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그룹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인수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부당하게 계열사를 동원한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 회장이 검찰에 고발됐다.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의 기내식 독점공급권을 대가로 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금호고속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무이자로 발행하고, 계열사를 동원해 금호고속에 저리로 대규모 자금을 몰아준 혐의다. 27일 공정거래위원회는 금호아시아나 계열사들이 금호고속을 부당 지원한 행위에 대해 과징금 320억원을 부과하고 박 전 회장과 박홍석·윤병철 그룹 전략경영실 임원,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을 검찰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과징금은 금호산업 152억원, 금호고속 85억원, 아시아나항공 82억원 등이다.
공정위 조사 결과 금호아시아나는 해외업체와 계열사를 이용해 부당하게 자금을 조달했다. 1조원 이상의 천문학적인 계열사 인수자금이 필요한 총수, 박 전 회장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금호아시나아나는 2006년 6조4000억원에 대우건설을 인수했다가 유동성 위기로 3년 만에 다시 판매하면서 그룹 전체가 흔들렸다. 금호산업·금호타이어가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금호석유화학·아시아나항공은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맺는 등 사실상 구조조정 절차를 밟았다. 당시 자리에서 물러난 박 전 회장은 2010년 다시 전면에 복귀해 그룹 재건을 추진했다. 그 중심에 2015년 새롭게 설립한 금호기업(現 금호고속)이 있다. 박 전 회장을 비롯한 총수 일가가 지난해 기준 지분의 50.9%를 보유한 회사다.
박 전 회장은 금호고속을 통해 잃어버린 계열사를 되찾으려 했지만, 재무 상태가 열악해 자금을 자체 조달할 수 없었다. 이에 그룹 콘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전략경영실에서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사업을 이용한 자금조달 방안을 내놨다. 금호아시아나는 금호고속에 대규모 투자를 하는 것을 조건으로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독점사업권을 넘기는 '일괄 거래'를 추진했다. 전략경영실 차원에서 해외 투자 자문업체를 통해 다수의 해외 기내식 공급업체에 이를 제안했다. 이에 스위스 기업인 게이트그룹이 30년 기내식 독점사업권을 받는 대신 금호고속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1600억원치를 무이자·만기 최장 20년 조건으로 인수했다. 공정위는 아시아나항공이 다른 업체들과 더 유리한 거래를 할 수 있었던 기회를 잃었다고 지적했다. 또 일괄 거래가 아니었다면 금호고속의 BW 발행도 성공하기 어려웠던 구조라고 봤다. 특히 무이자 조건으로 발행했다는 점에서 정상금리(3.77~3.82%)에 비해 금호고속이 총 162억원의 과다이익을 얻었다고 판단했다. 공정위는 계약서 외의 부속계약·부속합의가 있었던 사실도 확인했다. 또 박 전 회장이 BW 발행에 직접 서명하고, 기내식 계약 주요 사항을 수차례 보고받았다는 점에서 이같은 거래구조를 알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공정위는 금호아시아나 9개 계열사가 금호고속에 저리로 자금을 대여한 사실도 밝혀냈다. 기내식·BW 거래 논의가 예상보다 지연되는 과정에서 금호고속은 자금 사정이 크게 악화했다. 특히 2016년 5월께 NH투자증권이 금호고속에 대여한 5300억원의 조기상환을 요청하면서 자금 확보가 시급했다. 9개 계열사는 전략경영실 지시로 45회에 걸쳐 총 1306억원을 담보 없이 저리(1.5~4.5%)로 신용 대여했다. 금호고속은 정상 금리(3.49~5.75%)와 차이에 해당하는 총 7억2000만원의 이익을 봤다. 이 과정에서 금호산업·아시아나항공의 협력업체들까지 동원됐다. 자금을 빌려줄 여력이 없는 협력업체에게 선급금 명목으로 돈을 주면, 협력업체가 이를 다시 금호고속에 빌려주는 식이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정상 거래임을 충분히 소명했음에도 공정위가 이러한 결정을 내린 것에 당혹스럽다"며 "공정위가 무리한 고발을 진행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앞서 기내식 관련 배임 혐의에 대해서는 검찰에서 불기소 처분을 내렸고, 기내식업체 LSGK가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과 관련해서는 법원에서 전부 승소했다"고 강조했다. 아시아나항공도 입장문을 내고 "기내식 업체 변경은 품질 개선과 비용 절감, 합작법인 지분 확대 등을 위한 정상적인 경영 판단이었
이번 제재가 산업은행이 주도하는 아시아나항공 매각에도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제재 자체는 이미 기정사실이었지만, 이번 부당지원 문제가 해외기내식 업체의 소송으로 이어질 경우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백상경 기자 / 송광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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