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 권모씨를 징역 19년, 김모씨를 징역 22년에 처한다"
1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법원종합청사 408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부장판사 허선아)는 살인교사 혐의로 기소된 권씨와 김씨에게 중형을 선고했다. 지난 2015년 9월 필리핀 앙헬레스에서 교민 박모씨가 피살된 지 약 5년만에 살인청부업자를 고용해 그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피고인들에게 한국 사법부의 선고가 내려졌다.
판결에 따르면 김씨가 2013년 필리핀 앙헬레스에 있는 한 호텔에 투자한 5억원이 사건의 발단이 됐다. 호텔은 피해자 박씨가 운영하던 곳이다. 그러나 호텔은 여러 채무 관계로 얽혀 있었고, 김씨는 수익금은커녕 원금도 돌려받지 못할 상황에 처했다. 박씨는 김씨 외에도 다수의 투자자와 갈등을 빚었다. 다만 다른 투자자는 호텔 객실을 분양받는 등 투자금을 회수할 방안을 마련해 뒀던 반면, 김씨는 이러한 보호조치도 강구해 두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도 김씨는 오히려 박씨로부터 수차례 인간적인 모욕과 함께 "죽을 수도 있다"는 위협까지 당했고, 결국 극도의 원한과 함께 그를 살해해야겠다는 마음을 품었다. 권씨는 법정에서 "김씨가 어느 순간부터 박씨를 죽이고 싶다는 얘기를 자주 했다. 그를 돼지라고 칭하며 돼지를 잡아 죽여야 한다는 말도 했다"고 증언했다. 또 "(김씨가) 돈보다도 너무너무 자존심이 상한다고 했다"고 했다. 다른 호텔 투자자 유모씨도 "김씨는 사건이 있은 뒤 박씨와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 수 없었다는 말을 했다"고 증언했다.
청부 살해 모의는 2015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김씨는 앙헬레스에서 2009년부터 식당을 운영하던 권씨와 접촉했다. 김씨는 권씨에게 "박씨를 살해할 '킬러'를 구해주면 호텔 식당 운영권이나 5억원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권씨는 이를 자신과 연인 관계에 있던 시청 고위 공무원 S씨에 알리며 그에게 살인청부업자를 구해 달라고 요청했다. 같은 해 3월께 김씨는 권씨와 S씨를 만나 살인청부 착수금 명목으로 현금 100만페소(약 2400만원)를 전달했다.
권씨는 S씨에게 박씨를 빨리 살해하라고 독촉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 증인은 "권씨는 수 차례에 걸쳐 S씨에게 살해 계획을 빨리 실행하라고 독촉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총 맞아 죽으려고 하나 싶을 정도로 심했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Who is Mr.Park?" 2015년 9월 17일 낮, 박씨는 앙헬레스의 한 부동산 사무실에서 자신을 찾는 질문을 받았다. 박씨가 자신이라고 답한 순간 킬러는 권총을 꺼내 그의 목과 옆구리, 엉덩이 등에 5발을 쏘고 도망쳤다. 박씨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김씨는 사건이 있은 뒤 세 차례에 걸쳐 권씨에게 2400만원을 송금했다. 사건 당일에는 살인청부업자의 가족들과 함께 권씨의 식당에서 파티를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김씨와 권씨도 이후 갈등을 겪은 것으로 보인다. 한 증인은 "박씨가 사망하자 김씨는 권씨가 살해한 것이 아니라는 태도를 보였다"고 증언했다. 또 "권씨가 김씨로부터 약속한 돈을 받지 못했다고 해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에서 (자신이) 김씨를 만나기도 했다"고 했다.
필리핀 경찰은 사건이 발생한 이후 용의자를 검거했으나 오인 체포로 밝혀졌다. 한국 경찰은 사건 배후에 한국인 교사자들이 있다는 단서를 확보해 2018년부터 본격 수사에 나섰고, 올해 1월 귀국하는 권씨를 체포하고 한국에 있던 김씨와 함께 기소했다.
재판부는 "사람의 생명권은 누구로부터도 유린될 수 없는 불가침의 권리임에도 피해자는 영원히 회복될 수
[정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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