 반인권적인 취재행태 등으로 고통 받다 돌아가셨다"며 "고인의 죽음 뒤에도 여전히 자행되는 허위사실 유포, 모욕과 명예훼손 등이 대한민국 국회의원에 의해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정의연대는 그저 참담하고 비통할 따름"이라고 강조했다.
[이진한 기자 / 차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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